배다리도서관 강연록 모음
안녕하세요. 작가 황 영입니다. 먼저 오늘 저의 강연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강의는 배다리에서 하는 세 번째 강의입니다. 배다리 도서관은 보잘것없는 무명작가인 저에게 막중한 임무를 주었습니다. 저는 작가로서 여러분 앞에 서기 전까지 평택에서 20년 동안 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교육 종사자였습니다. 쉽게 말해 학원 영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쑥스럽지만 그래도 꽤 잘 나가는 강사였습니다. 저를 거쳐 간 제자들의 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근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주말에 온전히 쉬어본 기억은 거의 없을 정도로 열심히 강의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살지는 않았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할 건 다하고 살았나 봅니다. 불가능해 보였던 결혼도 하고 기적처럼 예쁜 딸도 하나 생겼답니다.
요즘도 단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매일 강의를 합니다. ‘주 5일 근무’, ‘워라밸’ 같은 말이 저에겐 사치로 들립니다. 피곤할 때도 있고, 온전히 하루 정도는 푹 쉬면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도 있지만 결코 불평하지는 않습니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음은 결국 그로 인해 저와 제 가족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앞으로도 저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제자와 제자의 부모님들께 깊은 감사와 은혜 잊지 않고 살아갈 것입니다.
배다리 도서관의 여러 관계자들에게도 큰 감사를 마음을 전합니다. 그저 책 두 권 내었을 뿐인데, 그런 작가를 알아봐 주시고 이런 기회까지 주셨습니다. 그분들께 누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자리에 와 주신 여러분이 저의 강의를 통해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늘 최선을 다하며 강연을 준비하고 행할 것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제 삶은 늘 학생들과 함께 합니다. 방학을 하면 덩달아 같이 들뜨고 신나 하며, 개학을 하게 되면 그들과 함께 한숨을 푹 쉬며 지나간 나날을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지나간 과거를 한탄만 하지는 않습니다. 새 학년, 새 학기, 새봄은 늘 신선한 행복을 줍니다. 그래서 설렙니다. 살을 에는 추운 바람이 싫어 온몸으로 거부하며 치를 떨었던 게 겨울이었다면, 이제 한껏 큰 숨으로 바람 내음을 온몸으로 담아 보려 하는 것이 봄입니다.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주위를 둘러봅니다.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봄입니다. 겨울 내내 볼 수 없었던 싱그러운 자연에 자연스레 눈길이 갑니다. 이제부터 푸르러지고 말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나무와 꽃을 바라보며 설레합니다. 그야말로 봄을 ‘봄 seeing’입니다.
봄에 하는 첫 강의 주제로 무엇을 선정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요즘 사람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되는 것에 저 또한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바로 ChatGPT입니다. ChatGPT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입니다. ChatGPT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개인비서입니다.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질문하기만 하면 ChatGPT는 웹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서를 빠른 속도로 분석하여 우리에게 요약하여 알려줍니다. ChatGPT의 능력이 어디까지 인지에 대한 뉴스는 날마다 업데이트가 됩니다. 최근에는 미국 변호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며, 의사면허시험 또한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ChatGPT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어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가 배우는 코딩 또한 ChatGPT는 명령어만 제대로 입력한다면 원하는 대로 만들어 주며, 심지어는 대학원 논문까지도 능히 해내며, 차후에는 다른 프로그램들과의 연동을 통해 그림은 물론 영상까지도 사용자의 구미에 맞게 훌륭히 해낼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존재합니다. 마블영화에 나오는 아이언맨의 비서인 자비스처럼 모든 일을 천재적인 수준으로 해내는 ChatGPT지만, 1+1에 대한 답을 가끔은 3이나 4라고 답합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지만, ChatGPT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ChatGPT는 웹상의 올라와 있는 텍스트를 분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웹상에 누군가가 1+1=2라는 텍스트를 올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ChatGPT는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지 못해 올바르지 못한 답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이 ChatGPT의 위상을 끌어내지는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사소한 단점까지 보완할 것이며, 보다 더 완벽에 가까운 버전으로 업데이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1+1=2이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능력을 가진 ChatGPT의 관한 이슈는 왜(Why)가 아니라 어떻게(How) 활용하는가에 대한 것으로 넘어왔습니다. 인터넷이 발명되었을 때,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공개되었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왜 인터넷을 써야 하는지, 왜 스마트폰을 써야 하는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인류가 이뤄낸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자하자찬하는 말입니다.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을 정도로 이미 인류는 많은 것을 이뤄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인류는 늘 새로운 것을 창조해 냅니다. 무에서 유가 아닌, 존재하는 유에서 새로운 조합을 통한 전혀 다르고, 그래서 새롭게 보이는 유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에게 큰 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그리고 얻는 이익보다 해로움이 상대적으로 작은 이상,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게 위해 현명하게 쓰는 방법을 늘 탐구합니다. 아무리 성능 좋은 컴퓨터를 가졌다 한들 그것으로 유튜브만 보고 있다면 그것은 컴퓨터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ChatGPT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바로 ‘질문을 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번 강의의 주제와 맞닿는 부분입니다. ChatGPT는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입니다. 사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의견을 교환합니다. ChatGPT와의 대화에서 잘 구성된 질문을 하면, 보다 정확하고 유익한 대답을 제공해 줍니다. 추상적인 질문보다는 구체적인 질문이어야 하며, 두루 뭉실한 질문보다는 명확한 질문이어야 하고, 일반적인 질문보다는 전문적인 질문일수록 우리는 양질의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ChatGPT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합니다. 또 글 쓰는 강의와 독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질문을 받고 거기에 답하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이 일을 20년 이상 해오다 보니 질문만 들어도 이 질문자의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나쁜 질문은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좋은 질문이어서 저를 감탄하게 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내용에 대한 적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이 궁금해하는 것을 조목조목 짚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저도 모르게 질문하는 사람의 깊이에 탄복하고 제가 아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답하려 노력합니다.
‘관계대명사가 뭔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은 추상적이면서 일반적인 질문입니다. 답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망설이게 하는 질문입니다. 물론 나름 최선을 다해 대답을 합니다만, 대답 전에 지치는 게 사실입니다. 이 질문보다는 ‘관계대명사 용법 중에서 계속적 용법이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that을 쓸 수가 없다고 들었는데요,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이 구체적이며 명확하고, 전문적인 질문에 속합니다. 관계대명사에 대해서 공부를 한 것을 기본으로, 본인이 명확하게 이해가 안 되는 점을 알아챈 다음, 질문을 한 경우입니다. 이럴 경우 저는 최선을 다해 이렇게 말해줍니다. ‘나도 모른다. 영어권 애들이 원래 그렇게 쓴다.’ 같이 웃지만 다들 수긍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는 나름의 규칙이 있지만, 때론 결코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관습이나 습관도 존재합니다. 설명이 불가하니 그저 외워서 그들처럼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문현답이 아니라 현문우답입니다. 현문이기에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강의의 제목, '답보단 질문'에 어울리는 일화였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이 또한 두루 뭉실한 질문입니다. 이 질문보다는 ‘현재 제가 하는 일이 간호사인데요. 환자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은 일화들을 엮어서 에세이를 써보고 싶어요. 그런데 목차를 미리 정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어떻게 구성할지가 난감합니다. 혹시 좋은 조언을 얻을 수 있을까요?’가 훨씬 구체적이며 명확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그야말로 제 영혼을 바쳐서 성심성의껏 답을 했습니다. 하루 꼬박 자료 조사하고, 1안, 2안, 3안까지 준비해서 답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에세이의 좋은 구성은 다음과 같으니, 선택하시라는 첨언도 했습니다. 이렇게 답하고 나니 저 또한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좋은 질문과 답은 결국 같이 배우고 같이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많은 학생들이 좋은 질문을 하지 못합니다. 아니 아예 질문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거기에 두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첫째는 바로 자신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자신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입니다.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다 보면 당연히 이해가 덜 가거나, 잘 모르는 내용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조금만 알아도 다 안다고 착각합니다. 인강을 열심히 듣는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인강이 끝나고 제가 다 이해되냐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수업을 들었으니 다 알았다고 답했습니다. 이어지는 테스트를 볼 때 옆에 같이 있었습니다. 일종의 복습테스트이었는데 그 학생은 20문제 중에 5문제밖에 맞추지 못했습니다. 그 학생은 의아해했습니다. 분명 수업을 들을 때는 다 아는 것 같았는데, 막상 문제를 풀어보니 어려웠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는 다 아는데 단지 실수가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다 아는데’라는 말이 여러 번 그 학생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왜 계속 그 말을 반복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판단은 그 학생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여린 마음을 지녔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른다’는 결코 흠이 아니며, 부끄러운 외침도 아니며,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행위도 아니며, 죄는 더더욱 아닙니다. ‘모른다’는 외침은 용기입니다. '모른다'가 ‘알고 싶다’의 동기부여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아름다움 이라는 표현은 '앎'에서 나왔습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모른다'가 결코 ‘계속 모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착각합니다. 수업을 들었으면 그 내용을 아는 것으로, 유튜브로 5분짜리 영상을 봤으니 이제 그 내용을 아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일종의 착각이며, 착시현상입니다. 모든 공부는 반드시 혼자만의 숙고와 숙지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테스트를 통해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를 체크해 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질문이 생기며, 보통 이러한 질문은 양질의 질문이 됩니다. 학생들이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혹시라도 내가 모르고 있는데 아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이처럼 자신 스스로를 더욱더 객관적으로 관찰하여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요즘 유행하는 ‘메타인지 학습법’이라 부릅니다. 지난 강연 때 저는 ‘메타인지 학습법’에 대해 언급하며 현존하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메타 인지 학습법을 이야기하면서 저는 세계 최초로 메타 인지 학습법을 강조한 사람이 철학자 ‘소크라테스’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너의 주제를 파악하라는 말이 아니라, 네가 모르고 있는 것을 적확하게 인정하고, 이를 알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단순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큰 울림이 전해집니다. 소크라테스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문답법, 즉 질문과 답의 오가는 대화를 통해 이를 실천했습니다.
The Greek philosopher Socrates observed,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For most people, however, reflection and self-examination do not come naturally. As much as any other kind of thinking, reflection requires solitude.
[2011년 6월 수능 모의평가 40번]
<의역 :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검증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에게 자기반성과 자기 검증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는다. 다른 사고와 마찬가지로, 자기반성과 성찰은 고독이 필요하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Socratic Method 또는 Socratic Dialogue)은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상대방의 생각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근본적인 가치나 원칙에 대한 의식적인 이해를 발견하는 것을 중점으로 합니다. 이 방법은 상대방의 생각과 논리를 검증하면서 그들이 형성한 주장이 타당한지 검토합니다. 또한, 문답법을 사용하는 것은 지식의 한계를 인식하고, 지식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을 촉진합니다.
이 방법은 소크라테스 자신의 탐구방법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그의 대화를 통해 예시를 볼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종종 상대방에게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는 대신,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상대방의 생각과 논리를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과 가치를 조명하고, 타당성과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도록 돕는 효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상대방의 생각과 논리를 파악하고, 근본적인 가치나 원칙에 대한 의식적인 이해를 발견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철학에서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메타인지 학습법과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모두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과정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촉진하며,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인 학습을 이끌어내는 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메타인지 학습법은 학습자가 자신의 학습 방식, 기억력, 주의력 등의 메타인지 과정을 이해하고 이를 조절하여 학습 성과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학습자는 자신이 학습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이해도를 자가 평가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절한 학습 전략을 선택하고 조절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학습자가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파악하고, 근본적인 가치나 원칙에 대한 의식적인 이해를 발견하는 것을 중점으로 합니다. 학습자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검증하고, 타당성과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통점으로 볼 때, 메타인지 학습법과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모두 학습자의 자기 인식과 인지과정을 촉진하며, 이를 바탕으로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본 강의, ‘답보단 질문’의 결론을 내릴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질문 상정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바로 ‘자신의 성찰’에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 중 몇 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 know that I am intelligent,
because I know that I know nothing."
나는 내가 영리하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The only true wisdom is in knowing you know nothing."
오직 진정한 지혜는 네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에 있다.
위의 두 문장은 자신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지혜의 첫걸음이며, 세상에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어쩌면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 일수도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견해를 밝힌 말입니다.
"The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성찰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는 삶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어독해 지문 속의 내용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을 가장 좋아해서 한 번 더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 문장은 제가 오늘 강연에서 여러분께 가장 말씀드리고 싶은 주제와도 맞닿습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에서 자신이 잘한 것과 잘 못한 것 등등을 스스로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반성이라 부르기도 하고 성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반성과 성찰의 삶은 결국 학교에서는 우등생으로, 가정에서는 올바른 자녀로, 사회에서는 성공한 시민으로 성장케 하는 가장 큰 원동력임을 저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 심리 전문가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성공한 사람들, 부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ChatGPT도 효율적으로 잘 사용하여 각종 과제도 쉽고 빠르게 해내는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성찰의 삶은 간단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생각해야 하고, 매일 글로 남겨야 합니다. 그게 어떤 형식이든 좋습니다. 짧아도 되고, 길어도 됩니다. 자기 성찰을 통해 여러분의 지금의 삶이 윤택하고 행복하길 바라며, 원하는 꿈을 향해 계속 정진해 할 것을 응원합니다.
오늘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어강사 겸 작가 황 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