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칸트의 정치철학
한나 아렌트, 내가 좋아하는 정치철학가 중의 한명이다. 사실 이 사람 밖에 몰라서 그렇다.
그녀는 내가 주로 파는 야스퍼스와 하이데거와도 긴밀한 사이였다 보니 서로 간의 주고 받는 영향력을 기대하면서도 저술 속에 드러나 있는 그런 내용들이 나를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는 동안 한나 아렌트를 자주 접하고자 노력했다.
교만하게 말한다면 그래도 꽤 읽었다고 생각했고 나름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교만이였다. 이번 책인 칸트의 정치철학은 정말 몇 번이나 보다가 포기한 지 모르겠다.
삶이 바빠서 읽다가 중간 텀을 두고 다시 읽다가 텀을 두니까 그 이전에 뭐라고 했는 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아서 다시 처음부터 본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리뷰는 여기서 끝이다.
칸트는 정치철학에 관한 저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뭐 굳이 말하자면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원한 평화’가 있긴 하지만 그것을 정치철학 저서로 구분하지는 않는가 보다.
한나 아렌트는 칸트의 저서 중에 하나인 ‘판단력 비판’을 가지고 칸트가 가지고 있다는 정치철학적 견해를 소개한다. 물론 그녀는 지속적으로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정치’에 관해서 규명했으니 칸트의 정치철학이라는 ‘정치’에 대해서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나 아렌트가 어떻게 정치를 규명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과 방법과 내용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다른 책과 전문적인 학자의 설명을 듣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을 규명하기 위해서 인간의 복수성을 들었기에 어쩌면 인간의 공통감을 말하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인용한 것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취미판단이라는 미에 대한 판단이 정치적 판단에 포섭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정치적 판단과 아름다움에 관한 판단이 공적인 출현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요구 조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인가 아름답다고 판단하고 쾌와 불쾌를 구분하는 미적 감각이 다른 이에게도 동일하게 있기 때문에 나의 판단을 상대방이 동의하였으면 좋겠다는 기대감으로 인하여 도출되는 공통감각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복수성으로 도출되는 정치적 개념의 본질을 다른 인간과의 개별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미적 판단에 있어서 도덕적인 존재거나 지성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적인 면에서 사유한다. ‘칸트의 정치철학’의 해체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한나 아렌트가 칸트의 정치철학적 개념을 발견하는 지점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점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이 정치적 판단에 포섭될 수 있는 이유는 이것들이 공적인 출현이라는 근본적인 요구 조건을 공유하기 때문, 즉 이것들은 공적 세계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라고 서술한다. 한나 아렌트는 공적 세계에 대해서 주장한다는 점에서 무사유의 결과였던 전체주의에 관한 비판을 스스로 풀어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무사유하게 될수록 전체주의의 영향력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유에 관한 중요성은 더욱 대두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러한 문제를 ‘인간의 조건’에서 구체화 하였다면 ‘칸트의 정치철학’에서 해답을 내리고자 한다.
개인적인 단상으로 그 해답의 단초는 ‘판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을 판단한다는 개념 아래에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통감각을 정치적 개념으로 녹인 것이 탁월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개인의 의견으로 설명한다면 정치를 반드시 배워야 하고 알아야 말할 수 있는 영역으로 두지 않고 취미판단의 영역으로 들여왔기 때문이다. 자격이 아니라 선험적인 영역이니 많은 개별자들이 정치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기에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