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의 슬픔
처음 시도한 인공 수정이 실패하고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시험관 시술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무작정 약을 쓸 수는 없습니다. 실패가 반복되면 아이를 만나는 시점이 생각보다 훨씬 늦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왜 병원을 빨리 찾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아내는 배 주사와 질정제를 처방받고 다시 한 달여를 고생하다가 난자 세 개를 얻었습니다.
고배란 주사를 맞아도 생성되는 난자의 개수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많은 생성되는 사람은 20개가 넘는가 하면, 적게 생성되는 사람은 1개에 그치기도 하지요. 중요한 것은 성숙된 난자의 개수입니다. 아내의 난자 세 개 중에서 한 개만 중간 등급이고 나머지는 낮은 등급이라고 했습니다. 수정란이 될 확률이 높은 난자가 1개뿐이라는 거죠. 이번에는 이럴 거면 배 주사를 왜 맞은 건가 하는 원망이 듭니다. 남들은 여러 개가 나와서 일부는 얼려두기도 한다는데 이번에 실패하면 그 고생을 또 어떻게 반복하나 싶었어요. 그런데 고생의 당시자인 아내가 오히려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하나만 잘 착상하면 되는 거잖아요.”
며칠 뒤에 아내는 임신테스트기를 해봅니다. 어차피 나중에 알게 될 테지만 말리지 않았어요. 기대하고 갔다가 실패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빠지는 것을 미리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주 아주 희미하게 두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비엄마들은 매직아이라고 하지요. 하루하루 지나가자 임테기의 두줄이 진해지더니 1차와 2차 피검사를 모두 통과하고 아기집에 이어 힘차게 뛰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요. 그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일하다가 종종 들어보며 우리 아기 심장이 힘차게 뛴다며 즐거워 하곤 했어요. 그리고는 아쉽게도 8주 차 검진에서 심장 박동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었습니다. 유산이 된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에서 대기하다가 소식을 들은 저는 뜨겁게 울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말이 없었습니다. 한동안 조용한 눈물의 밤이 이어졌습니다. 7주 동안 태명을 부르며 정이 들었던 터라 슬픔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 소파술을 통해 태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고 아픈 마음만 오롯이 남았습니다.
주변의 지인들과 소식을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유산을 경험한 부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 두 번째 임신이었다는 정도였습니다. 블로그에서도 다양한 유산의 사연을 만날 수 있었고요. 찾아보니 우리나라의 자연유산 확률은 약 20%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리만 아픈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위로가 되는 한편으로 수많은 가정이 아파했고 지금도 아파하고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습니다.
유산에 대한 걱정이 없지 않았었는데도 막상 현실이 되자 견디는 일이 힘겨웠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상심이 컸어요. 남편의 마음도 이렇게 아픈데 본인의 몸속에 품었던 생명이 사라진 아내의 상처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유산한 여성은 아이를 낳은 것과 같은 수준의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정말 마음과 몸이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산책을 자주 했습니다. 아이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서로에게 집중하기로 했지요. 부부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서로이고, 아이는 언젠가 다시 찾아올 테니까요. 유산을 경험하면서 임신은 몸과 함께 마음의 건강도 중요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임신 과정 중에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죠. 상처는 아팠지만 나중에 다가올 불안과 문제를 견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저희 부부는 부모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