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낳기 위해 생명을 걸다
‘출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죽을 듯이 으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는 여성의 모습입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엄마가 된 여성은 스르르 몸이 풀리면서 눈을 감거나 지쳤지만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아가를 바라보죠. 드라마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장면입니다.
저희 부부에게도 그날이 점점 다가옵니다. 이러다가 터지는 것 아닐까 싶게 배가 커지면, 자연분만이냐 제왕절개냐를 선택해야 하지요. 아내는 며칠간 고민하더니 쌍둥이인데도 용감하게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결정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결정에 의사 선생님은 조금 놀라는 눈치입니다. 쌍둥이는 제왕절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이제부터는 아가들의 시간입니다. 쌍둥이를 자연 분만하기 위해서는 두 명 다 정자세, 그러니까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연분만하겠다는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아가들은 처음부터 정자세로 뱃속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쌍둥이는 보통 37주가 되면 진통이 없어도 유도분만을 하거나 자연분만을 합니다. 뱃속에 공간이 없어서 더 자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아가가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시기가 37주입니다. 그전에 세상에 나오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지요. 그런데 34주 차 검진에서 일이 생깁니다. 아가 한 명이 역아 자세가 된 겁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돌았는지 모르지만 180도 회전을 해서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있는 거죠. 이 상태가 37주까지 지속되면 제왕절개를 해야 합니다. 자연 분만을 하면 위험하기 때문이죠. 아이를 다시 돌리기 위해 아내는 고양이 자세 같은 운동을 시도해 봅니다. 배가 너무 커져서 힘든 나머지 몇 번 하지 못하고 35주에 다시 병원에 갔지요. 초음파 감사를 하던 의사 선생님이 다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갔다 옵니다. 아가가 다시 자세를 바꿔서 정자세를 취한 걸 보고, 또 돌았다는 사실에 놀라서 지난번 검사 결과를 보러 다녀온 거죠. 아내는 다시 자연분만의 고통을 상상하며 결의를 다집니다. 그리고 36주, 아가는 다시 역아 자세가 되어서 엄마의 결심이 무색하게 출산 방법은 제왕절개로 결정되었습니다. 그 좁은 뱃속에서 한 바퀴 반을 돈 아가에게 뺑글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지요.
제왕절개와 자연분만 모두 산모는 큰 위험에 노출된 상태로 아이를 출산합니다.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것이었어요. 태반과 연결된 동맥과 정맥은 아이가 태어나고 태반이 떨어져 나가면 늘어났던 자궁이 수축되면서 자연히 지혈이 되어야 하는데 출혈이 멈추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고 합니다. 원인은 다양한데 자궁이 수축되지 않는 경우를 자궁무력증이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처치 방법이 있는데 상황이 심각하면 자궁을 절개하거나 최악의 경우 산모가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걱정이 많은 남편은 자궁무력증을 설명하는 책에서 수도꼭지에서 물을 튼 것처럼 출혈이 생긴다는 표현을 읽고서 겁에 질립니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 기대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한 나날을 보내고 출산일이 되었습니다. 근심이 어린 남편과 달리 용감하게 수술실로 들어간 아내는 엄마가 되어서 병실로 돌아왔습니다. 터질 것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건강했고 걱정하던 자궁 과다 출혈 없이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었지요.
2018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산모의 사망률은 10만 명당 11.3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극히 낮은 수준이라 누군가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11명의 가족은 황망한 이별에 쏟아지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겠지요. 아내는 생명을 걸고 아이를 낳았으니, 아빠는 생명을 걸고 아이들을 지킬 생각입니다. 다짐이 흐려질 때마다 이 글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