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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올로스 Jan 06. 2022

"넘사벽"이라는 키워드와 "노오력"

노력해도 안됨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1. 어떤 노력으로도 "넘어설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넘사벽의 클래스를 보여준다." 위와 같은 내용을 넘사벽이란 단어를 일반 커뮤니티와 같은 집단에서 사용을 한다. 보통 이런 키워드는 경쟁이 심한 스포츠 계열이나, 경연 프로그램과 같은 곳에서 극 소수의 인원들에게 표현하는 칭찬으로 사용되고는 한다.  

 대부분의 인간의 능력은 우리가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배운 아래 표준 정규 분표 표를 따라서 배분된다. X축의 오른쪽으로 뻗어나감이 능력치라 정할 때, 오른쪽 극한치에 도달할 때 그런 특징을 가진 수는 극단적으로 줄어든다. 예를 들어 축구에서 손흥민 클래스,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클래스 전 세계에 극소수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시작을 해서, 고등학교 선수생활, 대학교 선수생활을 거쳐서 프로구단에 입단하는 인원이 1%에 속한다고 한다. 국가대표 엔트리에 드는 23명의 인원이 아니라 전국 프로무대라 할 수 있는 K-리그에서 뛰는 인원이 약 1% 정도 된다고 하니 99%는 프로무대에서 프로선수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한다고 보면 된다.

  그중에서 외제차와 고급 저택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0.01% 이내의 인원이지 않을까?


2. 우리 사회에서 0.01%가 국민의 대다수로 보이는 이유?

 대다수의 사람들의 삶은 우리 인간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옆에 팀원들이 최근 5년간 이성친구가 몇 번 바뀌었는지 아는가? 하지만 유명 연예인 A의 이성친구가 누구인 줄은 잘 안다. 혹은 전 이성친구를 말하거나 최소한 옆에 팀원의 삶보다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우리의 삶은 내가 관심이 없듯 남도 나에게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당신이 인싸(인사이더, 집단의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하는 사람)라면 그 분위기가 달라질 듯하다.

 대한민국에서 최고 명문대라 할 수 있는 서울대, 기타 의대 들어간 친구들 스펙을 보면 상위 1% 안에 드는 인재들이다. 그런데 그런 친구들은 엄마 친구들 중에는 꼭 한 명씩 있다. 아마 같은 사람인데 여러 사람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말이 자꾸 커져서 여러 사람으로 보일 것일 수도 있다.

 또한 TV, 유튜버, 방송에서 이야기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위 1% 안에 성공을 한 사람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찾아서 본다. 그리고 그들의 사회가 일반인의 사회와 괴리가 있음에도 평준회 된 사회라 착각하게 만든다.


3. 노력으로 상위 1%가 될 수 있을까?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 났다가 가능했다. 절대다수가 동일한 선상에서 학교 공부 + 교과서만 열심히 보면 되었기 때문이다. 보통 운동은 운동신경이 부족해서 못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공부는 타고난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프로 농구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일반인을 훨씬 뛰어넘고, 프로 축구선수의 피지컬도 일반인을 뛰어넘는다.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식으로 먹고사는 모두가 프로다. 공부도 타고나야 한다. 같은 정보를 주어도 기존의 정보와 잘 버무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데 일조하는 애도 있고, 암기력이 부족해서 시험장에 가면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신규 기억은 해마라는 뇌의 한 구간에서, 뉴런이 번쩍하면서... 이런 과정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개인마다 차이는 분명 있을 수밖에 없는데 공부에 관해서는 유독 머리가 나쁠 수 있다는 것. 정확히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다.


4. 헝그리 공식을 버려야 정서적으로 헝그리 하지 않다.

 보통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경우 노력 + 눈물겨운 스토리를 넣어준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언급하기보다 부상에 느꼈을 어떤 심정, 그 부상을 어떻게 극복하였는지에 스토리를 넣어준다. 우리 사회가 성공한 사람에게 집중을 하며, 성공신화를 아직도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 사회적 기준을 벗어던지는 사람들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자존감 회복"에 대해서 온 사회가 나가고 있으며, 과거 엘리트 양성 위주의 교육, 체육활동보다 일반인 위주의 정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올림픽에서 10위권 밖으로 나가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금메달을 못 따고 은메달에 머무르면 죄인이 되어 고개를 떨구던 사회적 분위기와는 매우 다르다. 1등의 신회를 원한다면, 동네 체육시설을 모두 없애고 진천 선수촌에 투자를 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기준에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노력이 부족했다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NBA 스타가 엄청난 연봉을 벌어드려도 NBA라는 시장이 없었다면, 동네 공 좀 튀기는 형이었을 뿐이고, 강한 기근이 닥치는 불안정한 사회라면 "베어 그릴스"처럼 생존 전문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타고난 재능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재능이 분명 수익성이 없을 뿐이다. 종이 접기만 해도 높은 공간지각 능력을 갖고 있고, 예술적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인데, 프로 리그가 없다는 이유로 상업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결국 당신의 타고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야 사회적 성공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수요는 당신이 정하는 게 아니다. 단순 운이 좋아야 할 뿐이다. 그 사회적 기준에 당신을 끼워 맞추려 하지 말자. 우리는 여태까지 그렇게 배우고 살았지만, 그 기준에서 벗어나야 우리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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