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고르기
빅토리아 섬에서 밴쿠버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 행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 안 사람들은 많고 짐으로 가득한 뚱뚱한 내 캐리어는 좀처럼 중심을 못잡고 운전 방향에 따라 뒤뚱 뒤뚱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게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옛날 모델이라 안타깝게도 바닥에 두 개의 바퀴만 있었다. 요즘 나오는 네 바퀴처럼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지 못한다.)
이 연식 있는 가방과 요령 없는 주인은 알게 모르게 단 둘이 조용히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는 행여나 뒤뚱거리고 있는 가방이 엎어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을까 온힘을 다해 가방을 붙잡고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안타까웠는지 갑자기 맞은 편 자리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의 손이 닿았다.
그녀는 덥석 내 가방을 대신 붙잡아 주곤 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Look at the sea, isn't it beautiful?"
"저기 저 바다 좀 보렴, 정말 아름답지 않니?"
오직 가방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던 내 시선이 그녀의 말에 창문쪽으로 옮겨 갔다.
창문 밖은 온통 바다로 푸른빛이 펼쳐져 있었다.
햇빛에 반사된 바다 결들은 눈 부시게 반짝반짝 빛을 내고 마치 별처럼 동동 떠 있었다.
그 빛들은 유리창 사이사이 넘어 내 얼굴과 손에 따스히 감싸주었다.
순간 머리가 띵 - 해졌다.
분명 난 여행을 왔다.
그런데 여가를 즐기긴 커녕 그저 아무 탈 없는 하루가 되길 애쓰고만 있었다.
심지어 이 말을 듣기 전까지 내가 정말 힘든줄도 모른 채 정신 없이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일상과 다를 바가 없는 이럴거면 여행을 왜 하러 온건지 의문인 여행 아닌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긋지긋한 내 환경에서 벗어난다면 내가 누군지 알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면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어코 힘들게 현실서 벗어나 멀리 떠났는데도 똑같이 난 힘들어하고 있었다.
이런 내가 싫었고 대체 날 어떻게 해야되는지 몰라 힘들었다.
그런데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여태 내가 계속 놓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지금' 이었다.
지금 이렇게 숨쉬고 있는 내가 바로 '나'라는 걸.
어제 난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했는지, 내일은 어떻게 해야할지 등 과거와 미래에 대한 후회와 계획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단, 지금 내 안의 감각들을 열고 느끼며 매 순간순간들을 집중했다.
그러고 나니 진짜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필요도 없어졌고, 내 안에 있던 불안과 번민들이 조금은 사라지고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힘들고 지친 일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어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날, 빅토리아 여정이 기억 속에서 떠오른다.
이상하게도 그 기억은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포기하지 말고 지금의 나를 잊지 마. 그러면 엉망진창인 하루 중에도 분명히 빛나는 순간이 있을 거야’
바로 그 날 - 지쳐있던 내게 반짝반짝 빛을 안겨준 그 하루처럼.
아무 것도 아닌 나라고 여겼던 내가, 반짝반짝 빛날 수도 있다는 걸 알게해준 그 순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