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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Jan 15. 2020

2020년은 침잠이다

집에 머무는 연습하기

유치원 하원 후 키즈노트를 확인하니, 언어전달장에 적을 단어가 올라왔다.
'오늘의 언어전달은 2020입니다.'


2020년이 2주가 지나고 있다.
작년 연말 보신각 종소리를 듣거나 카운트다운은 하지 않고 먼저 자겠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했지만, 유튜브의 영상을 찾아보다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다는 걸 알고 '망했다' 생각했다.
다음날 늦잠을 잤다. 1월 1일부터.


새해의 가장 큰 결심 중 하나는 오로지 침잠(沈潛)이다.
이 단어를 책에서 본 순간 그냥 매료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한수희 작가의 책에서 그녀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 중 하나로 침잠하며 지내는 것을 이야기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그녀가 쓴 <온전히 나답게>라는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계속 곁에 두고 싶어서 구매했다.
지겹도록 추운 집에서 살아본 경험이 떠올라서였을까, 아니면 크로와상에 관한 해프닝이 우아하게 느껴져셔 였을까, 어쨌든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나야말로 그런 삶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 무던히 노력 중이다. 밖으로만 나다니길 좋아하는 사람이라 내 일이 우선이고, 집안일은 그때그때 완벽하지 않을 정도로만 해낸다.
그렇게 돌아다니는 일이 생산적인 일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카페에 앉아 책을 보거나 메모를 하거나 생각정리의 시간을 갖는 건데 커피 매니아도 아니고, 딱히 일도 없는 사람이 나를 위한 힐링이라는 이유를 대며 카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 아쉽다.
그래도 아쉬움을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우리 집 거실 테이블에 앉아 오늘도 무던히 집에 있기 위해 노력하며 글을 쓴다.
새해에는 침잠하는 삶을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하나, 글을 쓰는 것

내가 글을 잘 써서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 일상을 써 내려가고 생각을 쓰는 것들이 의미 있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민식 pd님의 책 <매일 아침 써봤니?>가 글쓰기를 위한 성냥을 들게 했고, 한재우 작가의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이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수희 작가의 모든 책들이 나에게 너도 글을 써보라고 용기를 주었다.
작가처럼 글을 잘 쓸 수 없겠지만, 나의 무던한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변화와 공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기록하게 되면, 나중에 우리 딸이 엄마의 삶을 통해 사소한 것이라도 지혜를 얻지 않을까 욕심도 났다.


또 하나, 작년 3월 몇 달을 비건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느꼈던 몸의 변화와 생각들을 남긴 기록을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반성과 후회 그리고 노력으로 인한 긍정적인 생활들을 떠올릴 수 있어 다시 건강한 식생활을 도전할 계기가 됐다.

삶의 일부를 남기는 일이 내가 살아온 모든 발자취의 일부분들이라고 생각하니 기록하는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두울, 다시 비건과 자연식물식의 중간쯤으로 살아가는 것

아이의 건강으로 인해 알게 된 많은 정보들을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들이 나에게는 인생을 살면서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처음에는 이루기 힘들지만, 습관이 되면 이마저도 몸에서 거부하니 먹을 수가 없게 된다.

눈뜨면 고기부터 굽던 내가 고기를 1년이 다 되도록 먹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놀랍지만, 완벽하게 유제품과 과자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했다.
비건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나 자연식물식을 찬양하는 해외 의사들의 다양한 책을 읽고 식단의 변화를 직접 경험했지만, 아직 비건으로의 삶은 살아갈 자신이 없다.

윤리적인 이유로 동물보호를 외치며 시작된 비건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한 것들이 슬슬 동물들에게도 관심을 갖는 중이라 이도 저도 아닌 중립이긴 하지만, 여하튼 자연식에 가까운 식단을 하며 한 해를 보내는 게 목표이기도 하다.

내 살의 8할은 어려서부터 끊지 못했던 과자 살이 분명하다. 자연식으로 한 달에 6kg을 감량하고 이후에 살이 계속 빠져 총 8kg를 감량했지만, 지난해 아이의 입원으로 석 달을 그냥 되는 대로 먹고살았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 비건과 자연식물식의 중간쯤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적당한 선까지 건강한 식단으로.



세엣, 잊고 있던 영어를 다시 시작하는 것

wonder(아름다운 아이)를 읽고 너무 좋아 영화로 다시 만났다. 책보다는 간추려진 이야기들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책이 훨씬 좋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쥴리아로버츠가 나와서 만족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책과 함께 원서를 구매했다.
부담 없이 영어 공부를 하기에 적합한 책이라는 추천들이 많았고, 아직 시작단계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될 만큼 어려운 단어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집에서 하루 한 문장씩이라도 좋으니, 써보고 수도 없이 말해보는 거다.

김민식 pd (이 분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님이 썼던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처럼 책 한 권 외워보기 위해 wonder를 선택했다.
올해는 꼭 이 책을 씹어먹어 봐야지.




넷, 독서의 즐거움을 깨닫게 된 것을 지켜가는 것.

내 독서의 즐거움은 다름 아닌 <공부머리 독서법>에서 시작되었다. 유명한 작가의 소설책도 아니고, 월등히 효과가 좋았던 독서법이나 자기 계발 서적도 아니었다.

작년 도서관 모임에서 알게 된 이 책을 구매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던 그 순간들이 나에게 즐거웠었나 보다. 꼼꼼히 읽기보다는 속독에 익숙해져 있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정독하는 자세로 바뀌어 갔다는 점이 독서를 하며 이루어낸 가장 큰 성과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재미도 생겼으니 올 해부터는 제대로 독서를 즐길 계획이다.
이미 코스모스와 한국사 책도 구매완료.



다섯, 유튜브 시작하기

그림책을 좋아하지만,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풀어내면 좋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책을 읽어주고 만들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재미있었는데 리뷰는 재미없었다.
늘 재미있는 것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것이 베이스가 되어야 꾸준히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처음에는 남들이 하던 데로 먹방을 해야 하나, 예쁜 영상을 올려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건 내가 아니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나와 아이의 진짜 생활을 보여주는 게 내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와 그림책 육아에 관련된 영상을 올리는 것, 욕심내지 않고 주 1회 브이로그를 시작한다.




여섯, 소비를 점검하기

안 써도 되는 돈들을 습관처럼 써왔다.
재작년까지 소셜에서 질렀던 많은 소비들을 조금씩 줄여나갔고, 의식 없이 썼던 카페 지출을 막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계부를 수기로 쓰는 것이 매번 실패하기 때문에 어플로라도 잘 써놓고, 한 달에 한 번씩만 엑셀로 정리할 생각이다.

그마저도 정리하지 않으면 돌발 지출에 관한 데이터를 한눈에 볼 수 없기 때문에 난감해진다.
급여가 인상되었는데도 남는 돈이 오르기 이전보다 더 줄어든다면 이건 정말 내 문제다. 안사람이 돈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아직은 턱없다.




이미 습관이 된 것들에 대해,

매일 등원 후 걷기+계단 오르기를 하는 것이다.
뭐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세팅해놔야 내 하루가 지치지 않는 법이다. 무리하면 지키지 못한 나에게 실망하게 되고 화만 난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작은 것부터 생활에 녹이는 게 맞다.


내가 걷기와 계단 오르기를 하는 시간은 고작 해봐야 40분 남짓이다. 빠르게 걷지도 않고,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에 따라 발걸음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짧은 시간이라도 햇볕을 보고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15층 계단 오르기에서 더 욕심을 부리고 싶지만, 무리하면 쉽게 포기하는 법이다.





그리하여,
이 모든 약속들은 집으로 침잠하는 삶을 살았을 때 가능한 조건들이다. 매일 이루기 위해 노력하려면 우선 집에 머물러야 한다.
아이의 유치원 개학에 맞춰 며칠 시도하고 있기는 한데 생각보다 집에 있는 시간들이 나쁘지 않다.

주 7일을 밖으로 나가던 활동적인 내가 건강을 위한 계단 오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을 위한 계단을 만들기 위해 집에 머무르기로 한다.
카페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sweet vosanoa를 실시간으로 틀어놓고, 뜨거운 커피 한잔과 좋은 행동들을 하나씩 시도한다.

2020년은 침잠이다.
집으로, 그리고 나에게로.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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