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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Apr 06. 2020

곧이어 상상

나는 요즘 매일 같은 상상을 한다.

아이가 등원하면 나는 내 발길이 닫는 곳을 마냥 걷다가 지친 발바닥과 약간의 통증을 느낄 허리로 기댈만한 장소가 있는 곳을 찾는다.

내 등과 엉덩이가 쉼을 원하는 곳으로 아무 곳에나 앉아 따뜻하게 담아온 루이보스 티를 마시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나는 요즘 매일 같은 상상을 한다.

매일같이 다리가 아파서 더 이상 못 걷는 시간이 오면 길거리 곳곳에 있는 벤치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흠집난 시멘트 모퉁이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등원하면 알람을 맞춰놓고 정해진 분량의 독서를 하다가 알람이 끝나는 시간으로부터 다시 짧게나마 독서노트를 쓰는 상상을, 그러다가 영어문장을 한번 외우고 한자를 하루에 딱 3개만 써보는 상상을 말이다.  



<걷기를 희망하다>




올해 초, 가족들의 생일을 달력에 정리하던 중 곁에 있던 남편에게 이번 내 생일에는 동생과 대구로 여행을 가겠다고 이야기했었다.

음력 생일을 쇠는 나는 대부분 3월이었던 지난날의 생일과는 달리 올해는 2월 말쯤에 가깝다고 말했고, 이때는 많이 추울 수도 있는데 여행할 때 두꺼운 점퍼는 여행에 방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왜 하필 대구로 결정했냐는 남편에게, 대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도시이고 찾아보니 볼거리가 많다더라, 중고 서점들이 예뻐서 마음에 들고, 책 여행을 테마로 첫출발을 이곳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마흔 살을 기점으로 내 생일과 열흘 차이나는 동생 생일도 해마다 함께 기념하여 매년 2박 3일의 국내 여행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남편은 지금은 회사 일이 바쁜 관계로 2월 말이 아니라 가을쯤 가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2월 내 생일쯤 코로나의 대규모 집단 감염이 대구에서 터졌다.




코로나 탓에, 혹은 코로나 덕에

생활-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작은 행복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소소한 행복들은 상상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매일을 버티고 있다.

대구를 비롯한 전역에서 밤낮없이 자신의 체력과 부딪치며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의료진들과 두려움과 고통, 누군가에게는 생이별을 경험하는 순간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의 편안함에 대한 감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더해진다.

안타까운 소식들이 연일 뉴스에서 쏟아지고, 사회 간 거리두기가 2주 연장되었어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의 시작이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응원이 아닐까 생각하는 마음에서이다.

주말에 한살림에 갔다가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분들에게 간식을 보내는 캠페인이 있길래 아이에게 설명해주고 어떤 간식을 넣어주면 좋을지 물어보았다.

아이는 초콜릿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고는 의사 선생님 드리면서 자기 것도 사도 되느냐고 물었다.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 아이는 그 박스 안에 들어있는 다양한 종류의 간식들을 들여다보며 조심스럽게 우리의 초콜릿을 넣었다.


  

<한살림의 좋은 캠페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2주간 연장되고, 정부에서는 매일 발생하는 확진자수를 50명 이하로 목표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외출하는 사람들은 계속한다.  나도 그제는 신랑 생일을 기념해서 그런 이기심을 부려보았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빵을 먹고 싶었는데 그날 먹은 빵이 문제가 있었는지, 새벽 내내 우리 가족은  싸해진 아랫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전부 쏟아내는 통에 정작 남편의 생일이었던 일요일에는 다들 늦잠을 자르라 점심을 첫끼로 시작했다.

포장해 온 남은 빵이 얄미워 일어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렸다.

사람 많은 곳에 가지 말아야지 했던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에 꼴좋게 새벽잠을 빼앗기고 말았다.




앞으로 얼마 동안 나는 매일 같은 상상을 할 것이다.

여행은 가을로 미뤄졌으니 희망적이고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번엔 혼자만의 북캉스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정 속에서도 호캉스의 준비물을 기록해보고, 주변의 맛집 탐색이나 걷기 코스도 찾아보고, 내게 혼자 있는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주어지게 될까를 떠올리며 설렘과 기대로 매일을 보낼 것이다.

전날 놀이동산이라도 갈라치면 들뜬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학창 시절의 마음대로, 어디라도 좋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에 내가 머무는 상상을 시작할 것이다.

미래의 북캉스라는 키워드 아래 마음껏 창의력을 키워본다.

곧이어 상상한다. 코로나를 버텨보는 나만의 방식으로.




@bypha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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