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phapha Apr 27. 2020

부재중 연애편지

"엄마 연애편지가 뭐야?"




                                                                                                                                                                    


일본의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고무줄은 내 거야>를 읽던 딸이 내게 연.애.편.지.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사랑하는 남자 여자가 서로에게 편지 쓰는 거야"

"그럼 엄마 아빠도 있어?"

"그럼 있지. 엄마가 아빠 군대 갔을 때 썼던 연애편지 집에 있어"

"보여줘 엄마. 읽어줘 빨리"

아이는 다소 격양된 말투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내게 연애편지를 빨리 가져오라고 말했다.


          


<내가 보낸 연애편지>




베란다 구석 오래된 냉동만두 박스 안에서 남편이 절대 버리지 말라고 했던 군대 시절의 편지들을 보았다.

대부분이 내가 썼던 편지들이고, 몇 개는 시댁 식구들이 보낸 편지들도 섞여있었다.

눈에 띄는 노란색 편지 봉투를 꺼내 거실로 돌아오는 동안 귀엽다고 해도 될 만큼 삐뚤 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내 글씨체와 마주했다.

20대의 귀여운 글씨체라고 하기에도 조금 오그라드는, 어른스러움이 전혀 없는 요상한 글씨체였다.

우편봉투 위의 2003년이라고 찍힌 직인 도장과 우표가 눈에 들어왔다.

우표를 실제로 볼일이 없었던 아이에게 이게 우표라는 것이고, 편지를 보낼 때 반드시 우표를 구매해서 봉투 위에 붙여야만 상대방에게 편지가 전달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이 우표가 택배비 같은 거야. 그런데 엄마가 아빠한테 보낼 때는 200원밖에 안 했네"

17년이나 지난 현재에는 우표값이 얼마나 올랐을까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470원으로 두 배 이상 올랐다.

옛날 우표 가격 한 장에 나도 옛날 사람이 되어버린 기분이다.






두툼한 편지를 꺼내자 편지봉투를 열기 위해 찢었던 모서리 종이 끝부분이 내 앞에 툭- 떨어졌다.

'이 사람, 내가 준 편지는 너무 소중해서 편지 모서리까지 함께 보관했던 거야?' 하며 남편의 순수한 마음에 피식 웃었다.

연애하던 그때의 그 기분이 간질간질하게 내 등을 타고 내려왔다.

군대 면회를 간 나에게 남편은 PX를 가지 않고 모았던 월급을 모아 차비하라며 내게 주었다.

버스 여행에 혹시 필요할지 모르니 챙겨가라며 바스락 거리는 비닐포장으로 되어 있던 반 접힌 여행용 휴지를 황급히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버스를 타면서 볼록하게 올라온 여행용 휴지 안에 만 원짜리 몇 장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차창 밖에 서 있는 남편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

남편은 양손을 모아 입가로 가져간 뒤 '차비- 고마워'라고 말했다.

군대 간 남자 친구한테 차비까지 받아오는 년은 너밖에 없을 거라고 대학 동기들의 질투와 구박을 함께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남의 연애사에 관심갖는 딸-별 내용없다며 시시해했다.>




언젠가 우리 딸도 연애를 시작하게 되면 연애편지라는 것을 쓰거나 받거나 하겠지 생각하니 내 마음이 괜스레 떨려온다.

퇴근한 신랑에게 연애편지를 읽어주었다고 말하니, 대뜸 아이에게 하는 말이 혹시라도 군대 간 남자 친구를 기다리지 말라는 것이었다.

일병 때에는 그토록 간절하던 편지가 상병과 병장의 시기를 지나면 차츰 여친에 대한 부담과 제대 후 심경변화의 혼란를 만들어 낸다는 군대 동기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그럼 자기도 내가 편지 쓰는 거 부담스러웠겠네?"

"에이- 나는 당연히 아니지. 이 편지처럼 쓰기 싫어 죽겠는 것 같은 편지를 받으면서도 얼마나 좋아했는데"

편지의 내용이 누가 보더라도 성의 없는 글밥의 연속이라 남편의 말을 부정하기 어려웠다.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부대 내 묘한 경쟁에서 시작된 편지 쓰기였던 것 같다.

누가 일주일에 편지를 얼마나 많이 받는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분명히 내가 자극을 받았고, 하루에 2통의 편지를 쓰는 날도 적지 않았다.

책이나 영화에서처럼 꼭 필요한 말만 아껴두었다가 조심스레 꺼내고, 말로 하기 어려운 말들을 전하는 진짜 연애편지와는 달리 내가 남편에게 보낸 연애편지는 오로지 경쟁을 위한 수단이었다.

최대한 자간을 넓게 활용하여 편지의 장 수를 채우기 위한 방법으로는 글씨 옆으로 흘려 쓰기와 스티커 남발하기 등이 있었는데 편지 맨 마지막 장의 추신 란에는 7~8줄의 휑한 공백을 여분으로 두고 하트를 크게 겹겹이 그리는 식이었다.





"얼마나 쓸 말이 없었으면 피자 먹고 치킨 먹은 것까지 쓰냐"

"하하하 그러니까. 내가 별이한테 읽어주면서도 이 편지는 버려도 되겠다 싶더라고"

나의 연애편지는 남편의 군대 기간 동안만 활성화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쓰지 않았는지 기억에도 없었다.

작년 가족이 함께 아픔을 견뎌낸 시기에도 남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슴속에 꽉 차있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는데도 생일날 남편에게 편지를 쓰지 못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차분하고 진솔되게 글로 써보자 마음먹고 엽서까지 챙겼는데 아빠 생일날 엄마는 왜 편지를 안 쓰냐는 딸아이의 추궁에도 쉽사리 펜을 들기가 어려웠다.

긴 연애와 결혼생활은 내게 잔잔함 넘치는 가장 큰 행복이었는데도 남편에게 편지 쓰는 행위를 멈추어버렸다.

아마 남편과 내가 우리라는 공기 안에서 별도의 공유할 내용 없이, 불편한 어긋남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이 편지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한 변명이 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읽어본 별 내용 없는 연애편지는 잠깐 동안이나마 내게 설렘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로써는 사랑하는 사람과 별 탈 없이 살고 있다는 까닭으로 그에게 편지는 부치지 못하겠다.




@byphapha  


매거진의 이전글 인내와 경계의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