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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Nov 09. 2021

애착인형 작별기

대파야 미안해

얼마 전, 아이는 오랫동안 침대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애착인형과 헤어지게 되었다.

사촌언니가 더 이상 안고 잠들지 않는다기에 달라고 했던 인형을 만 4년 동안이나 잘 끌어안고 잠이 들었었다.

가끔 장거리 여행을 갈 때 인형을 챙기기도 했는데 그만큼 예뻐하면서도 적당한 애착을 유지하며 침대와 식탁, 방 여기저기를 아이 곁에서 함께 있어주었던 물건이었다.



머리를 포함하여 7개의 동그란 몸통으로 이루어진 이 애벌레 인형은 여러 번 나의 수술대 위에 올려졌었다.

세탁 후에는 깨끗해져 새 인형을 선물 받은 기분을 아이가 느끼기도 했지만 소재의 특성 때문인지 그럴수록 더 빨리 낡아져만 갔다.

여기저기 헤지고 삭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날실과 씨실의 결에 따라 옅은 틈새가 벌어지고 나면, 아이는 늘 내게 수술을 권했다.

"엄마 캐터네모 수술해 줘."

아이가 학교 가는 모습을 배웅하고 나면, 나는 어김없이 반짇고리를 챙겨 가로 형의 넓은 식탁 위에 인형을 올려두고 내 마음대로, 그러나 꼼꼼하게 정성껏 꿰매 주었다.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있는 최대한의 할 일이었지만 꿰매고 나면 그 수명이 더 짧아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캐터네모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인형의 모습을 보며 나도 그리고 딸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아이에게 "케터네모 수술 끝났습니다."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솜뭉치로 이루어진 애벌레 인형을 잡고 얼굴과 몸통을 마구 우그리며 오랜만에 만난 그리운 사람처럼 두 팔로 꽉 끌어안았다.




즐거웠어 우리는 모두 너를 사랑했단다




얼굴은 꽤나 귀엽게 생겼는데 더듬이는 사촌언니 곁을 지키고 있었을 때부터 잘려 아이에게 왔었다.

몸통을 비롯하여 얼굴 여기저기가 가감 없이 꿰매진 덕분에 애벌레계의 프랑켄 슈타인이라고 불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비주얼이다.

12개의 짧고 새빨간 다리들이 몸통 옆에 대롱대롱 달려있고 이게 정말 살아있는 애벌레라면 과연  짧고 땡그란 다리로 통통한 몸을 지탱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키는 80cm 정도로 꽤나 길다.

그런데 만 4년을 아이 옆에 붙어 사랑을 받아온 이 인형을 더 이상은 복구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 이제 그만 보내주기로 합의한 것이다.



몇 번인가 아이에게 진지하게 더 이상은 꿰맬 수 없고, 솜이 자꾸 터져 나오는 바람에 잘 때 끌어안고 자기도 위험하다고 했지만 아이는 극구 나의 제안을 거절했다.

<캐터네모>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도 아이의 생각이었는데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캐터필라와 네모의 합성어인 건 확실하다.

여기저기 살펴봐도 네모진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는 둥그런 저 애벌레에게 왜 '네모'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은 이 인형을 참 좋아했다.






나도 어렸을 때 서울랜드에 가서 부모님이 사주었던 너구리 인형을 초등학교 2년까지 곁에 두었던 기억이 있다.

의상을 만드셨던 부모님 직업 때문에 공장에 가서 바늘과 실을 가져다가 색색의 플라스틱 구슬을 꿰어 너구리 인형의 양쪽 귀에 귀걸이를 만들어주었던 그 기억.

부드럽기보다는 까칠한 감촉의 짧은 털들을 쓰다듬으며 가끔 나는 그 인형에게 말을 걸기도 했었다.

아이에게 나의 애착 인형에 대해 소개해주자 아이는 흥미로워했다.

사이즈와 색깔, 어디서 생긴 인형인지 묻기도 하고 언제부터 없었는지도 물어보았다.

나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해주었고, 엄마도 크면서 더 이상 애착 인형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떠나게 되는 것들은 떠나고 남아있는 것들은 그대로 잘 지내야 한다고 했다.

케터네모와 헤어질 때 아이는 이제 체념한 듯 헤어져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유치원 때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삐진거 아니지 대파야


자꾸 벽에 붙어 자는 아이에게 새로운 인형을 사주겠다고 하자 아이는 매번 거절했다.

이제 더 이상 인형은 필요 없고 없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못내 헤어지게 된 아이의 애착인형을 떠올리며 새 인형을 찾았고 아이에게 서프라이즈라며 새로 산 인형을 아이에게 건네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케터네모처럼 이름 지어주는 거 어때?"

"싫어. 얘는 그냥 대파야. 대파."




아이도 내가 그랬듯 인형과 몰래 비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억지로 버리게 된 인형이 아니었는데도 여전히 마음 한편엔 캐터네모의 자리가 남아 있는 걸까.

아니면 아이가 떠나보내게 될 줄 아는 나이가 되어 인형에게 더 이상 사랑을 주진 않으려고 하는 걸까.

이쯤 되니 침대 한편에 누워 해맑게 웃고 있는 대파에게 조금 미안해진다.

'그래도 넌 대파야. 어쩔 수 없다.'






#애착인형

#애벌레인형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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