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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phapha Apr 09. 2022

부부의 언어

나도 늦지 않았어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친구가 딸아이보다 두 살 어린 여자 아이를 키우고 있어 몇 년 전부터 아이의 옷을 물려주고 있다. 그 친구의 남편이라 함은 바로 나의 국민학교 6학년을 함께 보내고 유일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연락하고 지낸 남자 사람이다.

서른 살 초반 함께 일했던 회사에서 연하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매일 눈이 퉁퉁 부어오던 여직원을, 역시나 10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된 내 남자 사람 친구와 연결시켜줬을 때 둘은 그렇게 만나 불같은 케미를 보이며 결혼에 골인했다.



그녀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사회생활을 가장 잘하는 부류였고 그 재능을 결혼이라는 개인의 사회에 빠르게 적용시켰다. 

낄낄빠빠는 기본이고, 여간해서는 대들지 않는다. 불의를 봐도 일단은 눈을 감고 조금 견뎌냈다가 한 번에 논리적으로 터트리는 바람에 남편이 반박을 못한다. 또한 자신도 육아에 지쳤으면서 퇴근 후 돌아오는 남편에게 마사지를 서비스로 제공하며 영업활동을 이어간다. 적절한 존대어를 사용하고 부드럽게 말하며 되도록 남편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신용카드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난주 주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와중에도 친구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옷을 받으러 우리 집 앞에 왔다. 밖에서 옷을 건네주고는 잠깐의 대화가 오간 뒤 갈 채비를 마친 친구는 주차 자리가 없어 아파트를 돌고 있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얘기 끝났는데 여기 입구로 와줄 수 있어요? 네 고마워요”

남편한테 존칭을 쓰는 것은 나도 신랑과 장난 삼아 자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았지만, 친구의 말투가 너무도 익숙지 않은 부부 사이의 어투라 너무 놀랐다.



나였다면, ”자기야 이쪽으로 와. 나 얘기 끝났어” 라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말투를 사용했을 것이다. 친구를 보내고 돌아오는 아파트 계단에서 나는 평소 남편에게 어떤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는지 생각했다. 연애 11년에 결혼 십 년차, 진정한 가족이 되어 버린 20년 차 남편에게 그저 편하다는 이유로 지시적인 언어를 습관처럼 해왔던 게 아닌가 하고.

무엇 무엇을 해 줄 수 있어? 가 아니라 이거 이렇게 해 이거 하랬잖아!라고 말하던 나의 평소 말투 그리고 묵묵히 따라 주었던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부부 사이의 존중이란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고 의사 결정에 무게를 싣는 것, 늘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던 상대방에 행동이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감사할 줄 아는 것, 나보다 상대를 더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정반대로 해왔다. 

남편에게 익숙해져 버린 나의 말투와 행동들을 쉽게 바꾸긴 어렵겠지만 이제 겨우 이십 년을 함께 해왔으니 앞으로 남은 50년을 위해 걸음마를 떼 봐야하한다. 그래! 할 수 있어

나도 얼마든지 남편을 존중에 대상으로 보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셈이라며 열의에 타올랐다.



집에 돌아와서 친구의 이야기를 하며 나도 앞으로는 당신에게 존중의 언어를 사용해 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선언했지만, 남편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며 하던 데로 하라고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나대로 노력해야지라는 결의도 잠시, 그가 원하는 게 하던 대로라면 지금의 나도 충분히 괜찮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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