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yphapha Jul 06. 2023

내 주변의 어떤 이웃들

앞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친절함에 반해 두 번째 방문 후 세팅까지 하게 된 동네 미용실이 있었다. 원래 다니던 미용실을 배신(?)하고 머리를 맡긴다는 게 영 찜찜했지만 타 미용실의 세팅가격에 비해 너무나도 합리적인 가격이 무기가 되어 의자에 앉았다.

스텝으로 보이던 한 여자분은 한국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조막만 한 얼굴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검은색의 마스크는 코로나가 엔데믹을 선언했더라도 나와는 상관없이 오히려 더 무장하겠다는 태도처럼 느껴졌고, 정면은 고사하고 삐딱한 시선조차도 잘 맞추지 않았다. 앞머리를 길게 내려 눈동자가 겨우 보일 정도의 뱅 헤어스타일을 한 그녀는 발음이 명확하지 않고 목소리가 작아 미용실 사장님도 반복해서 질문을 했다. 

모발이 얇아 세팅시간이 길어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나가고 나자 자연스럽게 사장님은 내게 스텝의 이야기를 꺼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사장님의 사촌 동생이었다. 나이 차이가 꽤나 많이 나는 사촌동생과 싱글인 사장님은 동거동락하며 9년째 함께 지낸다고 했다.

첫 방문 때 스텝에게 반말을 하며 툭툭거리는 사장님이 살짝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러면서도 웃음 많고 넉살 좋은 성격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기에 나도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사촌동생은 20살 때부터 사장님과 함께 지내며 미용실에서 일을 도왔는데, 손님들 대하는 것부터 본인의 외모를 관리하는 일까지 하나하나 가르치며 행동을 고쳐왔다고 했다.

손님들은 장애를 모르기에 컴플레인하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시선처리가 분명하지 않아 오해하는 일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은 내가 무슨 업보가 있어 쟤를 데려왔나 싶다가도 다시 의자에 앉혀 하나부터 차근차근 가르쳤다.

“그냥 둘 수가 없잖아요. 언젠간 나도 없고 쟤 혼자 살아야 하는데… 장애인 센터 가면 거의 죽는다잖아. 때리고 막…에휴…”

코딱지가 묻어 있어도 감흥 없이 일을 하던 그녀에게 사장님은 밥풀을 본인 코에 넣고 시연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한참을 쏟아내던 사장님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식칼을 들고 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미용 재료들이 담긴 택배상자를 뜯어 내고 있었다.

/

비가 오는 날 나는 가끔 맥도널드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곤 한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분들 중 가장 인사성 밝은 남자 한 분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오전에 가면 항상 셀프 정리함을 청소하고, 바닥을 물걸레로 구석구석 닦으며 오는 사람들에게 다짜고짜 “바닥 미끄러져요!” 하며 큰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

다소 어색하거나 오버스럽게 보이는 행동들도 있었지만 친절함과 역동적인 청소 스타일 덕분에 매장은 늘 활기가 넘쳤다.

'유난히 목소리가 크네, 저분은 청소만 하는 담당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야 알았다.

맥도널드는 주부, 시니어, 장애인 채용을 5년째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니저를 따라다니며 했던 말을 반복하고, 물었던 말을 다시 되묻는 사람. 목소리 조절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 청소에 집중하면 열성적으로 달려들어 몰입의 물걸레 질을 하는 사람. 닦았던 곳을 다시 닦고 오가는 사람들이 넘어질까 봐 큰 목소리로 바닥이 미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으면 몰랐을 그들의 상황은, 우리가 한번 더 바라보는 것을 통해 이해하게 된다.

말투가 매끄럽지 못해 불친절하다고, 목소리가 과하게 크다고, 그 어떤 이유들을 붙이기 전에 내 주변에 나와 같지만 다르기도 한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먼저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안녕히 계세요" 

어깨까지 바짝 끌어당긴 백팩, 장 우산의 비닐을 주섬주섬 벗겨내는 느긋한 손길,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뒷모습이 퇴근길의 마지막 코스라는 걸 보여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네요'라고 속으로 응원한다.

그들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걸 아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들이 만든 소비재가 많이 팔리는 공간이 더 많아지길.

그리고 우리의 눈길도 좀 더 너그러워지길 바라본다.

@byphapha

매거진의 이전글 그럴 수도 있지와 그러라 그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