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늦잠을 잤다.
그냥 그래보고 싶었다.
음력 섣달 그믐날 밤늦도록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손님을 치르고,
설날 첫새벽 가장 먼저 일어나 몸을 씻고 상차림을 준비하던
큰 집 며느리였던 나의 20여 년 간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 속에서 꾸역꾸역 해내야만 했던 그 일들이..
알아주는 이가 있건 없건 간에 이건 좀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가 없었는데...
나의 바람대로 필리핀에서의 어학연수생 모집 일이 잘 풀려서 올 설날은 이곳 마닐라에서 보내고 있다.
어제 오후에는 마닐라 근교 따가이따이 온천으로 아이들과의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오늘은 명절 기분을 낸다고 떡국을 먹고 아이들과 만두를 만들고 전도 부쳐가며 기름 냄새를 맡아볼 예정이다. 이 또한 아이들을 위한 이벤트이다.
친정 부모님께 안부 전화도 드려야 하는데 이상하게 영 내키지가 않는다.
죄송스러운 마음인지 무뎌진 마음인지 게을러진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
여기가 내 자리가 아닌 듯한, 괜히 편치 않은 마음자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살다 보면 내게도 이런 선물 같은 날이 주어질 수 있는 거지.
너무 어색해하지 말고 감사히 받아들이면 되지, 뭘...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려고 한다.
오늘은 하늘이 나에게 준 선물 같은 날..
그냥 주어진 현실을 즐겨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