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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후 Apr 21. 2023

에게 해, 크레타 섬 여행을 꿈꾸며..

- "그리스인 조르바"를 통해 만난 카잔자키스


2년 전이던가?

온라인 독서모임을 통해 ‘카잔자키스’를 알게 됐고, 그의 책 『스페인 기행』을 먼저 만났다. 기대했던 여행기보다 충격적이었지만 훨씬 더 좋았던 책과의 만남을 통해 내심 ‘카잔자키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고 싶었던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드디어 만났다.    

 

그가 무척 좋아했다던 조르바도 멋진 사람인 건 분명하다. 그치만 난 카잔자키스의 인생관, 가치관, 인간적인 고뇌 등등 그의 모든 것이 더 좋았다.


카잔자키스를 만나기 위해 난 언젠가 그의 고향인 크레타 섬에 가게 되겠지?

이 책을 덮으며 나는 그를 벌써 그리워하기 시작했으니까...         


 

 내 일생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들이었다.  
   

프롤로그의 이 한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여행과 꿈들..  

   

난 어릴때부터 이렇다 할 꿈이 없던 것 같다. 그저 막연하게 무언가를 동경하기는 했는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어릴때부터 외할아버지를 따라 교회당에 가면, 나는 성경의 맨 뒷면에 있는 지도를 보는 게 낙이었다. 애굽, 가나안, 사마리아, 예루살렘 등... 성경 속에 나와 있던 지명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그곳을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이제 그 막연한 꿈을 이룰 때가 되었나보다. 적어도 이 책을 만난 이 시점에 난 확신을 할 수가 있다.     





“아이구, 계속 앉아서 묻기만 하는군요.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에요. 됐어요? 방앗간 마누라 엉덩이에서 철자법을 찾는군요(엉뚱한 곳에서 엉뚱한 것을 찾는다는 뜻). 방앗간 마누라의 엉덩이는 인간의 정신이에요.” 나는 인간의 정신에 대한 수많은 정의를 읽었지만 이 정의가 가장 놀라웠다.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나의 새로운 동반자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메마르고 차가운 복동풍과 비에 시달려 긁히고 벌레가 먹은 것처럼 얽은 데다, 주름투성이였다. 몇 년 후에 파나이트 이스트라티의 얼굴에서 이와 똑 같은, 닳고 닳은 불쌍한 나무판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 p.30     


나는 조르바야말로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던 사람임을 깨달았다. 생동감이 넘치는 마음과 뜨거운 목구멍을 가진, 대지의 어머니 가이아에게서 미처 탯줄을 자르지 못한, 길들여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 p.34     



책 속의 대장이 조르바를 처음 만났을때의 소감을 드러내는 문장들이다.

‘방앗간 마누라의 엉덩이는 인간의 정신’이라고 말하는 조르바의 순수한 영혼을 대장은 곧 알아보았고 그렇게 그들은 동반자가 되었다.


그렇다. 대장이 본 조르바는 ‘길들여지지 않은 위대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난 그런 조르바를 한 눈에 알아본 대장에게 더 마음을 빼앗겼다.     




내가 보기에 크레타의 자연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며, 잘 다듬은 강렬하고도 절제된 훌륭한 산문이다. 크레타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본질을 드러낸다. 어떤 장난도 치지 않고, 어떤 속임수도 쓰기를 거부하며, 장광설도 늘어놓지 않고, 남성다운 엄격함을 가지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크레타의 준엄한 선들 사이에서 예기치 못한 섬세한 감수성과 아늑함이 모습을 드러낸다. 움푹 파여 바람도 못 미치는 계곡에서는 레몬과 오렌지 향이 퍼지고, 그 너머로 드넓은 바다에서는 끊임없는 시가 흘러나온다.    



크레타를 이 짧은 글로도 충분히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끊임없는 시가 흘러나온다는 크레타의 바다를 만나고 싶다. 아니 곧 만날 것이다.





갈탄광이 잘되면 모두가 형제처럼 함께 일하고 모든 것을 나누며, 함께 똑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는 공동체를 조직해보겠다는 낭만적인 꿈도 꿨다. 나는 마음속으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효소가 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었다.  p. 100     



이러한 생각을 품은 대장이야말로 나는 너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 시절 자신의 이상향을 펼치기 위해 갈탄광 사업을 벌였던 대장, 꼭 현대판 홍길동처럼 여겨진다.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그의 고향 선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우리가 풀지 못하는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한칼에 풀어버리는구나. 이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뱀은 배로, 꼬리로, 남근으로, 머리로 그 비밀들을 캐낸다. 조르바도 그렇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p.118     



조르바에 비하면 너무나도 나약한 지식인에 불과하다는 자신을 돌아보는 대장의 고백이다. 끝내 대장은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지만, 적어도 조르바를 만나기 전과 후의 대장의 삶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 카잔자키스의 삶이 그러했듯이..          




나는 이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음식의 달콤한 맛을 알게 됐다. 저녁에 조르바가 두 개의 내화벽돌 사이에 불을 지펴 요리를 하면, 우리 둘은 반주를 곁들여 식사를 하고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때 나는 음식 역시 영혼과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기와 빵과 포도주야말로 정신을 만들어내는 원초적 원료라는 것을 깨닫곤 했다. p.124     

실제 카잔자스키는 금욕주의자였을까? 음식의 달콤한 맛을 이제야 진정으로 깨닫게 되었다는 대장의 이 고백속에서 난 카잔자키스가 살아온 삶의 일부분을 읽을 수 있었고 그런 삶을 선택한 그의 고뇌를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공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크거나 작은 행복을 바란다. 하지만 행복은 그 사람의 몸 크기만 하다”라고 말했지. 맞는 말이야.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 크기만 한 행복이 존재하는 거지. 사랑하는 나의 제자이자 선생이여, 이게 바로 나의 행복이야. 나는 지금 내 몸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바심하며 그 행복을 재보고 또다시 재보고 하지. 왜냐하면 사람의 크기는 항상 똑 같은 게 아니라 계속 변하니까.
기후에 따라, 침묵에 따라, 고독에 따라, 함께 있는 친구에 따라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많이 변하는지! p. 166     



대장이 사랑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의 일부 내용이다. 


나도 지금 내 몸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바심하고 있는 중일테지. 지금 내 행복의 크기를 재보고 또다시 재보며 말이다.  

   

사람의 크기가 계속 변한다는 카잔자키스의 소설 속 고백이 지금 나에게 와 닿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이 책을 통해 카잔자스키를 다시 만나고 다시 여행과 꿈을 동경하게 된 소중한 인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한다.     




“대장, 우리가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우리에게 소리를 치는데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이 못 알아듣고요. 대장, 언제나 이 세상의 귀들이 뚫릴까요? 언제나 우리들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요? 언제 우리가 팔을 벌려 돌과 꽃과 사람이 서로 껴안게 될까요? 대장,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소?”
“빌어먹을!” 나는 사랑하는 조르바가 잘 쓰는 말을 골라 대답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쓰여 있죠. 다른 말은 없고요.” p.172     



우리 인간들이 언제쯤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의 소리를 듣고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 대장의 말대로 우리가 아는 지식으로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제기랄”, “빌어먹을” 이 대답이 정답일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공감한다.     




“새로운 길, 새로운 계획.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그것만 신경 씁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묻죠. ‘조르바, 넌 지금 월 하고 있는 게냐? 잔다. 그럼 잘 자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일한다.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여자를 껴안고 있다. 그럼 그 여자를 꼭 껴안아라! 그리고 모든 걸 다 잊어버려라, 이 세상에는 그녀와 너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나게 즐겨라!” p.473     


조르바식 대화법, 참 명쾌하기 그지없다.

그저 현재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하면 그만인 것이다.


“은후, 넌 지금 뭘 하고 있는 게냐? 글을 쓴다. 그럼 열심히 써라. 모든 걱정, 근심을 다 잊어버려라. 지금 이 순간 네 머리 속엔 조르바와 대장만이 있을 뿐이다. 신나게 두 남자와의 시간을 즐겨라!“       

        




카잔자키스를 특징짓는 것은 영성 탐구와 여행이다. 그가 스스로 고백하듯 하늘과 땅을 이어주었던 영성에 대한 목마름, 먼 곳으로의 여행과 신화적 탐험에 대한 갈망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가졌던 간절한 바람이었다. 
묘비명: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작가의 묘비명을 보면서 또 한 남자를 떠올렸다. 연암 박지원. 


동 시대를 살았던 다산이 구구절절 자신의 묘비명을 썼던 것에 비해 연암은 묘비명을 남기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몸을 닦아 달라는 말을 남긴 것 외에는...


언젠가 통일이 되면 박지원의 호가 된 황해도의 연암골에도 꼭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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