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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Jun 03. 2022

일이 아닌 삶




회사에 동아리 활동 지원금 제도가 생겼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처지에 취미생활은 꿈도 못 꿨는데, 회사가 돈도 주고 시간도 준다니 애사심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나는  '만사동'에 가입했는데, 만드는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라는 뜻이다. 지난 달에는 도예 공방을, 이번 달엔 베이킹 클래스에 다녀왔는데 은근히 재미가 있다.


사실 처음 도예 공방에 가던 날,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마치지 못한 일을 남겨두고, 부랴부랴 공방으로 출발하는 게 썩 유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가마가 있는, 흙냄새가 날 듯한 공방을 상상하던 나에게 역삼동 오피스텔 어디쯤에 자리잡은 모양에 김이 샜고, 그릇을 만들기 위해 받아든 흙덩이가 문구점 출신 지점토같이 느껴져서 실망은 더해만갔다.


아닌 게 아니라 흙을 주무르는 건 지점토를 만지던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 차이 없음으로부터 슬슬 뾰족했던 마음이 풀렸다. 내 것이 좋네, 네 것이 낫네 하며 까르르 웃고 떠드는 게 미술시간처럼 신이 났다. 예시사진처럼 근사하게 만들지는 못했어도, 내가 만든 것에 꾹꾹 눌러 이름을 새길 때는 진짜 도예가가 된 것 같은 으쓱함마저 들었다. 


나는 업으로 활자를 만지는 사람이다. 다행히 내가 글을 좋아해서, 내 일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최근 몇 년을 떠올려보면 오직 일을 위해 글을 읽고 쓴 일이 적지 않았다. 요즘 잘 나간다니까 읽고, 언젠가 써먹으려고 메모하고, 그럴싸하게 써보려고 애썼다. 한마디로 어리석은 삶이다. 


그릇을 만들면서 일로부터 벗어나는 기쁨을 조금 배운 것 같다.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신이 났던 걸까 생각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닌가보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또다른 나를 찾았던 것이 아닐까? 지점토를 좋아하던 10살 소녀가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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