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정이삭, 2021)
심장에서 나는 잡음이 더 잦아지자 모니카(한예리 분)는 아들의 병세가 더 심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는 오히려 심장의 구멍이 더 작아졌다고 말한다. 의아해하는 모니카에게 의사는 말한다. 소리가 크게 날 수록 오히려 증세는 좋아지는 중이라고.
아들의 심장이 좋아졌다는 진찰 결과, 그리고 돌아오기 전에 운 좋게 따낸 납품 계약. 겉으로 보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오로지 성공을 위해 가족은 등한시하는 제이콥(스티븐 연 분)에게 모니카는 정이 떨어지고 만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모니카와, 좋을대로 하라며 떠나는 모니카를 붙잡지 않던 제이콥. 이들의 갈등은 화재로 창고에 쌓아둔 농작물이 모두 불 타면서 봉합된다.
불 타는 창고를 뒤로 하며 죄책감에 떠나려는 순자(윤여정 분)를 손주들이 뛰어가 막는다. 짧은 거리도 뛰지 못하던 데이비드가 할머니를 붙잡으려 뛰는 장면, 그리고 제이콥이 데이비드와 미나리를 캐는 장면은 아칸소에서의 시간이 화재와 함께 날아가기만 한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청진기 너머로 들리는 불안한 심장 소리와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불구덩이. 역설적이게도 그 속에서 갈등은 회복되고 걱정거리는 곡식들을 태워 지낸 제사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종교적 상징 - 계곡의 뱀, 'Garden of Eden', 데이비드를 훈계하는 제이콥의 모습 뒤로 보이는 성화(聖畵), 현관문 옆의 성경 글귀 액자, 폴 아저씨의 엑소시즘, 데이비드를 껴 안고 잔 순자가 그 다음 날 데이비드의 병을 대신 짊어 진 것(代贖) - 들을 제쳐두고, 순자의 가족이 기어이 희망을 얻는 것은 그저 서로에게 몸을 기댄 미나리 밭이다. 곡식이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오히려 아들과 떨어지지 않고 같이 미나리를 캐러 간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바람에 고개 숙여 인사하는' 미나리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