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목숨뿐만 아니라 -
'스물여섯 노무사'
2화 '상담'에서 계속
건설 현장의 포클레인은 버킷의 크기로 구분한다. 제일 작은 것은 0.2m³, 제일 큰 것은 1.0m³인데, 0.2m³ 포클레인의 별칭은 '공투'다. 아버지의 친구 역시 '공투 사장'이었다(실제로 현장에서는 포클레인 등 장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사장이라고 불러주는 경우가 많다).
포클레인을 소유하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근로자성이 없다. 그 때문에 그동안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았다.
지금도 네이버 지식인 등을 뒤져보면 과거 4대 보험이 되지 않아 사망사고에 이르고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어서 사보험에 의존해야 했던 분들의 질문들이 종종 보인다.
이건 근로자성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만약 포클레인 기사도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건설사는 자신의 부담으로 포클레인 기사의 산재보험료를 납부하게 된다.
이 경우 포클레인 기사가 업무상 재해를 입게 된다면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만약 사망에 이른다면 유족급여에 장의비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여러 이유로 자기 소유 포클레인 기사들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사고가 잦은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면서도 그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지 않은 것이다.
근로자성이 없다면 본인 부담으로라도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했어야 하는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입법된 1963년 이래 근 60년 가까이 건설기계 특수형태고용종사자의 산업재해보험 가입은 허용되지 않거나,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18년도까지도 레미콘 기사에 대해서만 산재보험을 가입할 수 있게 하였다).
따라서 원래대로면 돌아가신 포클레인 기사님도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18년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의 개정안을 발의, 통과되며 작년부터 포클레인 뿐만 아니라 모든 건설 기계 1인 사업주에게까지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덕분에 유가족에게 산업재해 보상 신청을 안내해줄 수 있었다.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살고 죽는 일은 하늘에 달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하늘의 뜻에 달린 것은 그저 사람 목숨 만이 아닌 듯하다.
4대 보험의 사각지대에서 도움을 호소했던 이들에게 불운이 닥치기 전에 이런 입법이 되었다면 그 얼마나 불행 중 다행이었을까. 선배 노무사들은 답 없는 문제에 닥친 내담자들을 바라보며 얼마나 갑갑했을까.
그래서 사람의 목숨만 하늘에 달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흘러가야 하는 이치(理致) 역시 이 땅, 이 세상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것일지 모른다. 더 나은 노무사가 되려면 우리가 보는 이 세상, 우리가 평소 당연히 여기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진리를 찾아서는 안 될 것이다.
더 나은 노무사가 되려면 한 손에는 현재의 노동법이, 다른 한 손에는 앞으로의 노동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인명만 재천이 아니라 이치도 재천인 이유일 것이다.
'스물여섯 노무사' 3화 끝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