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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Oct 11. 2020

첫 사건 -1

그토록 기다렸던 첫 사건 앞에서 망설이다

'스물여섯 노무사'

제3화 '재천(在天)'에서 계속


노무사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급여대장 작성, 의견서 작성, 부당해고 구제 사건 대리, 기업 자문, 노조 자문, 집단법 실무에다가 최근 공인노무사법 개정으로 4대 보험 영역에까지 업역이 확장되었다.


노무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양하지만 각자 하고 싶은 일도, 잘하는 영역도 다르기 마련이다. 내 입으로 어느 분야가 자신 있다 말하기는 무엇하니, 가장 좋아하는 일만 꼽자면 다름 아닌 '사건'이다.


사건에 대한 나의 열망은 부끄럽지만 드라마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탓이 크다. '송곳'의 구고신과 '또 하나의 약속' 난주(배우 김규리 님이 연기한 이 인물의 실제 모델은 '반올림'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신 '이종란' 노무사님이시다)'를 보며 나도 약자의 권익을 수호하는 일을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부당해고 등 구제신청 사건의 전장(戰場)이 되는 '노동위원회'(사진출처 아시아타임즈)


다만 막연히 사건만 맡으면 약자를 위해 일할 수 있겠다는 나의 내심과는 달리, 우리 법인은 근로자 측 일만 도맡아 하는 법인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의견서와 메일을 작성하기도 하는 법인이었다.


물론 노무사로서의 직업윤리가 항상 근로자의 이익만을 위해 일해야 하는 것에 있지는 않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그러하다. 노무사는 근로자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을 권하거나 기업의 이익을 위해 증거 등을 조작하는 지경에 이르는 것만 아니라면 기업 측 노무사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손가락질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역시 사건에 목말랐던 것은 사실이지만서도 그 첫 사건이 근로자 측 사건이든 사업주 측 사건이든 그저 최선만 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도 근로자 측 사건이 내 첫 사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는 있었다.


톰을 변호한 에디커스 핀치


그러던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분으로부터 사건을 맡아주겠냐는 연락이 왔다. 근로자 사건이었다. 그것도 부당해고 사건이었다. 의뢰인은 근무한 지 20일 만에 서면 통보도 없이 해고되었다. 사업주가 서면 통보를 하지 않았다는 것만 입증하면 부당해고가 쉽사리 인정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맡겠다는 답을 확실히 하지 못한 것은 세 가지였는데, 의뢰인이 그만두면서 사업주에게 국어사전에도 없는 욕을 했다는 사실과 의뢰인의 조현병 병력(부끄럽지만 당시만 해도 내게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감이 있었다), 그리고 착수금도 없이 사건을 맡아달라는 요구 때문이었다.



'스물여섯 노무사' 4화 끝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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