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 Oct 24. 2020

첫 사건 -2

앗, 착수금 타이어보다 싸다!

‘스물여섯 노무사’

제4화 ‘첫 사건-1’에서 계속


사건을 수임하면 착수금을 받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수임한 사건이 무조건 이길 거라는 보장이 없다. 해볼 것은 다 해보고 승패 따지지 않으며 사건에 매달렸다가 진다면? 착수금도 받지 않았다면 그저 삽질(?)에 불과한 일이 된다.


노동위원회에서 그 해고의 부당함이 인정된다면 해고 기간 동안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최저임금 받는 근로자가 석 달만 해고당해도 해고 기간의 임금은 500여 만원이 넘는다. 그래서 해고 사건은 ‘사이즈’가 크다. 사측도 노측도 부당해고 사건에 휘말리면 갖은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자 한다.


어느 선배 노무사는 중국집 사장이 배달 근로자의 서명을 조작, 사직서를 대필한 경우도 직접 보았다고 말해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중국집 사장이 배달 근로자의 성씨를 잘못 쓴 덕분에, 노동위원회는 사직서가 조작된 것이라 판단하고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한다. 자기 근로자의 성씨를 기억 못 하는 사장은 있어도, 자기 사직서에 자기 성씨를 잘못 쓰는 근로자는 없으니깐.




살벌한 심판정 분위기. 사진출처 제주지방노동위원회.


이렇듯 부당해고의 정당성을 다투는 노동위원회는 웬만한 법정 드라마의 재판정보다 더 치열하다. 대부분이 서면으로 진행되는 재판과는 다르게, 노동위원회 사건은 대부분 구두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경력이 긴 노무사라도 심문회의 전날에는 긴장한 채 잠에 들 수밖에 없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사건도, 심문회의에 들어가 보면 사뭇 분위기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착수금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측 편에 설 때는 비교적 착수금을 받기도 쉽다. 사측은 노무사가 이겨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근로자 측에 설 때면 착수금 이야기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진다. 아무리 착수금을 낮게 책정한다 하더라도 근로자 입장에서는 묵 돈이다. 사측은 착수금이라도 지불해서 근로자의 복직을 막고자 하고, 근로자 측은 복직이 되기도 전에 착수금을 지불해야 하니 불안하고 아까운 마음뿐이다.


나의 첫 사건 의뢰인도 그랬다. 착수금을 내기는 힘드니, 성공보수를 높게 책정해 주겠다는 입장이었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조현병 당사자인 의뢰인과 사실관계에 대해 의논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큰 문제였지만, 착수금을 받지 않고 일을 맡았다가 사건이 산으로 가버리면 공염불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토록 기다려왔던 첫 사건이었고, 심지어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근로자 측 사건이었으며, 의뢰인이 법원에 소장까지 써서 냈을 정도로 열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버렸다. 의뢰인 측이 변호사의 자문도 구하지 않고, 우리 노무법인을 찾아오기도 전에 쓴 소장이 법원으로부터 '이행권고결정'을 얻어내고야 말았기 때문이다. 이행권고결정이란 "재판해봐야 시간 낭비 돈 낭비니깐 피고는 원고의 주장대로 이행할 것을 권고한다"는 결정이며, 피고가 2주 안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소장의 내용대로 원고가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이행권고결정 저 여섯 자가 가져다주는 파괴력을 직접 느낀 순간, 새삼 변호사 라이센스가 갖고 싶었다


노동법에 대해서 무지했던 사업주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근로자에게 복직 명령을 내릴 거라 엄포를 놓았지만, 두 번의 만남만에 꼬리를 내리고 해고 기간의 임금을 전부 지급했다. 의뢰인은 그 돈으로 조현병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고, 내 첫 사건은 빛나는 승리로 장식되었다.



'스물여섯 노무사' 5화 끝

다음 편에서 계속



작가의 이전글 첫 사건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