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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Dec 24. 2020

우리는 왜 방황하고 있을까?

힘들어하는 청년이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어."


"나 아무래도 일을 그만둬야 할 거 같아."



지금의 많은 20~30대들은 방황 중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가 나의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내가 다니는 직장이 나와 맞지 않다거나 혹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나 등 방황의 이유는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기도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도 한다. 그러면 항상 주위에 있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에휴 조금만 참지. 저것도 못 참아서..."


"요즘 얘들은 끈기가 없어. 라떼는 말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방황하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끈기가 없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방황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 부모님들의 '투머치 보살핌'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딴지 걸기 없기다)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어 미리 말하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참고로 나는 91년생이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정말 고달픈 환경을 겪으신 분들이다. 대부분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태어나 한국의 고도성장까지 경험한 우리의 부모님들은 지금의 우리나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격변하는 대한민국을 겪으신 분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가 계셨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세대가 되었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그것에 전념하여 공부할 수 있는 세대가 되었다.(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60년대 서울



그런데, 너무 힘든 시대를 겪으셨기 때문일까?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힘든 시간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우리를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보살펴 키워주셨다.(물론 다 그런 건 아니다) 즉, 우리는 부모님 손에 너무 오냐오냐 키워진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나중에 커서 고생하지 않도록, 각종 지원을 해주셨다. 그중에서도 특히, 공부 쪽에서는 아낌없는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래서 학원의 부흥기가 일어난 게 아닐까 싶다) 부모님 세대에는 공부만 잘하면 대부분 괜찮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공부가 곧 성공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였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공부를 잘해야만 했고, 공부가 아닌 분야는 소외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는 부모님의 그늘 아래,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시작했고,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은게 뭔지 생각해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대학에 들어갔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은 내 적성과 맞지 않거나 흥미가 없었고, 이는 대학 생활에 집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들 중 몇 명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도 있다. 사실, 이렇게 빠른 판단으로 학교를 그만두거나 휴학을 한 사람들은 오히려 더 좋은 케이스에 속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의지였든 부모님의 의지였든, 힘들게 입학한 대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게 내 길이 아닌 걸 알면서도 어영부영하다가 졸업을 하고, 전공에 맞게 취업한 친구들은 회사에 들어가서야 '아 이게 내 길이 아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그만두면 뒤쳐진다는 생각에, 자신이 선택 '당한' 길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결국, 20대가 다 지나갈 때쯤이 돼서야 '아 이건 진짜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고, 서른 살 이후에 퇴사하는 지인들도 정말 많이 봤다.




20대의 시간은 찬란하다. 물론 삶의 과정에서 모든 순간순간들이 소중하고 빛나지만, 인생에 있어 20대는 아주 중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20대 찰나의 순간들이 나의 평생을 좌우할 수 도 있으며, 20대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의 가치관에 큰 변화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나이에 굉장히 민감한 편이라, 젊은 나이에만 가능한 일들이 있다. 20대만큼 무모하고 도전적일 수 있는 나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해야 하며,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다. 사회는 점점 경쟁을 부추기고 그 안에서 나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남들이 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뒤쳐지는 느낌이고,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자 하면 어느 순간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주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혹은 부모님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내 삶에 내가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고 좋아하니까 좋은 것 같다. 부모님이 좋아해 주시니 좋은 것 같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라는 물음에, 직업이 아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친구들은 많지 않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자신이 자신의 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뭐가 됐든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전혀 아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이 만들어 낸 자아가 아닐 확률이 높다. 사회가 만든 것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당신은 그저 말을 잘 들었을 뿐이다. 세상이 공부하라고 해서 공부하고, 취업하라고 해서 취업한 거다. 당신은 그저 말을 잘 듣는 학생일 뿐이었다. 고생했다. 정말 진심으로 고생했다. 



지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내가 왜 아직까지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지 마라.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조금만 내려놓고 잠시만 쉬어 가보자. 남들에게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말고 잠시만 쉬어 가보자. 모두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속도가 있는 법이다. 당신은 뒤쳐지고있는게 아니라, 당신의 시간과 속도에 맞게 잘 가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방황하지 않고 계속 달리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그건 고속도로 위에서 목적지 없이 빠르게 달리고 있는 차일지도 모른다.(혹은 빠져야 할 곳을 지나쳐버린 차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달릴 필요가 없다. 빠르게 달리는 것보다 어디에 어떻게 갈 것인지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 쉬어가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한번 살펴보자,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가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혹은 그 차를 운전하고 있는 나 자신이 피곤하지는 않은지, 궁극적으로는 내가 타고 있는 이 차에 목적지는 있는지 생각해보자. 이 3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어있다면,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쉬는 시간 동안 남들이 빠르게 가고 있다고? 실수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빙빙 돌아가는 국도로 잘못 들어왔다고? 우리는 각자의 목적지에만 도달하면 된다. 쉬느라 뒤쳐진 것 같겠지만, 목적지에 도착하고 보면 별반 차이 없다. 그리고 각자의 목적지도 다 다르다. 빙빙 돌아오느라 조금 늦었지만, 중요한 사실은 나도 나만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다른 곳으로 돌아오는 동안, 오히려 휴게소에서 남들이 먹어보지 못한 소떡소떡을 맛봤을 수 도 있고, 남들이 보지 못한 국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경험했을 수 도 있다. 



그러니 우리가 방황하고 있는 시간을 조급해하지 말고 즐겨보자. 목적지 없이 달리고 있었다면 나만의 네비게이션 안에 목적지를 설정하고, 장기간 운전에 지쳤다면 잠시 휴게소에 들러 맛있는 것도 먹고 휴식도 하고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겨보자.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보다 뚜렷하게 만들어 줄 것이고,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또한, 사회가 만들어 놓은 고속도로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목적지에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왔다더라도 불안해하지말고 다른 길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자.


그렇게 나만의 목적지를 정하고 내가 원하는 길, 내가 원하는 시간, 내가 원하는 속도로 달려보자.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목적지에 도달해있는 나를 상상해보자. 쉽진 않겠지만, 시간은 흘러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양한 이유로 방황하며 힘들어하고 있는 모든 청년들 그리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말 고생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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