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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총각 Jan 08. 2021

내가 만든 책의 가격을 남이 정한다면?

농산물 가격

이 제목을 보고 들어왔다면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다고 가정하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바로 나가지 말고 예시만이라도 봐주길 바란다.(제발)




지금부터는 예시다.(가정의 상황)


앞으로 당신은 독립출판을 할 예정이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주 훌륭하고 멋진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이 멋지고 훌륭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서는 우선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려 가야 한다. 


약 6개월에서 1년간, 당신은 당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다듬었다. 이제 잘 다듬어진 이야기를 포장하기 위해, 책의 표지를 디자인하고 내지를 디자인 한다. 어떤 글자체가 좋을까? 어떤 재질이 좋을까? 어떤 사진과 그림이 들어가면 좋을까? 


자, 샘플이 완성되었다. 이제 완성된 샘플을 가지고 책을 인쇄하기로 했다. 여기저기 문의를 해보니 한 권당 약 5000원의 인쇄비(가정)가 들어갔다. 초판은 작게 500부를 찍기로 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은 2,500,000원(권당 5000원 x 500부) + 표지 내지 디자인비 + 교정 교열비 + α = ??



자, 지금까지 책을 만드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책을 팔 시간이다. 서점이나 책을 유통하는 곳에 연락을 한다. 


나: 

"안녕하세요! 제가 이번에 독립출판으로 책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열심히 만든 책입니다! 입고 부탁드립니다!!"


서점 or 유통하는 곳: 

"네. 좋습니다. 저희 쪽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다만... 이번에 책을 출판하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은 한 권당 3000원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나:

'???'


아니 이게 무슨 소린가. 책 인쇄비만 5000원이 넘게 들었는데, 내 영혼을 갈아 넣은 작품이 고작 3000원에 판매된다고? 이윤도 남기지 못할 망정, 빛을 지고 팔아야 한다고? 게다가 책을 출판한 사람이 많아서 내 책을 제 가격에 줄 수 없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자, 이제 예시가 끝났다. 지금 당신의 기분이 어떤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냐고? 그렇다. 지금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예시는 '농산물 가격'에 관한 이야기이다. 농산물 가격의 가장 큰 핵심이자, 농부님들이 농사가 힘든 이유라고 말하는 것 중 가장 큰 '경매'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행히도, 책은 도서 정가제에 의해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정할 수 있으니 안심해라.(사실 이것도 문제가 좀 있는 듯 하지만 오늘은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의 논리에서 가장 벗어날 수 없는 품목 중 하나이다. 한해 고추 수확이 풍년이면, 그 해의 고추 가격은 폭락이다. 사실, 수요보다는 '공급'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공급량에 따라 경매로 넘겨지는 농작물의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혹시라도 NBS(한국농업방송)을 보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서 보면 주식의 주가를 알려주듯 농작물의 당일 시세를 알려주는 방송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비트코인이 따로 없다.


당신이 출판한 책이 같은 시기에 출판된 책의 양에 비례하여 가격이 정해진다고 상상해보아라. 엄청난 눈치싸움이 시작될 것이다. 당신이 출판한 책의 가격이 사가는 사람에 의해 정해진다고 상상해보아라. 내가 책을 만드는데 들어간 노력보다 가격을 못 받게 된다면? 아마 당신은 의욕이 사라질 것이다. 아마 책을 팔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창고에 가득 쌓인 책을 바라보며, 내가 원하는 가격에 판매를 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러나, 농부님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싼 가격에 처분해버린다. 이유는 농산물의 가장 큰 약점인 '신선도' 때문이다. 농산물은 수확 후 바로 판매하지 못하면 보관이 어렵다. 그래서 그냥 팔아버린다. 인건비 조차 나오지 않더라도 팔아야 한다. 혹은 아예 수확하는 것 자체가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예 수확하지 않고 그냥 밭을 갈아엎어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농사를 짓고, 또다시 반복한다. 그분들에겐 농사가 직업이다. 단순히 회사를 퇴사하는 것처럼 맘먹고 때려치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농부님들은 힘이 조금 들더라도 직거래의 양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수확 물량이 짧은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농산물의 특성상 직거래만으로는 모든 물량을 판매하기 어렵다. 그래서 돈을 적게 받더라도 한 번에 물량을 쏟아낼 수 있는 도매시장을 택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거래로 문의가 들어오면 대부분의 농부님들은 반가워하신다. (물론 택배를 일일이 싸고 보내는 것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계시다)


농산물 유통시장에서도 작은 변화들이 시도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착되어있던 기존의 경매 제도를 바꾸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경매제의 대안으로 불리는 시장도매인제는 2000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를 도입하는 곳은 한 곳에 불과하다)



직거래가 유일한 대안점은 아니겠지만, 직거래만큼 생산자가 농산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하지만, 나는 농산물 직거래의 장점을 단순히 가격에만 눈여겨보고 싶지는 않다. 소비자인 우리가 판매자인 농가와 직접 거래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농가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소비자의 신뢰는 생산자에게 엄청난 보답이다. 


마치,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들을 보며 뿌듯해하는 셰프처럼 말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주문이 계속되면 자신의 농산물을 인정받는 기분이 들 것이다. 유명한 식당의 사장님은 홀에 가득 찬 손님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해하겠지만, 농부님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직접적으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마트에 판매되는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이 농산물은 어떤 농부가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농산물 직거래의 장점은 이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직접 연결해주고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요즘은 농산물 직거래 사이트가 정말 많이 나와있다. 그리고 농부 마켓으로 불리는 오프라인 시장도 많이 나오고 있다.(물론 요즘은 코로나때문에 중단됐지만) 


여하튼, 하나의 농가를 알고 있는 것은 하나의 맛집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나만의 맛집을 남에게 소개해주듯이 내가 알고 있는 단골 농가를 소개해주고, 직접 구매도 하다 보면 분명 많은 제도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식재료에 관심을 조금 가져보면, 보다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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