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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병주 May 13. 2020

갑자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코로나 19 속 시간 보내기

 예수 탄생 전후만큼이나(나는 무교다.) 우리 생활의 대변화가 생겼다며, 새로운 역사로 AC(After Corona)와 BC(Before Corona)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였지만 점차 일상을 앗아갔다는 사실에 전 세계 인구가 지쳐가고 있다. 또 지금은 강추위 혹은 폭염과 장마 등 자발적인 집콕의 시기가 아니다. 긴 겨우내 움츠러 있던 꽃과 잎들이 피어나고, 한껏 꾸며도 결국은 그 위를 덮어 버리는 무채색의 패딩들을 걷어낼 수 있는 따스한 봄이라서 우리들의 우울감은 더더욱 깊어져만 간다.


 영화 <마션>에서 긴 탐사를 하던 NASA 아레스3탐사대 중 '맷 데이먼'이 가장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이유는 희망 유무의 차이였다. 긴 시련에도 끝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지만 끝을 알 수 없는 시련에서의 희망은 매우 희박하게 존재한다. 맷 데이먼은 그 속에서 버텨낸 사람이었다.


 이 끝을 알 수 없는 긴 싸움을 하는 동안 평소에는 너무 낯선 일들이 이젠 더 이상 낯설지 않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희망퇴직, 무급 휴가, 임금 지불 지연, 폐업, 휴업... 너무나도 많다. 남의 일 같으면서도 나의 일 같아 그 누구 하나 쉽사리 위로를 건낼 수 없는 현실의 지속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과정에서 회사의 사정으로 나에게 갑자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생겼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 불이익(강제 연차 소진 혹은 무급 휴가)은 없었다.


 지금까지 나의 휴가는 모두 철저한 계획 속에 소모되었다. 짧게는 일주일 전부터 길게는 1년 전에 미리 계획하고 그 계획에 맞춰 항상 만족스러운 휴가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의 계획에는 없던 시간이 생겼다.


  어느 때와 같이 절대적인 시간의 1주일은 7일 혹은 168시간으로 나를 지나쳐 갈 테지만 평소가 달라진 지금의 시간은 평소와 다르다. 우리의 일상, 우리의 평소가 달라진 만큼 스카이스캐너를 켤 수도, 무작정 가보고 싶었던 전시 혹은 공연을 볼 수도, 내가 좋아하는 맛집을 찾아갈 수도,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가질 수도 없었다.


 이렇게 달라진 일상에서의 일주일은 평소와 달라야 했다. 그래서 시간은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기로 했다. -인심 쓰는 것처럼 들리겠지만-나에게 갑작스럽게 생긴 이 시간을 누구에게 할애할까 생각했다.


 1. 어머니(feat.아버지에게는 항상 죄송해요) ; 2.5일/7일

- 어머니도 마침 코로나로 인해 일을 하시는 날이 줄었다. 벌이는 주셨어도 시간이 생기셨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건 돈일 수 있지만 행복한 과거를 만드는 건 순간과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순간과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어서 2박 3일 시간을 내 집을 나섰다. 아버지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여건 상 쉽지 않았기에 어머니와 함께 4시간을 달려 먼 시골 구례 아는 분의 집을 찾았다. 그곳에는 어머니와 나만 지낼 수 있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지만 덕분에 32년 만에 처음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이 생겼다. 내가 해드린 건 엄친아처럼(?) 좋은 호텔도 아니었고, 명품백도 아니었다. 구례 어느 시골집이었고, 동네 정육점에서 산 삼겹살과 양조장에서 산 막걸리가 담긴 검은색 비닐봉지였다. 그날 밤, 어머니는 57년 인생 처음으로 별똥별을 봤다.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긴 삼겹살은 아궁이 속으로

2. 아버지 ; 0.5일/7일

- 구례에서 어머니와 함께 장을 봤던 나물, 어머니가 직접 캐신 나물, 지인에게 선물 받은 나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를 보시고는 그 날 일을 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신 아버지와 함께 남은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버지가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식탁에서나마 구례의 봄을 보여드릴 수 있었다.


3.  ; 2일/7일

- 재충전의 시간이었다. 항상 내가 휴가를 써서 만든 휴일 혹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미 정해져 있는 공휴일, 주말 등에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사전의 계획이 있는 휴식이었다.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 밖을 벗어나지 말아야지 라는 재충전 마저 계획이 된 것이었으니까. 기생충에서 말했던 '제일 좋은 계획은 무계획'이라는 것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요즘 빠진 혼술과 요리 덕분에 스키야키도 에그인헬도 있어 보이는 건 다 해봤다. 혼자 먹기 나쁘지 않았다. 요즘은 혼자도 썩 괜찮다.

나는 맛있었다...

4. 여자친구 ; 2일/7일

- 하지만 너가 있어 혼자가 괜찮은 것 같다. 요즘 내가 가장 나다워지는 시간은 여자친구와 함께 있을 때 같다. 계획했던 대로 보낼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것도 내일이 되면 어제의 추억일 테니까. 우리는 준비했던 재료와 술을 가지고 홈캠핑을 즐겼다. 이걸 계기로 아예 거실에 캠핑 의자 2인용을 사두고 펼쳐놨다. 나가야만 캠핑이 아니라는 걸, 둘이 놀면 너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할 말도 많고 쓸 말도 많지만 아직은 그 말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미뤄두고, 일단은 신나게 놀자! 더 놀자!



1) 어머니와 단 둘의 시간이 32년 만에 처음이라고는 했지만 아마 있긴 할 거다. 어머니가 계획하셨던 시간일 거고, 내 계획의 단 둘은 생전 처음이었다.


2) 구례로 향하는 길에 그래도 서울이 좋다고 하신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셔서는 시골 라이프에 대해 자주 얘기하기 시작하셨다.


3) 사실 아버지와의 해외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도와 같은 극한(?)의 나라에서 내가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보고 싶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빠른 시일 내의 실현은 어렵겠지만 그래도 가까운 시일 내에 꼭 그래 볼 생각이다.


4) 브런치를 하며 직업에는 영화 마케터라고 써놓고 먹는 얘기만 주야장천 했는데 <마션>과 <기생충>을 인용(?)할 수 있었던 이번 글이 살짝 만족스럽다.


5) 요즘 가장 빠진 건 캠핑이고, 주말은 항상 캠핑이고, 스트레스를 푸는 건 캠핑이고, 그냥 나는 캠핑이다.


6) 그걸 함께해주는 여자친구에게 고맙다!


+) 평일 구례 산속에는 2박 3일간 나와 어머니 외에 그 누구도 없어서 마스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집에서 구례까지 자차를 이용하며 휴게소 화장실을 들렸던 순간과 잠깐의 장을 보는 순간만이 사람들과의 접촉이 있었으며, 마스크는 필히 착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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