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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Nov 18. 2019

브런치 작가 소개 유형

당장 소개란에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다면

    요즘 나는 내 브런치를 들여다 보기가 싫다. 작가소개란 때문이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몇날을 고심해서 겨우 몇 자 적어 놓은 것인데, 보면 볼수록 영 별로다. 보고 있으면 창피함과 부끄러움으로 얼굴 금세 확 달아오른다. 몇 글자 안되는 주제에 엄청난 화력을 가졌다.


다시 써보려고도 노력했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있어 보이는 말들을 가득 채우려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를 돌아보곤 고개를 저었다. 브런치다운 감성적인 한 마디를 적어볼까 끄적여도 보고, 나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도 해보았으나 여전히 낯뜨거운 건 마찬가지였다. 백스페이스, 백스페이스. 


쉽지 않다. 20년이 넘도록 해온 자기소개도 여전히 어려운데 작가로서 자기소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 내 취미는 브런치 작가소개란 탐방하기였다. 마음에 드는 콘텐츠를 발견하면 무조건 작가소개란을 확인했고, 어느 순간부턴 작가소개를 본문보다도 집중해서 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썼나 싶어 이리저리 염탐을 다닌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 소개에도 일련의 유형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 어렴풋이 느꼈던 작가 소개의 유형들을 정리해보았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가득한, 브런치 작가 소개 유형을 소개한다.



1. 주제형

 ———————를 쓰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은 작가가 중심적으로 다루는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작가소개란을 채운다. 보통 '-관련 글을 씁니다.' '-한 경험을 나눕니다.' '-를 기록합니다.' 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가끔 '-를 그립니다.' 도 있다.)


이런 방식의 작가 소개는 독자로 하여금 어떤 이야기를 기대할 수 있는 지 명확히 알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독자는 작가 소개란에 제시된 콘텐츠 주제가 평소 꾸준히 관심있던 내용일 경우, 해당 작가를 구독하게 된다.


예시 1) 

중남미와 관련된 글을 쓰고 생각을 공유하는 남미 이야기하는 사람 {남이사} 입니다.


예시2)  

반백수 생활 1년 후, 회사를 다니면서 낭만과 현실 사이의 소소한 일상을 두서없이 그리고 있습니다. 식물박사인 언니와 잡초만화도 그리고있습니다.






2. 소망형

————— 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은 작가 스스로의 지향점을 밝힘으로써 스스로를 소개하는 유형이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는 ‘-가 되려 노력중입니다.’ ‘-하려고 합니다.’ ‘-이고 싶어요.’ 등이 있다.


이러한 유형의 작가소개는 독자에게 겸손한 태도를 전달하는 동시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장점이 있다. 정보를 얻고자 하는 목적보다, 이 사람의 여정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주요 구독 요인. 이 경우 독자는 일면식도 없는 작가에게 왠지모를 친근감과 인간미를 느끼기도 한다.


예시 1)

Timeless yet timely한 글을 쓰고 싶어요.

예시 2)

사랑, 사람, 공동체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3. 커리어중심형

 ———————하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은 직업, 소속, 하는 일을 위주로 자신을 소개한다.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는 ‘-에디터’ ‘-마케터’ ‘전직 ㅇㅇㅇ’ 등이 있다. 직업명을 문장의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이 특징. 


이러한 작가소개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조하며, 독자는 해당분야에 관한 퀄리티 높은 글을 기대하게 된다.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혹은 해당 직업을 갖고자 하는 사회초년생들에게 특히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가소개이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나 하는 궁금증에 구독을 누르기도 한다.


예시 1)

전) 온라인 편집숍 헤드 카피라이터. 가끔 글쓰기 모임과 카피라이팅 강의를 한다. 디자이너인 남편과 5살 아들, 털이 많이 빠지는 고양이와 살고 있다.


예시 2)

글 다루는 사람. 마더티브 에디터. 더패밀리랩 콘텐츠 크리에이터. 전직 기자.






4. 라이프스타일형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이 유형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는 것으로 작가소개란을 채운다. 좋아하는 것, 취미, 의식주 관련 단어들이 눈에 자주 띈다. (브런치 특성상 '책 /독서/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듯 하다.)


이러한 작가소개는 취향을 공유함으로써, 비슷한 취향을 지닌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또한 작가의 개성이 뚜렷하게 나타나 독자가 작가에 대해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하게끔 하는데, 이는 해당 작가의 글에 더욱 몰입해 입체적으로 감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시 1)

책이 빼곡한 서재에서 읽고, 쓸 때 행복하다. 주말에는 방구석 영화관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본다.

예시 2)

'슈퍼맨 보다는 배트맨'을 지향하며 2년 일하고 1년 휴식이라는 독특한 워라밸을 보유한 신중한 충동 창업가.



*예시로 제시한 작가님들의 프로필은 제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들을 기준으로 했습니다. 



4가지로 유형을 나눴지만, 대부분은 이 4가지 유형을 혼합해서 쓴다. 1+2 유형, 1+3+4 유형 등 조합은 여러가지가 가능하며, 1,2,3,4를 모두 조합한 유형은 아마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에 관한 글을 쓰는 ㅇㅇㅇ. -하는 것을 좋아하며 -가 되고자 합니다."


이를 브런치 작가 소개의 공식처럼 봐도 무방할 듯 하다. 각자 빈칸을 채우기만 한다면 무난한 브런치식 작가소개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어떤 말로 자기소개를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면, 저 빈칸에 무엇을 대입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공식이면 완벽한 자기소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어떤 유형으로도, 어떤 공식으로도 나를 100퍼센트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말은 어쩌면, 어떤 표현으로든, 어떤 형식으로든 나를 소개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소개한 4가지 유형을 제외한 다양한 작가소개도 많았다. 어떤 유형으로든, 어떤 표현으로든 각자가 만족하는 소개글이라면 완벽하지 않을까.



+ 참고로 가장 인상깊었던 이묵돌 작가님의 소개.

자기소개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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