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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끔 Sep 19. 2020

01. 이별 후유증, 꿈

일상이었던 순간을 꿈꾼다는 것

    고등학교 단짝 친구 둘을 집으로 초대했다. 집으로 부른 건 자취를 시작하고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는 할 말이 정말 많았다. 특히 최근에 남자친구와 헤어진 친구의 이야기가 우리의 메인 이야깃거리였다. 그 새끼가 얼마나 거지같았는지, 새벽 2시쯤이 되자 우리의 수다는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었다. 친구 J가 채워진지 한참이 지난 소주잔을 드디어 털어 넘기더니 입을 뗐다.


사실 전 남친이 자꾸 꿈에 나와서 힘들어.


 장장 몇시간에 걸쳐 했던 욕은 서론에 불과했다. 그녀의 진심은 여기에 있었음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맞다. 이별의 가장 큰 후유증 중 하나는 자꾸 상대의 꿈을 꾼다는 것이다. 나 역시 이 같은 경험이 있었다. 다만, 이별의 상대가 남자친구가 아니고 엄마였을 뿐.

  

   엄마 꿈을 꾸기 시작한 건 장례식을 마친 직후부터였다. 신기하게도 매번 반복되는 꿈이었다. 꿈 속 장소는 늘 세브란스 병원. 엄마는 병실에 있고, 나는 항상 환자 침대 아래에 딸려있는 간병인 침대에 누워있다. 그럼 곧 간호사 분이 들어온다. 그럼 나는 얼른 일어나 그녀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오늘은 어떤 주사를 맞을 지, 어떤 부작용이 있을수 있는지, 내일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지, 간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등의 짧은 브리핑. 피곤한 눈을 비비며 간호사 말을 듣다보면 눈이 떠지고 꿈에서 깬다. 삭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꿈이다. 꿈 치고 이렇게나 구체적일 수 있는 이유는 이 모든 게 한 동안 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꿈에서 간병한다는 것 자체도 굉장히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일상이었던 순간을 꿈꾼다는 것이 이 꿈의 가장 괴로운 부분이었다. 일상을 꿈꾸면, 꿈이 꿈같지가 않다. 꿈이 꿈같지 않을 때의 고통은 군대 막 제대한 사람이 군대 꿈을 꿨을때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본인이 군대에 있는 꿈을 꾼 이 민간인은 꿈에서 깨고도 본인이 이미 제대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한다. 약간의 로딩이 필요하달까? (여긴 어디......아 나 제대했지...?) 온 우주가 멈춘 것 같은 찰나였을 것이다. 짧지만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이 순간이 지나면 그는 군대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에 휩싸인다. 나 역시 매일 이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단 한가지 사실만 달랐는데, 현실을 자각한 뒤 안도하는 게 아니라 공허함에 시달렸단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병원에 돌아갈 필요가, 아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


    눈 뜨기가 두려운 날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되었다. 무의식이 아직 엄마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지, 꿈은 계속해서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의 치료받던 모습만을 리플레이했다. 지옥같은 순간을 매일 아침 맞이하는 삶이란. 그건 마치 눈 뜨자마자 거대한 싱크홀에 빠져 어둠 속에서 한 동안 추락하다가, 결국 뒤통수로 착지하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영드 '셜록'을 꺼내들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고 미친 긴장감을 선사하는 셜록의 서사로 나는 내 서사를 지우고 싶었다. 내 무의식을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채우는 행위였다. 보다보다 눈이 지쳐 잠들 때까지 셜록을 틀어놨다. 보통 동이트고 아빠가 출근하실 때쯤 잠에 들 수 있었다. 바이오리듬(이란 말을 아직도 쓰나?)이 완전히 망가지고, 밤만되면 몸에 알수없는 두드러기가 생겼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내 꿈은 이제 셜록마냥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바뀌었다. 총질도 했다. 이 꿈 역시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상관없었다. 덕분에 엄마 꿈을 꾸는 주기가 점점 길어졌으니 말이다.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아주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어느새 그 꿈과는 이별할 수 있었다.




    꿈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보자면 나는 평소 거의 매일 밤 꿈을 꾸는 편이다. 365일, 27년 째. 이렇게 열심히 꾸는데도 로또를 위한 6자리 숫자나, 조상님의 조언이나, 딱 들어맞는 예지몽 따위는 단 한번도 꿀 수 없었다. 최근에는 대통령 꿈을 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로또를 샀더니 5천원짜리 한 장에서 꼴랑 숫자 하나 맞았다. 짜증나 진짜. 앞으로 그 어떤 꿈을 꾸더라도 로또는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튼 내 꿈에 미래를 보여주는 신통방통한 기능따위는 없다는 얘기다. 내 꿈은 단언컨데 과거기반이다. 자기 직전 본 유튜브, 며칠 전 친구와 나눈 수다, 최근 스트레스 받았던 일 등 평균 일주일 내 경험했던 것들이 내 꿈의 리소스가 된다. 내 뇌는 이것들을 짜깁기하여 한 편의 개꿈을 만들어 낸다. 이런 나의 '꿈 규칙'에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바로 엄마꿈이다.


 아, 전에 꾸던 꿈을 또 꾼다는 건 아니다. 셜록으로 열심히 밀어 낸 '엄마 간병 꿈'은 더 이상 꾸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엄마꿈이 등장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 꿈은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왔다. 이 꿈 만은 최근에 보고 들은 것들을 기반으로 구성된다는 내 꿈 규칙에 위배됐다. 돌아가신지 4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뇌가 새로이 처리해야 할 엄마와의 새로운 기억이나 경험도 없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자꾸만 엄마의 꿈을 꾸니, 참. 업데이트 할 최신 정보가 없는데 뇌는 자꾸 새로고침을 누르고 있었다.


 새로 꾸기 시작한 꿈도 고통스럽긴 매한가지였다. 이제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와도 좋으련만, 엄마는 항상 기운없고, 총기를 잃은 암환자의 모습으로 꿈에 등장했다. 그리곤 실망과 책망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엄마는 그저 날 쳐다볼 뿐이었다. 그럼 나는 그 무거운 시선에 깔린 채 나는 몸부림쳤다. 차라리 화를 내고 말이라도 해주면 뭘 잘못했는지라도 알수 있을텐데.  


 '내가 잘못했어.' 이 말을 차마 뱉지 못한 채 눈을 떴다. 뭘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잘못했다는 느낌만큼은 확실했다. 셜록으로도 지워지지 않은 이 꿈을 4년 간 꾸고, 힘들게 깨어나는 짓을 반복하고서야 나는 내 무의식 한 곳에 늘 엄마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주해보자, 란 생각이 어둠 속 유일한 전구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잊고 싶었고, 미뤄두고만 싶었던 엄마에 대한 기억 그리고 감정들이 구석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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