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절한 언어의 온도 맞추기

by 가끔

난 말을 이쁘게 못한다. 돌려서 얘기하는 것도 싫어한다. 가능한 팩트만, 가능한 빠른 방법으로 전달하는게 가장 이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실현 불가능한 소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30977_23657_5941.jpg 팩트입니까?


저런 사고방식 때문에, 예전 일했던 회사에서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어느 날 회의가 끝난 후 회사 내 직원들이 내 발언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진다고 전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스타트업이니 위계질서가 없을 거란 착각+ 나의 사회생활 경험부족 으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피드백을 받고 꽤나 충격을 받았었다. 말한 나는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었는데, 듣는 이들은 대부분 공격당했다고 느꼈으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확실했다.


고민해보니 말에 문제가 있다는 건 크게 2가지 경우로 나뉘었다. 1) 내용 자체가 공격과 비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 2) 혹은 내용과 상관없이 전달 방식이 잘못된 경우. 내가 회사 사람들에게 욕을 한 건 전혀 아니었으니, 내 문제는 전달 방식에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표정, 제스쳐, 존댓말, 반말, 말투... 그러다 문득, 노트북 뒤에 꽂혀있던 <언어의 온도> 라는 책이 눈에 확 띄었다. 온도! 온도가 문제였다.

당시 문제점 발견을 위해 정리했던 도식


표정을 건방지게 하지도, 존댓말을 안쓴 것도 아니라면 내 전달 방식에서의 문제는 온도였다. 직감적으로 나는 언어의 온도를 신경써서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온도'라는 이유를 찾자, 어떻게 해야 적정온도를 찾을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언어의 온도라는 표현은 너무 문학적이어서 구체적 방법을 찾기엔 조금 곤란했다.


celsius-2125_960_720.jpg 언어의 적정 온도는? 23도? 36.5도?


결국 나는 내 전공, 포르투갈어의 도움을 얻어 답을 찾았다. 이전 글에서도 설명했지만, 포르투갈어 공부의 장점 중 하나가 단어의 어원을 쉽게 캐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답을 찾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온도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부터 시작. 네이버 지식백과에 따르면 온도의 사전적 정의는,


#온도[ temperature , 溫度]
물체의 차고 뜨거운 정도를 수량으로 나타낸 것


이 중에서도 나는 temperature 에 집중했다. 그리고 Temper 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Temper

(걸핏하면 화를 내는) 성질[성미]

(특정한 때의) 기분


여기서 한 번 더 나아갔다. Temper는 어디서 왔을까? 비슷하게 생긴, 정말 일상적인 포르투갈어 단어가 하나 생각났다.


#Tempo [뗑뿌]

1.때 2.시절 3.시기


바로 '시간'이다. 영어로 템포라고 하면 속도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포어에서는 시간, 혹은 날씨를 뜻한다. 그러고보니 영어에서는 '-temp-'가 들어가면 시간과 관련된 의미인 경우가 많다.


#Temp

Ex) Contemporary / Temporary


이렇게 하고 나니 깨달았다. 온도는 '시간'과 아-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과학 시간에 다 배웠던 건데 빙빙 돌아왔다) 결국, 온도를 잘 맞추려면 시간을 잘 맞춰야 했다. 언어의 온도를 잘 맞추려면? 언어의 시간을 잘 맞춰야 하는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
고민하는 ‘시간’
감정의 ‘순간’
time-2829481__340.jpg 말에는 다양한 시간이 있다.


어쩌면 누군가의 말이 참 적정한 온도였다고 하는 것은, 그가 좋고 아름다운 내용만 말해서가 아니라 말에게 좋은 시간을 부여해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 해야될 때와 아닐 때, 침묵의 길이, 위로의 말이 필요한 그 찰나, 미안함을 전달하는 타이밍,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의 기다림 등 언어의 '시간'을 고려하는 것. 그것이 바로 적정한 언어의 온도를 맞추는 방법일 것이다.


이번 주, 너무 뜨겁거나 차가웠던 말들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시간을 마음 속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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