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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여름 Jan 20.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PORTRAIT DE LA JEUNE FILLE EN FEU








 헐리우드의 최근 뉴스에는 언제나 귀를 기울이지만 그 식견이 좁아 타 지역에 관심을 두지 못하는 나는 운 좋게도 이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접하지 않은 채 이 걸작을 마주했다.



 물론 이 영화를 개봉날부터 찾은 이유는 불순했지만..


 불순한 동기의 결과답게 선착순으로 뱃지 준다는 소식에 헐레벌떡 뛰어 들어간 상영관 입구에는' 뱃지 소진'이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 스포일러 있습니다-




 도입부의 풍랑에 요동치는 보트 씬에 대한 묘사를 보면서 앞으로 주인공 마리안느가 겪을 사건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알았지만 그녀를 보는 나의 감정 역시 저렇게 요동칠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18세기를 배경으로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과 사회적 위치를 바탕에 깔고 있지만 두 여인이 겪는 사랑과 선택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된 서사다.



 이 영화의 묘사는 별다른 꾸밈이 없다. 별다른 배경음도 없이 그저 인물을 뒤에서 쫓거나 화면 한가운데에 인물을 꽂아놓고 응시한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힘은 두 주인공 배우에서 오롯이 생겨난 것만 같았고 그래서 두 인물의 마스크가 중요했다.







 짙은 눈동자와 흑발을 한 마리안느의 강한 눈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였다. 각진 턱 선과 높은 콧날은 힘 있어 보였고 깊은 눈에서 그녀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얕지 않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바다에 빠진 화구를 건지기 위해 주저 없이 뛰어들던 모습 또한 그 시대의 여성들에게 으레 연상할 수 있을만한 수동적 태도도 아니었다. 이 장면에서 주변 남성들은 전혀 도움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어쩌면 이는 당시 여성화가의 사회적 위치가 그다지 존중받거나 보호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금발의 엘로이즈가 뒤를 돌아보던 장면에서 등장한 그녀의 마스크는 왜인지 클레이모레츠 같은 얼굴이면 어떡하지라는 나의 우려를 씻어주었다. 클레이모레츠의 팬이면서도 그녀와 같은 예쁘고 앳된 얼굴이 아니길 바랐고 (물론 그녀에게 기회가 왔었다면 잘했으리라 응원하지만) 낯설고 기품 있는 얼굴이길 바랬다.











 부담과 자신감을 가지고 섰던 마리안느에게 엘로이즈는 쉬운 인물이 아니었다. 틀 안에 갇혀있는 그녀였지만 안으로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를 훔쳐보며 그림을 그려나가던 마리안느는 싫든 좋든 엘로이즈를 틀안의 작은 자유로 회유했다.



 자신의 증명을 위해 노력하던 마리안느는 알게 모르게 생겨가는 감정을 덮어두고 싶었지만 엘로이즈의 어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엘로이즈의 자신에 대한 관심을 알게 되었고 더 이상 그녀를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저 자신의 마음을 덜고자 비밀리에 그려왔던 초상화를 보여준다.











 예상치 못한 혹평에 당황한 마리안느. 나를 닮지도 않고 너도 담겨있지 않다고 말한 엘로이즈는 이제는 자신을 제대로 바라봐 주기를 요구한다. 얇은 장막을 사이에 두었던 그 둘의 관계는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섬을 떠난 동안 둘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지만 이 부분에서 감독은 이 영화의 서사가 단순한 열정적 러브스토리만으로 그려지길 원치 않는다.











 우리는 동등하다 라고 말하는 엘로이즈는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금기를 원하는 것 같다. 엘로이즈와 마리안느 그리고 하녀 소피가 같이 그려지는 장면들은 더 이상 이들의 사이에서 계급은 사라진 것 같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매우 능동적이다. 낙태, 동성애, 마약, 모든 터부시 된 것들에 대해 거리낌 없는 선택을 한다. 오르페우스 신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도 그 비극적 결말이 에우리디체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불타는 사랑을 나누는 엘로이즈는 이 유토피아가 더 지속되길 원했지만 마리안느의 선택을 존중해준다. 큰 체제 안에서 그들은 자유로웠지만 또다시 한번 그 자유를 구속당했다. 그리고 그것이 억압이 아닌 선택으로 표현된 것이 슬프지만 그들의 최선이 아니었을까.




 항상 어둠 안에서만 자유로웠던 그들, 마지막 햇살 아래서 바닷속에 뛰어들었던 엘로이즈는 마지막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던 거겠지.










 바로크 미술의 초상화를 닮은 이 영화의 곳곳에는 바로크미술 다운 상징들이 많이 담겨있다. 어둠과 빛의 대비, 수평적 구도(세 인물이 한 화면에 표현되는 장면들), 숨겨진 표식(28페이지) 등등. 이상과 신화를 그려왔던 르네상스의 미술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탐구했던 바로크 미술답게 두 번째 엘로이즈의 초상화에는 그녀 둘의 모습이 모두 담겨있었다.





 그 둘의 선택이 이별이었던 것은 그림을 마쳐야 할 때를 아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위해서였다. 예술과 같은 둘의 아름다운 사랑은 또 다른 예술인 음악이 함께할 때 나의 가슴에 꽂혀 들어왔다. 배경음악이 전무한 이 영화에서 나오는 단 두 장면의 음악은 디제시스1)(diegesis) 안에서 시작되지만 어느새 영화 속 공간을 넘어 관객에게 전달되어 들어온다.











 모닥불 너머 타오르는 사랑의 대상이었던 엘로이즈는 마리안느 마음의 초상이 되었고 비발디 사계 여름 2악장이 흘러나오며 클로즈업되던 엘로이즈의 격동하던 감정을 품은 얼굴은 이 영화를 바라보는 나의 초상이 된 것만 같았다.





1)디제시스(diegesis) -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 속 시공간 또는 가상의 인물들이 살고 있는 허구화된 세계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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