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ouble With the Curve, 2012)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서 생긴 장점은 간혹 아무 정보도 없던 영화에 끌리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포스터와 제목만 보고서 말이다. (물론 포스터 만으로도 많은 정보를 전달하는 영화들도 많다.)
클린트이스트우드 옹님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당연히 본인께서 직접 연출하셨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타인의 연출에 움직이는 클린트 옹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 결론은 별 다르지 않더라다.
후에 찾아보니 이 영화의 연출인 로버트 로렌즈 감독은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이스트우드 옹님의 영화에 같이 제작에 참여했던 분이시더라. 이러니 이 영화도 어느 정도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왜인지 이 영화는 삐딱선을 탄 모양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완성도가 참 엉성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에이미 아담스, 저스틴 팀버레이크라는 호화 출연진을 데리고 이렇게 영화를 만들면 배우들이 화낼 거 같은데.. 이후로 이 감독의 연출작이 없다는 걸 보아도 제작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아가신 것 같다.
사실 스포츠 드라마는 관객들에게서 기본 별점을 어느 정도 더 받아갈 수 있는 장르 중의 하나다. 스포츠 안에서 이루어지는 갈등 만으로도 이미 영화의 기승전결을 다 담아낼만한 드라마가 만들어지곤 하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그 스포츠 드라마에 갈등을 두고 있질 않다. 그보다는 거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딸 미키(에이미 아담스) 간의 부녀 갈등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메이저리그는 그저 옆에서 거들 뿐이랄까.
더이상 감독 위치에 세워두기에도 나이드신 클린트 옹님을 스카우트 역할에 배치한건 꽤나 참신했다. 경험으로 쌓여진 선수를 선별하는 안목과 클린트 옹님의 연륜이 겹쳐져 본인 그 스스로가 영화로 보여지니 말이다. 구세대 vS 신세대, 아날로그 VS 디지털 같은 갈등에서 클린트 옹과 나는 분명 그 대척점에 있을 터인데 거스와 미키 사이의 유대감처럼 나 역시 어떤 관계성을 느끼는건 나 역시 한 가족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이라면 메이저리그가 세이버매트릭스의 도입으로 인해 큰 변화를 맞이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시작을 그린 영화가 '머니볼'이다. '머니볼'이 야구에 대한 전문적 시각과 함께 빌리 빈 단장의 심리에 대해 같이 잘 묘사했었다면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는 줄곧 야구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쏟아내는 미키의 야구에 대한 지식들은 그저 암기과목을 위해 하루 전날 열심히 공부한 학생의 답변처럼 들릴 뿐이다.
영화 말미에서야 그래도 나 야구 영화 맞아 라고 말하는 듯의 연출은 글쎄 너무 고리타분하진 않나. 사실 영화 전체 전개가 뻔하고 예측가능한 부분들이긴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맛만 볼 순 없잖는가. 맨날 먹던 밥도 또 먹듯이 낯익은 배우들과 이미 본듯한 전개인들 좀 어떠하리. 어차피 집에서 편하게 앉아서 본 영화니까 말이다. 왜인지 이렇게 내가 넷플릭스에 또 길들여지는거 같은 건 왜일까.
ps.) 한 씬을 뽑자면 미키가 경기장 안에서 옆돌기 하던 장면. 조금은 황당해서 웃음이 나지만 이 영화를 미워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일조한 장면이기도 하다. 에이미 아담스가 옆돌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줄이야!
그리고 반가웠던 T-1000 아저씨. 오랫만이에요.
원제를 다시 보니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같은 망삘의 한국 제목이 이 감독의 마지막 연출 인생에 기여한거 같아 괜히 미안해진다. 'Trouble with the Curve'란 원제야 말로 저 부녀지간을 관통하는 표현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