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여름 Jul 24. 2020

콜드워

(Zimna wojna, Cold War, 2018)





감독- 파벨 포리코브스키


출연- 요안나 쿨릭(줄라), 토마즈 코트(빅토르)




 이제는 2020년도 시작된 지 한참지난 지금에서야 얘기하는 게 조금 우습게 들릴 수 있지만 2019년 한 해 중에 나에게 있어 한 영화를 고르라면 콜드워 가 되겠다. 매년의 주요작들을 다 보진 못하기에 나만의 베스트 리스트 같은 것을 뽑는 게 늘 꺼려졌었는데 그래도 그런 리뷰들을 자꾸 보자니 나도 한 편쯤은 꼽고 싶어지더라.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면서 촬영상, 감독상,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던 이 영화에 눈길이 갔다.  흑백 영화이자 폴란드 영화이면서 위의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역량이 꽤나 높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낯선 화면비(1.37:1)와 구도는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어딘가 불편하게 한다. 흑백의 화면과 좁은 화면비는 관객의 시각적 해석의 여지를 매우 좁혀 놓는다. 그리고 그 좁은 화면에서 잡히는 인물들의 구도는 일반적인 황금비를 무시한 채 인물을 화면의 어느 한구석으로 이동시키거나 머리 위 배경이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해 등장인물들을 화면의 무게에 눌린 것처럼 만들어 놓는다. 영화 학과에서 이렇게 찍어서 과제를 제출한다면 바로 F 맞을 것 같은 그런 구도들이다. 실제로 이전 작품인 'IDA'를 촬영할 때에는 촬영감독과 감독의 마찰이 심하여 촬영감독이 중도 하차했다고 한다. 










 실로 생경한 화면이다. 어딘가 잘못 포착된 것만 같은 이 화면비와 구도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나를 어딘가 다른 공간으로 데려간 것만 같았다. 그 어색한 구도들 속의 인물들이 마냥 불편하지만은 않았는데 이는 흑백 화면에서 보이는 흑백의 비율만큼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딘가 균형과 불균형 사이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춤을 추는 듯한 이 화면처럼 주인공 빅토르(토마즈 코트)와 줄라(요안나 쿨릭)의 순탄하지 않게 흘러갔다. 









 콜드워의 기본 서사는 두 주인공의 러브스토리이다. 그것도 그 둘에게는 아주 치명적인. 그 둘의 관계에 지속적이거나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이 있지만 러브라인의 주체로써 묘사되지 못하고 모두들 하나같이 줄라 와 빅토르 사이의 방해요소로만 표현된다. 그 둘도 주변 인물의 간섭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들을 보여준다. 초반부에 빅토르를 유혹하던 이레나(아가타 쿠레샤)도 권력을 이용해 줄라를 차지하려 했던 차키마레크(보리스 스직)도 그 둘의 사랑을 막아설 순  없었다. 








 하지만 냉전의 시대를 유영해야 하는 그들의 사랑은 쉽지 않다. 수많은 이별들을 만들어낸 전쟁과 이념의 대립 앞에서 그 둘은 잦은 이별과 만남을 반복해야 했다. 









 사실 흔한 러브스토리 중의 하나라고 치부될 수 있을 법한 이 영화의 이야기가 힘을 가지게 되는 건 독특한 화면비 외에도 음악이 있다. 폴란드 민속음악으로 소개되던 '심장'이란 노래는 매우 구슬프게 이 영화를 관통한다. '두 개의 심장, 네 개의 눈이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흘리네. 검은 눈동자들이 눈물을 흘리네.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없으니까'라는 노랫말은 세계 전쟁 속의 폴란드가 겪어야 했던 아픔을 담아낼  뿐만 아니라 빅토르와 줄라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들리던 이 노래가 재즈의 형태로 시간을 타고 변주하였듯이 세월은 흘러갔지만 그들은 이 노랫말처럼 슬픈 사랑을 계속하고 있었다. 








 화면비와 구도 외에도 촬영에서 돋보이던 장면이 있었는데 빅토르와 줄라가 재회하여 센 강을 야간에 배를 타고 즐기던 장면은 매우 담백하면서도 애절하다. 사실 그다지 영화 안에서 빛나지 않는 장면이지만 배를 탄 그 둘을 바라보는 장면이 아니라 그 둘의 시선을 담아냈던 그 초라했던 야경이 그들에게 깊이 간직될 추억일 것만 같아 나에게는 애틋했다. 





 또 한 장면은 줄라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다. 느린 카메라워크로 그녀를 중심에 담아내며 주변을 돌던 화면은 줄곧 고정된 앵글을 고수하던 이 작품 속에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라면 촬영상을 이 영화에 주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기 몇 년간 지속되어온 롱테이크 주류가 이제는 조금 식상하다고 느꼈기 때문일까. (물론 아직도 롱테이크가 보여주는 그 놀라운 기술과 화면들엔 볼 때마다 놀라긴 한다.) 주류의 답습을 벗어난 이 영화가 주는 신선함은 놀라웠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으나 내 마음으로 상을 수여하고 여기 적어 기록을 남기고 싶다. 굳이 때늦게 이 영화를 적어내리는 이유다.










 총성 없는 전쟁의 시기 콜드워. 차갑게 내려앉은 듯한 화면 안에서 그 둘만은 누구보다 뜨거운 사랑을 태우고 있었고 이 영화를 향한 내 애정 역시 아직 식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