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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여름 Jun 22. 2019

한공주

Han Gong-Ju






2014년도 독립영화계에서 한 획을 그었던 한공주 를 이제서야 보았습니다. 그간 한공주 영화의 포스터는 많이 봐왔는데 나에게 이미 심어져 있는 천우희 배우의 이미지(써니에서 보았던 정신나간..)와 당연히 무거운 내용이 담겨져 있을 거란 생각에 오랫동안 미루어 왔네요. 



 역시나 영화를 보고나니 무거운 마음과 이 잔상을 어떻게 떨쳐낼지 착잡해지더군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감정을 느끼면 그것을 회피하게 되기도 하는데 이 영화가 제게는 그 정도의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모든 감정들이 그렇듯이 결국엔 해소의 방향점을 찾아야 하기에 이렇게 후기로나마 적어내어 그 무게를 덜어보려 합니다.




 영화가 제작된 지도 좀 되었고 실제 배경이 되는 사건도 이제는 꽤나 지난 시점이기에 배경사건에 대해서 미처 인지를 하지 못하고 봤습니다. 어쩌면 그랬기에 이 영화가 제게는 더 안타까웠던거 같네요. 










 영화의 서사 구성은 두개의 시간적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처음 시작은 '공주'가 선생님의 어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부분 부터 시작되고 있고, 다른 시점은 큰 사건이 있기 이전의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던 모습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교차편집에 의한 과거시점의 흐름이 다소 짧게  분절된 느낌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실제 과거를 회상하는 인간의 기억들이 이런 식으로 보여진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라는 영화에서도 '조'(호아킨 피닉스)가 과거에 대한 회상을 할 때 보여지는 화면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조'의 기억이 트라우마에 의해 망가진 파편과 같은 것이었다면 '공주'의 기억은 분명한 이야기로 전달되어져 오긴 합니다. 사실 공주가 기억해내는 장면으로 묘사되기 보다는 공주의 과거를 분절적인 느낌으로 관람하는 시점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 분명하지만 불친절하게 보여지는 과거의 흐름은 관객들에게 이 흐름의 마지막이 매우 나쁜 상황으로 흘러갈 것임을 불안하게 전달합니다. 











 사건의 배경을 모른채 이 영화를 본다면 현재 시점에서의 공주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영화 초반부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저 어떤 사연에 의해서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무슨 일로 인해 갑자기 전학을 왔다는 것 정도. 초반부에 보여지는 화면들에서는 그다지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화면들도 없고 공주의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도 꽤나 조심스럽고 밝은 말투이기에 그 마지막을 연상하기에는 관객들이 준비할 틈이 없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공주를 둘러싼 환경과 일어난 사건들은 매우 비극적이기만 하지만 이를 어쩌면 이겨내보고 잘 지내보겠다는 의지가 비쳐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주가  친구 은희 와 수영을 배우는 이유에 대한 대화를 보면 마지막에 내가 마음이 바뀐다면 그 때 헤엄치고 싶어서라는 말을  합니다. 공주는 이미 자신의 마지막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았지만 반대로 이겨낼 힘도 기르고 싶었던 거겠죠. 삶의 대한 의지의 갈등이 비쳐보이는건데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아야만 이 부분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공주가 처한 상황이나 행동들에 대한 이유가 영화 뒤쪽에 배치되어 있는 구성으로 인해 보는 내내 왜일까 라는 의문을 갖고 보았다면 그 후에는 다시 찬찬히 영화를 되짚어 가며 공주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영화를 본 후에 다시 되짚어가야 하는 관객들에게 남은 파문은 어쩌면 공주가 겪은 충격에 의한 잔상과 같은 방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화의 말미에서는 모든 의문이 다 해소되는데 그 해소와 함께 현재 시점에서 쌓아져왔던 희망의 계단도 모두 무너져 내립니다. 특히 공주를 지지해주던 친구인 은희가 전화를 받지 않는 장면은 한가닥 희망과 기대마저 바스러진 느낌입니다. 



  마지막 쇼트에  보이는 공주의 헤엄치는 모습에서 감독이 그 여지를 남겨 놓고자 싶었겠지만 이 영화의 끝은 너무나 무거울 따름입니다. 사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실화였다는 것을 알고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이 희망적일 수 없었다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랬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회에 대한 허망함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감정적 소모가 너무 심한 영화이기에 반대로 객관적인 시점에서 영화의 구성을 뜯어보고 비판해 보고 싶어도 그게 잘 되질 않을 정도로 영화적인 완성도도 뛰어나고 배우들의 연기도 흠이 없습니다. 악역을 맡은 배우들의 모습은 매우 기분 나쁠 정도입니다. 




 이런 작품이 장편영화 데뷔작품이었다니.. '이수진'감독의 또 다른 작품 '우상' 은 또 어떤 것인지 이제 들여다 볼 준비가 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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