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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섬 Sep 15. 2021

굳은살

피었다가 졌다가.

무던해지던가 참아내던가.


운동을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생존을 위해서였다. 아무리 코로나다 뭐다 핑계를 대도 잘못된 생활습관과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게으름의 화학작용으로 인해 '나는 망가져 있다'라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요즘처럼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옛 유명한 말이 확 와닿는 시기가 없었던 것 같다. 불어난 몸은 세 걸음을 걷기보다는 두 걸음을 걷고 싶어 했고, 두 걸음 걷기가 힘이 들 것 같다면 일어서기도 전에 가지 말자고 결정짓곤 했다.

PT를 받고 싶었지만 가난한 대학생의 형편으로는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이리저리 검색한 끝에 다이어트 전문 크로스핏 짐에 연락하게 되었다. 등록하기 전 코치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당시 크로스핏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코치님이 말씀하셨던 내용보다는 그 열정을 느끼고 등록하게 되었다. 크로스핏은 지속적이고 다양한 고강도 운동을 지향하는 운동의 어느 한 사조라는 느낌이다. 실제로 운동하면서 느꼈지만, 운동 시간은 짧으면 15분에서 길어야 35분 남짓 되는 시간이지만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그 어떤 운동보다도 극심한 체력의 소모를 느낄 수 있었다. 식단 또한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다. 코치님의 관리하에, 나는 아침에는 과일, 점심과 저녁에는 닭가슴살과 샐러드라는 식단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왕 칼을 뽑았으면 무는 아니더라도 뭔가는 베야지라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최선을 다해 운동에 임했다.

그렇게 세 달 반의 고생 끝에, 24kg에 달하는 체지방을 내 몸으로부터 없애는 데에 성공했다. 뿌듯하면서도 동시에 서글프기도 했다. 미리 건강을 신경 쓰고 관리했다면 지금처럼 마지막까지 몰려서 운동을 하는 경우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과, 건강한 몸을 미리 가지고 있었다면 해낼 수 있었을 많은 일들이 생각나서였다. 살을 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또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었다. 게으름에 찌들었던 생활은 청산하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내면서 느끼던 성취감과 진취적인 의식이 내 안에 다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무언가에 매진하던 고등학생 시절의 나와 가장 가까운 상태로 돌아왔다. 지난 몇 년간의 실패가 떠올랐다. 실패하고, 실망하고, 또 실패에서 좌절하여 다음 목표를 낮추던 악순환의 연속. 끝없는 악순환에 지쳐 사회와 세상 탓을 하던 소년은 다시금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얽매어오던 그 고리를 끊는데 성공했다.

크로스핏의 WOD(Workout Of Day)에는 철봉 운동이 있다. 그 철봉 운동을 하다보면 각 손가락이 시작되는 손바닥의 부분에 굳은살이 배기게 된다. 굳은살은 배겼다가 없어졌다를 반복하다가 가끔은 터지기도 하고 결국에는 그 부분에 가해지는 자극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인생은 무서울 정도로 비슷한 점을 보여준다. 삶으로부터 오는 고통이 우리를 괴롭게 하고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고통을 주지만, 결국 우리는 그 고통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아지거나 그렇게 될 때까지 참아낸다. 그 과정을 겪고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이전의 우리가 아니다. 슬픔은 그 지점에서 온다. 어쩌면 순수와 지혜는 공존할 수 없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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