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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May 08. 2022

어떤 대화

나의 삶은 요즘 내가 나누는 대화 주제에 가장 잘 녹아있다

책 <어떤 그림>을 읽었다.

평론가로 알려진 존 버거가 그의 아들인 이브 버거와 미술 작품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들을 엮은 책이다.

부자간에 그림과 삶에 대해 이런 철학적인 대담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감상 포인트 중에 하나였다.

둘은 서로를 지적으로 자극하며 응원한다.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는 점이 놀랍다.


나는 지극히 주관적인 내 느낌이나 감상조차 확신이 없는 편이다.

이럴 때 서운해하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자연스러운 건가?

이건 이런 것 같은데 나만 이런 걸까?

내 스스로의 생각을 의심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그 생각을 더 견고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새로운 각도로 재정비를 하곤 한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특히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오픈마인드인 사람과 나누는 대화, 인사이트가 깊은 사람과 나누는 대화, 나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에 임하는 사람과의 대화 모두 소중하다.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누는지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정해지기도 하고 한 차원 성장하기도 한다.


벌써 반년이 지나도록 지속해오고 있는 유료 독서토론 모임도 특정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싶어서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어떤지?

내 생각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I형인 내가 한 달에 한번 소중한 주말의 4시간을 써가면서까지 모임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이유는 관심사가 비슷한 타인들과의 대화에서 발견하는 새로운 자극이다.

나만큼 그 주제에 생각해본 사람이거나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감상이라서 그런지 여기서의 대화는 일정한 방향을 가지고 흐른다.

방향이 같다는 뜻이 아니라 같은 결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 같은 거다.


반면 또 다른 형태의 대화도 있다.

대학 때 가장 친했던 친구와 임신과 출산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건 아직도 신기하고 어색하다.

각자의 life stage에 맞는 대화 주제가 서다 보니 어쩌면 이게 30대 여성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거나 앞으로도 당분간은 없을 것 같은 주제이다 보니 쌍방이 나누는 대화라기보다는 친구가 내게 전하는 메시지 전달 혹은 질의응답에 가깝다.

나는 기초적인 질문을 할 뿐, 새로운 아이디어 혹은 나만의 의견을 제시하거나 공감해줄 수 없어서 아쉽다.

한때는 같은 아젠다에 대해 목청 높이며 대화하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는 지점이다.


대화금지 스티커가 붙혀져 있지만 이 곳은 사랑방이다

평일 아침 시간에 올림픽공원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들이다.

벌써 두 달째 운동 수업이 끝나고 이 중년의 여성들과 함께 탈의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된다.

놀랍게도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단 하나, 가족이다.

나는 이 점이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영장 회원들 중에서도 친한 무리가 있으니 삼삼오오 그룹을 지어서 대화를 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데, 어김없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식이 어느 대학을 나와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손주가 벌써 몇 학년이 되었다던지, 딸이 뭘 사줬다던지, 시어머님이 어느 병원에 입원해서 어떻게 지내신다던지.

머리가 희끗한 할머니들도,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주부들도 모두 그렇다.

당연히 이 시간대에 이 장소에 오는 사람들의 특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 고집부리면서 30년 살다 보니, 다수의 사람들이 보이는 패턴은 대부분 그게 가장 최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나이쯤 되고 그 사회적 위치에 처하면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테지.

그게 결국 어느 때고 내 편일 "가족"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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