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사계절이 한 바퀴 훌쩍 돌아 일년이 넘었다. 2005년 폐쇄될 때까지 54년 동안 미 공군의 폭격훈련장 옆에서 살았던 매향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이제 기력조차 잃어가는 노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너무 늦기 전에, 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다정한 시골 노인의 눈동자가 한없는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걸 볼 때면 또 후회하기 전에, 라는 생각이 자꾸만 났다.
작은 어촌마을의 앞 바다와 갯벌 위로 미군 폭격기들이 밤낮으로 날아 다녔다. 한국 전쟁은 1953년에 끝났지만, 미 공군이 폭격훈련을 하는 쿠니 사격장에서 도무지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총을 쏘고 폭탄을 투하하는 끔찍한 소음을 듣는 게 일상이었다. 어찌 보면 가슴이 뜯기는 듯한 전쟁 소음의 피해자였고, 어찌 보면 공포뿐이던 마을을 끝내 구해 낸 투사였고, 어찌 보면 빈번히 일어나는 죽음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낸 생존자였다. 감히 상상도 안 되는 고통을 뼈 속 깊이 새기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너무 무심히 지나치지는 말기를, 잠시라도 마음에 가 닿기를 바랄 뿐이었다.
1.
평생 농사를 짓고 살던 매향리의 농부는 사격장에 땅을 내주고는 소작농이 되었다. 내 땅에 세워진 사격장의 철조망 안으로 들어가서 농사라도 짓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미 공군의 하루 훈련 마침을 알리는 황색깃발 내림은 이 마을 사람들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종일 해도 모자랄 농사일을 그 짧은 시간에 하려니, 컴컴한 밤에도 경비원을 피해 일하고 철조망도 몰래 넘어야 했다. 사격장 철조망 위에 펄럭이는 황색 깃발만 원망스레 보고 산 세월이었다.
“지금 주차장 있는 쪽(옛 쿠니 사격장 부지)은 평당 50원씩 받았어요. 그 때 논은 평당 220원, 쌀 서되 값이라고 했어. 그냥 눈 뜨고 빼앗긴 거지.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드니까 훈련이 없는 시간이라도 들어가서 농사를 좀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죠. (…) 훈련을 할 때는 깃발을 올려 놔요. 그걸 내리면 그때부터 들어갈 수가 있는 거지. 전투기가 와서 다닐 때 들어가면 너무 위험하니까. 총탄도 막 떨어지고. 그래서 안 하는 시간에만 들어가는 거야, 훈련 끝난 저녁이나 주말에.”
2.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같던 스무 살 새댁의 인생도 암흑으로 바뀌었다. 가을걷이를 할 땅이 사라지고, 마음대로 드나들던 바다도 갯벌도 사격장이 쉬는 주말에나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농사일도 빼앗기고 갯벌도 빼앗기고 나무줄기 껍질이나 뿌리껍질을 벗겨 먹으며 배를 곯던 시절. 푸르던 청춘은 온통 잿빛이 되었다. 시집 간 딸이 보고 싶어서 찾아 왔던 어머니가 기겁을 하고 돌아갈 만큼 무시무시한 소음을 내내 견뎌야 했다. 쿵쿵 가슴을 울려대는 폭격 소리와 귀청에서 떠나질 않는 사격 소리에, 세상 무서운 게 없이 한창이어야 할 청춘의 시간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벼가 노랗게 익었는데 사격장 들어온다고 다 쓸어 엎은 거여. 아직 벨 때가 멀었는데. 가을걷이를 못 끝낸 땅이 저쪽, 사격장 안에 있었지. 그리고는 미군 무대가 들어오더니 밤낮으로 사격을 퍼붓는 거여.(….) 매일 바다에 나가야 먹고 사는 것을 토요일하고 일요일만 들어갈 수 있으니. 세상에 한 주에 두 번 들어가서 먹고 살겠어요? 배를 쫄쫄이 굶고 살고. 바다 가서 굴을 따면 총알이 쓍쓍 옆에 날아오고 저가(저기에) 떨어지고. 평일에 들어가면 쬐께나고(쫓겨나고) 그랬어요. 엄청 고생했어요.”
3.
농사일도 못하고 갯일도 못하는 이들에게 탄피 수집은 당장의 곤궁함을 해결할 일거리였다. 동네 꼬마부터 어른까지 이 마을에서 제일 먼저 배우는 기술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총알을 잘 피하는 방법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지만 안 하면 굶어야 했다. 배고프고 힘든 이들에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총탄이 사람 목숨을 빼앗는 무기가 아니라 사람 배속을 두둑하게 채워 줄 돈 뭉텅이로 보이는 시절이었다. 사격장에 가서 탄피를 줍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던, 그 탄피를 주어다가 고물상에 팔며 끼니를 해결하던 소년은 이제 노인이 되었다.
“육지 사격장에 가면 타깃이 네 개인가 다섯 개인가가 있어. 방매탄(방망이탄) 그거 하나만 주우면 하루 일당이 나갔어. 이게 내려가면서 타깃에 딱 맞고 떨어지면서 튀어나가. 그 안에 사람들이 나가 있었던 거 알죠? 야구선수라고 그랬어. 사람들이 앞에 나가 있는데도 막 쏘는 거야.(…) 방매탄도 내려오는 거 튀는 게 보이면 피할 수 있어요. 간이 작으면 못해요. 육지사격장에서는 기관총 사격을 하잖아요. 그 탄피 주우러 많이 다녔죠. 사격할 때 끼익~ 쏘면 비 오듯 떨어져, 막 떨어지는데 그냥 하는 거야.”
4.
밤낮 없이 전투기가 덮치는 마을에 살다 보니 마음의 모양도 자꾸 변해 갔다.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는 소음과 진동은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 답은 이 마을에서 유독 높았던 자살률과 폭력 사건 발생률이 말해준다. 고기 잡는 거 밖에 모르던 어부의 아들은 있는 힘껏 탈출을 꿈꾸었다. 일년 평균 250일, 하루 평균 11.5시간 동안 이어지는 소음을 견디다가는 인생을 잡아 먹히겠구나 싶었다. 탈출 자금을 모으는 독립군처럼 정신 없이 돈을 벌어 돌아 오니 집에서 기다려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살아 보려고 떠난 아들과 남아서 버티다 죽은 아버지, 이 마을에서는 참혹하게 슬프고도 흔하디 흔한 이야기다.
“신문을 보니 광고가 났어요. 직업훈련소에서 3개월 과정을 마치고는 쿠웨이트로 갔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기온이 40도 50도 되는 데서 하루 15시간 이상. 빨리 목돈을 마련해서 돌아가야 어머니 아버지랑 같이 마을을 떠날 수 있으니까요.(…) 이 마을에 자살한 사람들, 많죠. 많아요, 진짜. 아마 전세계에서도 이렇게 적은 인구에 이렇게 많은 자살이 발생한 건 최고일거에요. 여러 연구기관에서도 쥐를 가지고 실험했는데 처음에는 새끼를 물어 죽이다가 나중에는 자기도 죽더라고 해요”
5.
가만히 누워 있던 소들도 전투기가 지나 가면 놀래서 벌떡벌떡 일어났다. 한바탕 총알이 쏟아지고 쿵쿵 포탄이 떨어지면 소들도 덩달아 안절부절이었다. 남들처럼 먹여도 남들처럼 돌봐도 이 마을의 소들은 비실비실, 양동이 한 가득 우유를 뿜어야 할 소의 젖통은 자꾸만 말라갔다. 멀쩡하게 골라 온 소도 이 마을에만 있으면 유산이 됐다. 일 년에 겨우 한 번 임신하는 송아지를 잃고 나면, 다시 별 소득 없이 사료만 먹는 일 년이 다시 시작이었다. 한 해 한 해 살림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줄어드는 한 해가 반복되었다.
“외지에서 우유를 짜던 소를 사가지고 와도 여기로 오기만 하면 유량이 확 줄어 버려요. 30프로 이상.(….) 소가 유산을 하면 자기가 쏟아버리는데, 안 나오면 수의사가 빼내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나요. 죽은 송아지가 속 안에서 썩고 있으니까. 그렇게 품고 있다가 유산을 하면 손해가 아주 크죠. 거짓말 같죠? 처음에는 놀랐는데, 하도 많으니까 그러려니 했어요. 그 정도로 유산이 많았어요. 심지어는 송아지 쌍둥이를 쏟은 적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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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런두런 옛 이야기 듣는 것처럼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을 담는 일 년이었다. 이미 수 십 년이 된 이야기인데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욱신욱신 아팠다. 아무리 깊은 상처도 세월가면 다 잊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곱씹고 있는 시간보다 덮고 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지고, 기억에서의 우선순위가 잠시 낮아져 있을 뿐이다. 몇 달에 한번이든, 몇 년에 한 번이든, 불쑥 떠오른 날에는 처음의 그날처럼 참 선명한 아픔이 심장을 관통하고 간다. 칼에 베인 듯 마음에 피가 번지던 그날처럼 말이다.
이제 하늘을 보면 매향리가 자꾸 생각난다. 매향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저 스쳐가는 비행기의 소리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하늘에 궤적을 그리며 지나가는 비행기만 보아도 가슴 한 곳이 묵직하다. 오늘 그곳의 하늘은 평안한가, 자꾸 묻게 된다. 마을 어귀를 지나 마을 앞 바다로 이어지던 길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얼굴들이 떠오른다. 온통 금이 가 있는 작은 집 위의 참 평화롭던 하늘. 오늘 그곳은 변함없이 조용한 하루인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