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안을 채우는 후끈한 입김 대신 신선한 공기만 코 끝을 잠시 스쳐도, 아 고맙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나날이다. 아침시간만 조금 지나도 슬슬 달궈지는 땅을 스쳐온 바람은 이제 선선한 청량감 대신 뜨거운 햇빛 냄새가 가득 인데도 말이다. 집을 나서면 그날그날 날씨에 따라 바뀐 공기의 냄새도 맡고 기온에 따라 달라지는 대기의 질감도 느끼는 것이 참 당연한 일이었는데, 이제는 내 집의 문을 나선다는 건 마스크라는 답답한 겹을 힘겹게 통과해온 공기를 가지고 겨우겨우 숨을 쉬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몇 초라도 마스크를 내릴 수 있는 텅 빈 야외를 찾아 나선다.
서로를 스쳐가고 반갑게 악수하고 마주보며 이야기하던 일상은 잠시 중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위험요소가 되어 버린 슬픈 시절, 우리는 사람 대신 자연을 친구로 삼아 빈 시간을 채운다. 직장과 집 사이를 그저 쳇바퀴 도는 일상이 어질어질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더하고 싶다. 사람 사이 2미터라는 안전거리를 유지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도심에서 탈출하는 것이 우선과제. 고개를 들었는데 바짝 붙은 사람의 콧김 대신 바다의 냄새가 솔솔 느껴진다면 금상첨화다. 허나 일주일의 대부분을 채우는 꽉 찬 노동의 시간들, 남는 틈이 많지 않아 멀리 갈 수는 없다. 그래서 주말이면 수도권 사람들이 차를 몰고 달려가는 곳, 이리도 가깝지만 넘실넘실 물결치는 바다가 있는 화성방조제다.
1. 저 바다 위로, 상쾌한 드라이브
자동차 네 대가 나란히 달려도 넉넉한 도로가 완벽한 직선으로 쭉 뻗어 있다. 9.8Km를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4차선 도로만 해도 눈이 시원한데, 한 쪽에는 자전거도로가 다른 한 쪽에는 인라인 도로와 인도까지 더해졌다. 덕분에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면 달릴 수 있는 길로 드라이버에게 유명해진 길. 화성방조제는 서신면 궁평리와 우정읍 매향리를 잇는 또 다른 명물이 되었다.
인간의 힘을 더해서 바다 위에 없던 길을 만든 건 30여년 전이다. 경기도 화성시의 화옹지구 간척사업을 통해 방조제를 짓기 시작한 것이 1991년이었고, 물막음 공사까지 다 끝난 것은 2002년 이었으니, 길의 역사로만 치면 이제 갓 스무 해에서 서른 살 사이의 청년인 셈이다. 구불구불 자연스레 생겨난 길이 아닌지라 쭉 뻗은 인공미는 어찌 보면 또 이곳만이 가진 매력이다. 자동차가 시속 60Km로 달려도 10여분은 가야 하는 길이라, 처음 찾는 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긴 드라이브에 눈이 동그래진다.
달려 달려 닿게 되는 방조제의 북서쪽 끝인 궁평리 쪽에는 100미터 가량의 배수갑문이 있다. 화성방조제가 지어지면서 화옹지구 간척지뿐만 아니라 인공호수인 화성호가 생겨났는데, 2002년 제방의 끝물막이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도 바닷물이 화성호 안으로 드나들게 하며 수질관리를 한 통로다. 바닷물이 오가면서 해안가 갯벌에서 사는 생물과 내륙습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생물이 함께 공존하는 지금의 독특한 습지 생태계도 형성되었다.
2. 직선의 질주본능, 자전거로 달려보자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본다. 도시에서는 허벅지가 뻐근해 질만큼 마음 내키는 대로 페달을 밟는 게 쉽지 않다. 누가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을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장애물에 페달을 밟는 발보다는 브레이크를 잡는 손아귀에 더 자주 힘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곧게 뻗은 화성방조제를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반가운 사람들이 많다. 마음껏 달려보는 직선 10Km의 자전거 주행코스. 게다가 한 쪽은 시원한 바다가 또 다른 한쪽은 호수가 펼쳐지는 풍광을 가르며 달릴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쾌적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다.
자전거 핸들을 잡은 양 손 사이로 슉슉, 시원하게 바닷바람이 빠져나간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도 공기가 신나게 타고 흐른다. 자전거 전용도로이라 차량에 신경을 덜 쓰면서 속도를 쭉 뽑을 수 있는 구간이라 더 그렇다. 가는 동안 쉬어갈 그늘이 없는 게 단점이긴 한데, 햇빛 잘 가려주는 차 지붕 대신 온 몸을 다 내어놓고 따끔따끔 쏟아지는 햇빛을 되레 즐기는 사람들이니 그리 문제가 될 것도 없다. 바퀴가 살살 굴러갈 노면 좋은 전용도로에다 업 다운이 없는 평지가 이어지니 체력만 된다면 페달을 깊이 밟으며 자신의 최대속력에도 한번 도전해볼 만 하다. 뜨거운 햇살 속에서 내가 빨리 가는 만큼 힘차게 만들어지는 바람이라니, 자전거로 만나는 또 다른 세상이다.
3. 바로 이곳, 내 인생 첫 낚시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여행은 멈췄지만, 잠시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영 멈춰지질 않는다. 하루 일을 마치고 나면 가장 안락한 저녁시간을 선물해주는 집이 고맙긴 한데, 매일 반복되는 집으로의 퇴근은 또 답답하게 느껴지는 참 간사한 사람 맘이다. 어쩌다 하루는 늘 마주하던 벽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는 대신, 너무 익숙해진 천장을 바라보며 눕는 대신, 낯선 벽과 천장에 둘러싸이고 싶다.
꼭 화려한 호텔일 필요도 없이, 그 천장이 하늘이고 그 벽이 바다라면 더 좋다. 어느 누군가의 집에 머물기도 낯선 고장의 숙소를 예약하기도 서로가 미안하고 조심스러운 시절이니, 그저 뻥 뚫린 공간이면 족하다. 띄엄띄엄 낚시 대를 설치하니 서로를 위한 안전 거리도 자연스럽게 확보다. 그리고 바람을 느끼며 시간을 느끼며 낚시 대를 바라보는 시간. 수도권 사람들의 인생 첫 낚시가 바로 이곳 화성 방조제에서 이뤄진다.
매향리에서 출발해 방조제를 삼분의 일쯤 건너갔을까, 궁평리 기점 6.6Km 지점에는 중간 선착장이 있다. 주말이면 수십 명의 사람들이 길다란 선착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일렬로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다. 한창 물이 들어 올 때면 던지는 족족 기분 좋게 망둥어를 건져 올린다. 싸구려 낚시 대에다 묶음 추 정도만 있어도 투두둑, 망둥이 만의 호쾌한 입질이 쏟아진다. 가는 길에 지렁이만 한 통 사서 챙겨 놓으면 말이다.
입질이 없는 초짜 낚시꾼은 연신 미끼만 확인하고 있지만 이 김에 바다냄새 실컷 맡았으니 되었다.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없던 어복도 생기겠지, 그저 기다림도 나름의 쉼이다. 그날그날 물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게 낚시 복. 어디론가 마실 갔다가 시간되면 돌아오는 바닷물의 움직임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도 좋다. 바깥 공기 맡으며 앉아 있는 자체가 행복, 살아 있고 편하게 숨 쉬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하루가 그렇게 지나간다.
4.
파도가 살살 일렁이기 시작한 선착장 건너편, 아직 물이 들어오지 않은 갯벌에 올라 앉은 배는 휴식 중이다. 그 갯벌로 슬그머니 지는 햇살이 내려앉으면 낚시 하러 왔다가 뜻밖에 장관을 만난다. 낚시 바구니에 담아 놓았던 물고기도 잠시 잊을 만큼 사진 욕심이 나는 순간. 일터와 집 사이만 연결하던 단단한 고리에서 잠시 벗어난 기념으로 사진도 한 장 남긴다. 누군가는 잊을 수 없는 손맛을 체험한 장소, 또 누구에게는 난생 처음 신나게 달려 본 자전거 코스, 또 누군가 에게는 아릿하게 새겨지는 석양의 기억이다. 하루 꼬박 바닷바람과 햇볕과 노을을 온전히 머금고 지내는 화성의 방조제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자전거를 타고 왔다면 이미 다리가 천근만근일 테지만 바다에 한 짐 내려놓은 마음만큼은 가뿐하다. 잠깐이지만 한 없이 직선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화성방조제를 걸으며 또는 자전거를 타며 또는 차로 달리며 무아지경도 잠시 느꼈다. 예전에는 친구와 기울이는 술 한잔이 고된 일과를 잠시 내려놓게 해주는 기쁨이었다면, 오늘은 화성방조제를 슬슬 건드리고 가는 서해의 바다와 한잔했다. 짱 하고 기분 좋게 깨어지는 일상의 틈, 이리 가까운 곳에 바다와 함께 숨쉴 틈이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