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마지막 수수께끼,<내 삶의 기원>

나의 도착지점은 곧 나의 출발점이다

깨달아야 하는 <하나>


어떤 철학자는 말한다.

‘우리는 죽기 직전에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죽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하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다.

지금 나는 이 '하나'가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내가 제시하는 답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이 '하나'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120세를 산다고 치자.

사람의 일생을 0세에서 120세까지를 하나의 원으로 그려보자.






인생의 출발점은 유아기이다.

아동기와 청년기, 그리고 성인기를 거치면서, 중년기로 넘어간다.

그러는 중에 원의 절반을 넘어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원을 그리는 선은 인생을 시작한 유아기와 만나면서 인생은 끝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유아가 되어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어떤 할머니는 90세가 넘어가면서 없던 치아 5개가 다시 생겨나는 것을 경험했다.

과학자들은 지금(2023년) 태어나는 아이들을 거의 150세까지 산다고 말한다.

150세 수명에 대해 심리학자들이 염려하는 것은, 사람은 80세가 넘어가면 인식능력이 떨어져서 갈수록 유아가 되어 가는데 그 상태에서 150세를 산다는 것은 지옥의 삶을 사는 것과 같다는 점이다.

그 지옥은 누구의 지옥인가?

본인은 유아가 되었기 때문에 지옥인 줄 모른다.

그 지옥은 그를 부양하는 가족들(자녀들)의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극복하는 성숙


그렇다면 인생이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다면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은 바람직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자연스럽다' 는 말은 성숙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람의 삶의 목적은 성숙한 삶을 사는 데에 둬야 한다.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은 생명의 자연스러움을 극복하는 자이다.

성숙한 삶을 사는 사람은 그의 내면을 성숙시킨다.

성숙한 사람은 지혜로움을 추구한다.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는 유아, 아동, 청소년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성숙하기를 포기한 사람이 많다.


어떤 사람은 유아기에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중년기가 되어 무의식 속에 기록되어 있는 생생한 기억을 찾으러 급작스럽게 유아기로 돌아간다.

이것이 치매이다.

치매의 특징이 바로 최근의 일일수록 기억을 못 하고, 가장 오래된 것일수록 기억이 생생해지는 것이다.

결국 유아기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엄마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지 못한 결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왔다면 지금이라도 그것을 찾으러 가겠다고 유아기로 되돌아가는 것이 치매이다.


치매가 아니라도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러움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내면세계가 아동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

그는 노년이 되면서 어느 순간 아동의 정서 상태로 되돌아갈 확률이 높다.

그래서 먹는 것도 아동의 식성으로 돌아가고, 하는 행동도 아동의 행동거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떤 시어머니는 며느리 앞에서 시어머니 역할을 하는 동안 추상같은 위세를 떨며 엄중한 위치에 있었지만, 나이 80세를 넘어가면서 그녀는 갑자기 아기가 되어 버렸다.

그녀의 목소리도 더 이상 권위 있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초콜릿을 달라고 졸라대는 7세 아동의 목소리였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 어르신은 젊을 때부터 국가 경제를 주관하는 중요한 자리에 앉으면서 요직이라는 요직을 다 다녀 공기업이든 사기업이든 어느 누구도 무시 못 할 권위를 가진 분이다.

60이 넘는 연세가 되었을 때는 경제부처 차관까지 하신 분이다.

나는 그 어르신이 80세가 넘는 연세일 때 뵐 기회를 가졌다.

정작 만나 보니 그동안 온몸으로 풍기던 그의 권위와 품위는 이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 어르신의 몸짓은 마치 무당 요롱 떨 듯이 고개를 계속 흔들어 대며 행동이 아이처럼 가벼워졌다.

이런 분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 전력질주하며 인생을 불태웠지만, 정작 내면의 작업을 하지 않아 그 연세에 내면 아이가 확 튀어나온 것이다.

오직 자기 내면 작업을 성숙하게 치러낸 사람만이 진정한 지혜자가 되어 성숙한 상태로 자신의 유아기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고 꼭 지혜자 만이 자신의 유아기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의 친구 아버님은 98세까지 정정하게 사시다가 갑자기 자녀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아내와 자녀들을 사시나무 떨듯 떨게 만든 공포스런 폭군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자기 아내와 자녀들이 모인 자리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동안 자기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비셨다고 한다.

남자가 그렇게 갑자기 변하면 그에게는 죽음이 가까이 와 있다는 말이 된다고 한다.

‘남자는 철들면 죽는다.’고 한다.

남자는 평소 철 들지 않아도 이렇게 갑자기라도 철이 들어야 죽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아버님은 딱 보름을 더 살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죽음은 어떻게 다가오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사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두려움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두렵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유의할 점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양이 사람마다 다 달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기 직전에 자신의 유아기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어떤 내면의 상태에서 유아기로 돌아가느냐는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뿐이다.


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 죽기 직전,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시간 순서대로 파노라마 영상으로 쫙 보게 된다고 한다.

이 인생 파노라마 영상의 시작점이 바로 유아기라는 점을 명심하라.

왜 하필이면 꼭 유아기로 돌아가야 하는가?

사람은 저 세상(그것이 천국이든 지옥이든)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재해석하는 기회를 맞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 땅에서 좋은 삶을 살게 된 이유를 모르다가 유아기를 보는 순간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이 땅에서 억울한 삶을 살았는데, 그 이유를 유아기를 보는 순간 깨닫게 된다.

어떤 사람은 일평생 불행을 선택하며 살아왔는데, 그 이유를 유아기를 보는 순간 알게 된다.

나는 왜 그렇게 모호한 삶을 살아야만 했는지, 나는 왜 이렇게 생생한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나는 왜 그렇게 타인의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는지, 나는 왜 그렇게도 하는 일마다 잘 되어 왔는지 등등을 깨닫는 순간이 바로 자신의 유아기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순간이다.

유아기에 두고 온 존재와 그 존재 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삶이 딱 결합하고 일치하는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유아기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말, 엄마의 자장가, 나를 향한 엄마의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깨닫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왜 이러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다음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유아기로 돌아가는 것은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우리의 문제는 태초의 문제


나는 지금 누구나 알면 좋을 법한 명제 하나를 제시하고자 한다.


‘이 땅에서의 문제는 곧 태초의 문제이다.’


그래서 T.S Eliot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 알아내는 순간이다


천체 물리학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바는 우주가 탄생한 태초의 상태(빅뱅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왜 그렇게 우주 기원이 중요한가?

스티븐 호킹은 <시간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주가 왜 존재하는가 물음의 답을 발견하다면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궁극적으로 알고자 하는 바는, 나의 태초의 상태, 곧 유아기이다.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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