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의 네명의 남편
한국의 엘리자베드 테일러라는 별명을 얻은 한국 최고의 미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덕성여고 다닐 시절 아는 언니가 운영하는 명동 백조다방에 들렀다가 김기영 감독의 눈에 들게 되었다.
김기영 감독은 김지미를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는지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녀는 김기영 감독의 발탁으로 영화배우가 되었고,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450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녀의 개인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네번의 결혼과 네번의 이혼을 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12살 연상의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
결혼 중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과 만나 불륜을 지질러 간통혐의로 구속되어 당시 최고 위자료인 400만원을 지불한 후 그와 결혼하였다.
최무룡과의 인연도 그렇게 오래 가지 못했다.
최무룡의 연이은 영화제작 실패로 사업이 폭망하자,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이혼했다.
이후 김지미는 7살 연하의 가수 나훈아와 결혼했으나, 무성한 소문을 남기며 또다시 이혼한다.
1991년 심장질환전문가인 이종기 의사와 네번째 결혼하게 되었지만, 몇년을 살지 못하고 또다시 이혼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남자는 별거 아니더라. 남자는 다 어린애고 다 부족하고 불안한 존재더라"
김지미의 삶은 화려한 외면 뒤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담고 있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지미가 하는 말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카사노바, 혹은 돈주앙(Don Juan)이라는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애가이자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처음부터 카사노바가 아니었다.
그의 매력적인 연애 패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형성된 것이며, 이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발전한 결과이다.
카사노바의 첫 번째 연애는 그가 젊었을 때 시작되었다.
초기의 그는 사랑에 대한 순수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첫사랑은 그에게 감정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었고, 그 관계에서 그는 상대방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랑의 즐거움과 함께 상대방에게서 얻는 감정적 만족감을 경험하게 된다.
위에서 김지미가 말한 남자의 소아아동적 행태와 카사노바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김지미가 결혼한 남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으며,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김지미는 이러한 남자들의 매력에 이끌려 결혼을 결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혼 후에도 그녀는 그들의 사회적 활동이나 페르소나를 내려놓개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김지미는 이 남자들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다른 아내들처럼 그들의 페르소나를 존중하며 모성적인 태도를 많이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혼 초기, 보통 아내는 남편의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그를 잘 세워주면서도 내면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도 잘 보살펴 주게 된다.
그러나 남자가 가정에서 페르소나를 내려놓지 못하면 남자의 내면 아이는 성장하지 못하고, 내적 인격인 여성성을 발견할 기회를 잃게 된다.
대부분의 아내들처럼 김지미 역시 남편의 체면과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 내면 아이를 자극하지 않고 모성성으로 잘 돌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아내들이 그러하듯, 모성성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다 보면 어느 순간 여성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이 쌓이기 시작한다.
아내가 여성성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면, 남편의 사회적 체면이나 권위에 대한 고려 없이 그를 추락하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남자가 페르소나와 동일시되어 사회적 역할에만 몰두하고 그것이 자신의 전부라고 여긴다면, 아내 앞에서 자신의 추락을 더 이상 지켜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김지미는 처음에는 모성성으로 남편을 잘 챙겨주다가 어느 순간 남편 앞에서 여자로 살지 못하고 어머니 역할만 해 온 것에 대해 억울함을 느끼면서 여성성을 끄집어 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남자들은 아내 앞에서 하나같이 페로소나를 내려놓을 생각이 없고, 아내에게서 모성적 돌봄을 바랄 뿐, 아내의 여성성을 직면하며 살아갈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김지미가 모성성 대신 여성성을 드러내게 될 때 남편은 아내의 여성성을 마주하느니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 김지미가 네 명의 대단한 남자들과 결혼까지 했지만, 하나 같이 '어린아이'같다고 술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 맥락을 이해하면, 카사노바의 여성편력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카사노바 역시, 여자와 사랑을 나누고 감수성을 개발하게 되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성의 결핍을 채워주는 한도 내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남자의 모성성을 채워주던 여성도 자신이 남자 앞에서 한 연약한 여성으로 살기를 원하는 만큼 여성성을 드러내면서 살고 싶어 하는 순간이 다가 온다.
카사노바 남성의 입장에서는 그동안 여자가 자신의 모성적 결핍을 잘 채워주던 여성이 갑자기 자신의 여성성을 드러내는 순간, 여성적 감정을 대면하면서 관계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야말로 끔찍한 느낌을 받기 시작한다.
여성이 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관계 모드를 전환하는 순간, 카사노바 남성은 그 여자를 떠나게 된다.
그런 남성은 또 다른 여성을 찾게 되지만, 여성의 모성성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그 여성의 치마폭에 머물게 된다.
그는 이전에 만났던 여성이 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모드 전환을 할 때 경험했던 끔찍함에 대해서는 늘 경계를 하면서, 그녀의 여성성이 나타나기 전에 미리 도망갈 준비를 해야만 한다.
카사노바는 바로 이런 관계 행태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남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