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의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을 분석하다(1)
그녀는 전형적인 여성의 생애 주기와 관계 맺기 방식을 완전히 전복시킨 인물이다. 그녀의 남다른 점은 단순히 여러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들 사이에서 철저하게 주도권을 쥐고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는 ‘경계의 기술’에 있다.
그녀가 남편, 애인, 남자친구를 구별하여 관리하는 방식은 마치 고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독립적인 시스템과 같다,
그녀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남편과 애인 그리고 남자친구를 거느리면서도 그녀의 삶은 단순히 ‘방종’이나 ‘탈선’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러 남자를 관리하는 파격적인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가정이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완벽하게 기능하는 ‘현모양처’의 페르소나를 결합해 낸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이는 그녀가 얼마나 강력한 ‘자아 통제력’과 ‘구획화 능력’을 갖췄는지를 보여준다.
그녀에게 가정은 침범당해서는 안 될 성역이자, 자신의 사회적 평판과 정체성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뿌리이다.
그녀는 밖에서의 화려한 관계와는 별개로, 집 안에서는 남편의 뒷바라지와 가사에 한 점 소홀함이 없다. 이는 죄책감 때문에 하는 보상 행동이 아니라, "나는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유능한 여자"라는 자기 확인의 과정이다.
자신의 욕망의 리비도 용량에 차지 않는 남편이지만, 무시하기보다 ‘월급 벌어오는 충실한 동반자’로 예우하며 남편을 중심으로 가정의 질서를 유지한다. 밖에서의 에너지가 집 안으로 침입하지 않게 하고, 집 안의 에너지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는 철저한 ‘온-오프(On-Off)’ 스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자녀를 잘 키워냈다는 점은 그녀의 가치관이 얼마나 현실적이고 강인한지를 증명한다. 그녀는 자녀에게도 자신이 가진 ‘언감생심’의 기준, 즉 수준 높고 기품 있는 삶의 태도를 엄격히 교육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녀가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성장하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트로피’이자, 자신의 삶이 결코 망가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밖에서의 복잡한 남자관계에도 불구하고 자녀에게는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감정을 분리하는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은 ‘타자의 욕망에 종속되지 않는 주체성’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남근적 여성’은 여성의 수동적 서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거세 공포에 굴복해 남성의 권위 아래 안식처를 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들이 독점해 온 권력의 상징인 팔루스를 탈취해 휘두르는 인물이다. 그녀에게 남자는 구원자가 아닌, 필요에 따라 배치하는 ‘전략적 자원’ 일뿐이다.
전통적 관계에서 여성이 남성의 권위에 순응하는 것이 심리적 거세를 받아들이는 과정이라면, 그녀는 이를 거부하고 스스로 남근적 힘의 주체가 된다. 그녀는 남성이 가진 지위와 경제력을 자신의 가치를 빛내줄 장신구로 치환한다. 누구에게도 결핍을 채워달라 구걸하지 않기에, 남자는 그녀의 우월함을 확인시켜 주는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그녀는 남성을 기능에 따라 철저히 범주화한다. 남편은 가정을 지키는 ‘안정적 자원’, 애인은 생명력을 주는 ‘유희적 자원’, 추종자는 매력을 증명하는 ‘정치적 자원’이다. 이러한 ‘자원 관리자’로서의 면모는 그녀를 관계의 설계자로 만든다.
특히 자신을 8년간 추종하지만 거절하는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늘 자기 주변에 머물게 하는 그녀의 힘은 ‘거절할 수 있는 권력’에서 나온다. 상대의 욕망을 감질나게 통제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선을 긋는 ‘언감생심’의 태도, 즉 '네가 감히 나를...'과 같은 태도는, 오히려 상대방을 심리적 거세 상태(갈망과 결핍)로 몰아넣는다.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그녀를 갈망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그 남자는 '줄듯 줄듯 하면서 철저하게 안주는 쪽으로 통제하는' 그녀의 주인도덕의 능력에 매료되어 떠나지 못하고 늘 그녀 주변에 노예처럼 머물러 있다. 그 결과 그녀는 남성 중심 사회의 룰을 역이용해 여러 남성을 다스리는 ‘여성 제왕’의 길을 걷는다
그녀의 삶은 고도로 정교하게 기획된 다중 무대와 같다. 그녀는 각 관계의 성격에 맞춰 최적화된 가면인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갈아입는다. 집 안에서는 헌신적인 아내와 유능한 어머니로, 은밀한 공간에서는 뜨거운 애인으로, 사교의 장에서는 도도한 여왕으로 변모한다. 10년 넘게 유지된 이 긴장된 관계는 어떤 남자도 자기가 이 여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점에서 의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없다. 남편은 자신의 아내가 애인과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애인은 유부녀인 줄은 알지만, 남자친구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분리가 인격의 파편화가 아닌, 철저한 통제력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그 어떤 가면 뒤에 숨은 ‘진짜 나’도 타인에게 온전히 내어주지 않는다. 가면은 타인과 소통하고 그들을 부리기 위한 도구일 뿐, 그녀의 핵심 자아는 그 모든 역할극을 객석에서 관조하며 동일성을 유지한다. 이러한 감정적 거리두기 덕분에 그녀는 복잡한 다중 생활 속에서도 심리적 붕괴를 겪지 않고 남자를 거느리는 제국을 유지한다.
그녀의 인간관계는 평등한 교류라기보다 철저히 계산된 선별에 가깝다. 내담자에게는 다정한 멘토처럼 조언을 건네며 공감을 표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늘한 ‘수준’의 잣대가 놓여 있다. 그녀가 베푸는 친절은 상대가 자신의 기준과 위계에 부합할 때만 허용되는 ‘시혜적’ 성격을 띤다. 만약 상대가 그 선을 넘으려 하거나 수준 미달의 모습을 보이면, 그녀는 ‘언감생심’이라는 경계의 칼을 휘둘러 가차 없이 차단한다. 그녀에게 공감이란 상대와 마음을 섞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인간관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통치 수단에 가깝다.
그녀는 주변 남성들을 감정적 주체가 아닌,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윤택하게 만드는 ‘기능’에 따라 세 가지 삼각 구도로 범주화하여 배치한다.
남편 : 경제적 생존과 가정의 외벽으로서 가정을 삶의 근간을 유지하는 시스템으로 규정한다. 성적 긴장감은 희미하지만, 가정이라는 사회적 성채를 지탱하는 필수 자원으로서 예우하고 관리한다.
애인 : 욕망의 충전소이기 때문에 애인은 나의 성적 매력과 생명력을 확인해 주는 중요한 존재다. 남편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리비도를 분출하는 통로다. 주도권은 전적으로 그녀에게 있으며, 자신의 여성적 생명력을 확인하는 에너지원으로 활용한다.
남자친구 : 나의 권력욕구를 확인하게 해 주는 대상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곁을 지키는 남자처럼, 결코 육체적 허용은 하지 않으면서 정신적 숭배만을 독점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영원히 갈망하는 상태로 묶어 둠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는 살아있는 지표로 삼는다.
남편이라는 기초(토대), 애인이라는 동력(충전), 남자친구라는 장식(확인)으로 이루어진 이 삼각 구도는 그녀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안정적인 구조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다 주지 않음으로써 모두를 가질 수 있었고, 사랑받기보다 군림하기를 선택함으로써 관계의 독극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녀가 이 세 부류의 남자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거리 조절’에 있다.
그녀가 관계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군림할 수 있는 핵심 기제는 ‘결핍의 전략적 활용’에 있다. 그녀는 상대가 갈구하는 것을 결코 한꺼번에, 혹은 온전히 내어주지 않는다. '욕망은 충족되는 순간 소멸한다'는 생리를 본능적으로 꿰뚫고 있는 그녀는, 상대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대신 그 목마름 자체를 만성화된 중독으로 치환한다.
특히 10년이라는 세월을 곁에서 맴도는 추종자(남자친구)에게 그녀는 ‘가까이 있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이다. 그녀는 "언제든 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달콤한 착각의 미끼를 던지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절대 가질 수 없다"는 서늘한 절망의 벽을 세운다. 이러한 희망과 절망의 정교한 교차 투약은 상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심리적 예속을 심화시킨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감질나는 거리감은 일종의 ‘간헐적 강화’와도 같다. 보상이 언제 주어질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오히려 행동을 가장 강력하게 고착시키듯, 그녀가 주는 아주 사소한 허용과 다정한 말 한마디는 남자로 하여금 지난한 거절의 고통을 잊게 만들고 다시금 그녀의 주변을 맴돌게 하는 동력이 된다.
결국 이 거리감은 남자를 가장 강력하게 중독시키는 치명적인 독이자, 그녀의 제국을 지탱하는 강력한 통치술이다. 남자는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감정, 자존감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지만, 그녀는 그 희생을 당연한 조공으로 여기며 결핍이라는 쇠사슬로 상대를 자신의 발치에 묶어둔다. 그녀에게 관계란 교감이 아니라, 상대의 갈망을 동력 삼아 자신의 전능감을 확인하는 고도의 심리 게임인 셈이다.
그녀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한꺼번에 주지 않다. 특히 남자친구에게는 ‘언제든 나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과 ‘절대 가질 수 없다’는 절망을 동시에 준다. 이 감질나는 거리감이야말로 남자를 가장 강력하게 중독시키는 독이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은 흔히 '여성적 미덕'이라 칭송받던 죄책감이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도덕적 잣대를 외부의 사회적 시선이 아닌, 철저히 자신의 내부에 둔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주인도덕'이다. 남편을 속이거나 여러 남자를 동시에 거느리는 행위는 가부장적 윤리관에서 보면 명백한 일탈이지만, 그녀의 세계관 안에서 그것은 '자원 배분'이자 '생존 전략'일뿐이다.
그녀는 사회적 윤리에 비추어 자신을 난도질하는 자책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10년간 자신을 추종하여 따라다니는 남자친구에 대해 "내가 싫은데 어떡해?"라는 감정의 실존성과 "언감생심, 내 수준에 맞춰야지"라는 위계적 당위성으로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
여기서 죄책감의 부재는 공감 능력이 결여된 소시오패스적 특성이 아니라, '타인이 그어놓은 선(goodness)을 거부하는 주권적 결단'에 가깝다.
그녀에게 도덕이란 '지켜야 할 규칙'이 아니라 '내가 부리는 도구'다. 그녀는 가부장제가 심어놓은 '착한 여자'라는 노예 도덕의 각본을 찢어버림으로써, 죄책감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출옥했다. 이러한 죄책감의 진공 상태야말로 그녀가 세 남자를 다스리면서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여성적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심리적 동력이다. 그녀는 타인의 법정에서 피고로 서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유일한 판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