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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Sep 29. 2023

16. 좁아지다

범위만큼, 내 마음도.


좁다
1. (너비나 폭이) 작고 짧다.
2.(공간이나 면적이) 조그맣고 작다.
3.(활동 내용이나 범위가) 널리 미치지 아니하는  듯하다.
4.(마음이나 생각이) 너그럽지 못하고 옹졸하다.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먹으며 인간관계가 좁아졌다. 다행히도 그 좁아진 것에 미련이 없어 아쉬움이랄 건 없다. 이제는 동네친구가 된 선생님 G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 서른이 넘어보니 자꾸 인간관계가 좁아져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각자 일에 바쁘고… 전 원래 나가서 사람 만나는 게 좋고 에너지가 생기는 타입이었는데, 요즘엔 집에 있어도 그것대로 또 좋아요.”


나도 30대 초반 미혼시절에 느꼈던 생각과 감정이었다. 문득 친구가 생각났지만 결혼 후 시댁방문이나 임신 중 컨디션 난조, 혹은 출산 후 육아 중인 친구들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웠고, 오히려 최근 사회에서 만난, 생활패턴이 비슷한, 골치 아픈 현실 얘기나 무거운 주제는 꺼내지 않는, 나의 배경을 설명하지 않아도 겉으로 즐겁게 놀 수 있는, 그래서 훨씬 편안함을 주는 싱글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그 가벼움 때문인지 결혼 후 연락이 끊겨버렸지만.


선생님 G와 그 자리를 일어날 때 우리는 그 이유를, ‘나이 들어감에 따라 자연스러운‘ 정도로 마무리했던 것 같다. 그래, 각자 살기 바쁘니 분기별로 한 번 연락하여 잘 살고 있노라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만 유지되어도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가.

- 모두 무탈하게 잘 지내지? 응, 나도 유탈하게 잘 지내!


그사이 나는 이혼도 했고, 암 치료도 받고 있다. 일거수일투족 말하면 말하는 대로 들어줄 사람들이야 있겠지만, 뭐가 좋은 일이고 자랑이라고 내 입으로 먼저 얘기를 하겠는가. 얼굴이나 보고 말하면 모를까, 타자기 너머로 ‘어머!’하며 놀라 그들의 남편에게, 언니에게, 부모님에게 ‘호락이, 이혼했대!’, ‘근데 호락이 유방암이래…’라는 말이 얼마나 빨리 전해지겠는가. 그러면 또 ‘진짜? 왜?’ 혹은 ‘결국엔 했구나.’ 뭐 그런 대답과, ‘아이고, 아파서 어쩌니.’ 정도의 걱정이 오고 가겠지.


그런 걱정과 위로를 받아도 큰 힘이 되겠으나, 왜인지 많이 귀찮다. 말하는 게 귀찮아서, 그래서 이 글의 링크를 걸어 ‘자네, 이게 내 스토리이니 긴 이야기는 글을 다 읽으면 시작하세.’라고 그들에게 과제를 주기엔, 유방암보다 이혼에 더 놀랄지도 모르는 지인들이 있어 그냥 연락을 줄인다. 아니, 평소처럼 하고 있지 않다.


아마 이 더위가 한풀 꺾이면, ‘살아있니?’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단톡이 몇 개 활성화되겠지만, 며칠간 근황토크를 전하다 또 금세 시들해지리라.

그럼 그때 이혼한 거 빼고, 치료 중인 거 빼고, 평소와 다를 바 없다고 전하겠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게 편해진 지 오래되었다는 게 조금은 애석하지만, 또 이내 거기까지.

내 마음이 닿는 사람들에게만 털어놓아도 시간은 흐르고, 삶은 바쁘다.



2023.08.19. 금요일.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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