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어한연수 실패기.

06. 홈스테이에서 쫓겨나다.

by 규민

동생과 짧은 유럽여행을 다녀온 후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쳐야하는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 당시 스트레스로 인한 초콜릿 폭식과 장기간유럽여행으로 체중도 불어 있던 터라,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브리스톨 시내의 큰 헬스장에서 매일 한 시간 러닝머신을 뛰었고, 식사는 하루에 한 끼로 줄였다.

영국에서의 남은 반년을 허송세월로 보내기 싫어 내 나름 세운 대책이었다.


자연스럽게 홈스테이 가족과의 교류가 적어졌다. 오전 학원 수업이 끝나면, 시내의 스타벅스에서 점심을 먹으며 공부를 하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오면 이미 6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이미 점심을 먹었기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바로 방으로 올라갔다.




하루는 계단을 올라가는 데 부엌 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언뜻 들리는 소리로 ‘나에 대한’ 대화인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유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것은 들어맞았다.

대화를 들은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홈대디는 나를 불렀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건대 ‘너처럼 비참한 아이는 여기 있을 수 없으니, 집을 나가라.’라는 거였다. 정말 'miserable(비참한)‘이라는 단어로 나를 표현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나는 서럽게 울며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힘들어하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나와 단 한마디 협의도 없이 이미 학원에 통보해 두었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당장 며칠 후 스페인 여행이 있으니, 여행이 끝난 다음날 방을 비우기로 했다.




스페인 여행 전날 버밍엄에 런던친구와 레스터언니를 만나러 다녀왔다. 런던친구가 곧 귀국을 앞두고 있는 참이었다.


버밍엄에서 늦은 버스로 돌아와 버스정류장에 내려 코트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보았다.


'어 없다.'


열쇠가 없었다. 주머니에 있어야 하는 집 현관 열쇠가 없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정말 모든 것이 뺏긴 기분이었다. 이제 런던에도 한국에도 브리스톨에도 내가 있을 곳이 없었다. 멍하니 버스 정류장 의자에 걸터앉았다.


다시 일어나니 코트 끝자락에서 짤랑- 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에 다시 깊숙이 손을 넣어보니 구멍이 나있었다. 그 구멍으로 열쇠가 빠져 코트 끝자락에 있었다.


갑자기 몰려오는 안도감에 눈물이 왈칵 터졌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울다가 아빠한테 문자를 보냈다.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너무너무 무서워서 몸이 터져버릴 것 같다고. 정말 한계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마지막 SOS 같은 거였다.


방에 들어와 스페인 갈 짐을 싸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규민아 돌아와."


정말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무너무 듣고 싶었던 따뜻한 말이었다.





여러모로 들뜬 마음으로 한숨도 잠을 자지 못한 채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바르셀로나에선 한인 숙박에 묵었다. 첫날 도착했을 땐 5-6명의 여자애들이 있었는데 이틀차가 되니깐 다들 떠나고 없어 숙소에 나 혼자 남았다.


사장님은 나를 개인방으로 옮겨주시곤, 같이 장을 보러 가자고 데리고 나왔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엄청 넓고 뻥 뚫린 도로를 걸었다. 어두웠고 한적했고 조용했다. 도로 가운데에는 꽤 큰 공원이 있었다. 분명 밤이었는데, 어딘가 어슴푸레한 새벽 같았다.


그리고 꽤 허름해 보이는 중국식당에서 저녁을 사주었다. 중식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꽤 맛있었다.


쫓겨난 이야기를 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가끔 어깨를 으쓱했고 어이없다는 듯 스스로 웃어 보이며 말했다. 동정받고 싶지 않았고, 내가 잘못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여행 마지막 날 현관 앞에서 일주일 간 감사했다고 인사를 드렸다.


사장님은 내 어깨를 두 번 톡톡 쳤다.

"잘 살아. 울지 말고. 그리고 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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