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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unghwan Connor Jeon Apr 10. 2023

서울, 중국, 그리고 미국 - 46

미국에서 교직을 다시 시작하며


서울에서 교직을 시작하며 나의 첫 번째 학생들을 만났던 날, 나는 알 수 있었다. 교직이 나의 천직이라는 것을.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재단사가 내게 꼭 맞는 옷을 맞추어 준 옷을 입은 것처럼 교실에서 나는 행복했고 편안했다.


내가 행복하고 편안하다는 사실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학생들 또한 행복했고 충분히 잘 배웠다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사의 행복감은 어떻게든 학생들에게도 전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바람을 가져본다.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다시 담임을 시작하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다른 교사들이 주는 것들을 내가 줄 수 없을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났다. 매일 저녁 7시까지 교실에 남아 다음 날을 준비했고 토요일에도 새벽같이 학교에 나가 다음 주를 준비하곤 하였다.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이 느낌은 첫 발령 후에도 몇 년간 나를 괴롭혔다. 나의 조국이 아닌 나라에서 나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나와는 매우 다른 학생들을 대상으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정신이 까마득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에서 30년 동안의 경험은 이러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국의 대학 입시, 군대, 임용고시를 치른 나는 미국에서 거쳐야 하는 상황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미국에서의 교사자격증 취득이나 대학원, 미국의 교단에서 해내야 하는 업무도 처음 해보는 낯섦 때문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하였으나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어려움은 아니었다.


발령 2년 차부터는 수학이나 테크놀로지 관련 lead teacher로 10년이 넘도록 일을 했고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교육청에서 테크놀로지 관련 교사 연수를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는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물놀이를 13년째 가르치고 있고 한국교육원에서 한국어 강의도 맡고 있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다.


13년동안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년을 가르치고 있는 지금은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은 것과 같은, 서울에서 첫 발령을 받은 기분으로 매일을 맞이한다. 교직이라고 하는 것이 학생들을 상대하는 일이어서 매년, 매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 마련이지만 이제는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자신감이 붙었다고나 할까.


부산을 떠나 서울로, 중국으로, 또 미국에서도 교직을 하면서 행복감과 성취감은 점점 커져가는 느낌이다. 학생들 하나하나를 좀 더 잘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영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곳에서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장점과 성실함으로 이 부족함들을 덮고도 넉넉히 남을 만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봄방학이 끝나간다. 이제 월요일이면 또 눈코 뜰새 없는 한 주가 시작될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육과정을 모두 끝내야 하고 사물놀이 팀은 중요한 두 개의 공연을 앞두고 있다. 교육원의 한국어 강의 또한 뒤처지는 학생들이 없도록 꼼꼼히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바쁜 지금, 나는 가장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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