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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Jan 19. 2024

상상력을 그대로 글로 짓다

'단명소녀 투쟁기'를 읽고

 *스포가 있습니다*

 '연명설화'라는 플롯을 알고 있는가? 너무 일찍 죽음을 점지받은 인간이 여러 방법을 통해 삶을 늘려서 산다는 이야기이다. 주로 미성년의 남성이 주인공인데, 오래전 대를 이어야 할 아들이 성년이 채 되지 못하고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이러한 옛이야기 구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소설이다. 제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인데, 참신하고 독특한 글쓰기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고 박지리 작가의 뜻을 이어받은 상이라고 하니 이 소설 또한 이러한 매력을 가지고 있을 터이다.


 이야기는 20살에 단명한다는 점지를 받은 소녀, 구수정의 이야기다. 20살은 죽기에 당연한 질서가 아니라며 소녀는 이를 거부하고, 연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이상한 일을 겪는 판타지 소설이다. 100p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앉은자리에서 금세 읽을 수 있다.

 처음은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다 급격하게 판타지 세계로 바뀐다. 이안이라는 성별불문의 친구와 함께 수정은 계속해서 죽음으로부터 도망친다. 내일이란 이름의 개를 타고 하늘을 날기도 한다. 눈알 가득한 눈알 괴물을 물리치기도 하고 벼 대신 허수아비가 가득한 밭에 가기도 한다.

소설이 판타지 세계로 빠져들수록 작가의 문체 또한 현란하게 변한다. 다양한 각도로 상황을 설명해 주는 덕에 읽고 있는 머릿속은 상상하기에 바쁘다.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중간에 등장하는 '청소부'와 관련된 이야기. 마을의 모든 사람과 사물의 제자리를 아는 사람이 청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청소부'는 그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뱃놀이를 하자며 함께 배를 탄 청소부를 바라보며 수정은 느낀다. 저런 표정, 저런 노력으로 하는 것은 '놀이'가 아님을. 지금 그는 일하는 중이고, 그의 일은 '청소' 즉, 질서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곧 이야기는 치열하게 뒤바뀐다.


환상세계에서 벗어나 이야기는 다시 현실에서 끝을 맺는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긴 채 끝이 난다.

- 칼은 나를 지키기도, 죽이기도 한다.

- 내일은 개 같아서 끔찍이도 싫지만, 또 무진장 좋기도 하다.

- 어떤 이별은 너무 가까이 다가갔기 때문에 발생한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연명을 갈망하는 소녀의 투쟁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생에서 계속되는 단명을 어찌 잘 연명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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