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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32분

창업주의 철학이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

'위대한 치킨의 탄생'을 읽고

by 김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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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사에서 캐릭터를 만들었을 때였다(당시 펭수를 시작으로 다양한 브랜드 캐릭터가 나오던 시기였다). 디자인은 어찌어찌할 수 있었는데, 그 캐릭터의 세계관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캐릭터의 성격, 말투, 행동 등 가상의 인물이 살아온 인생을 정의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처럼 생소했다. 방심하면 그 캐릭터는 어느새 ‘나’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당시 이 책을 읽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칙필레’라는 치킨 샌드위치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은 ‘위대한 치킨의 탄생’이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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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필레는 소고기 패티가 주를 이루는 햄버거 시장에서 닭고기 필레를 이용한 '치킨 샌드위치'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기업이다. 그들을 단번에 미국 전역의 유명 브랜드로 만든 것은 '젖소 캠페인'으로, 젖소는 햄버거의 주 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치킨 샌드위치가 많이 팔릴수록 '종족 보존'을 할 수 있다는 재미난 스토리에서 탄생한 캠페인이다. 치킨 샌드위치를 가장 잘 만드는 곳은 칙필레이므로, 소들은 칙필레의 광고를 도맡아서 하는 것일 뿐 칙필레의 모델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칙필레의 신메뉴를 홍보하는 등의 활동은 할 수 없다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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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가장 재미나게 읽은 부분은 257P에 나오는 '칙필레 음메 선언문 (Chick-fil-A Moo Manifesto)'. 그들은 젖소 캠페인이 정상 항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아줄 방어벽으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했다. 이를 딱딱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Moo Manifesto라는 타이틀을 달아 작성했다. 선언문은 7살 어린이가 읽어도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수준으로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되었다. '가이드를 위한 가이드'가 판치는 현실에서 제대로 된 가이드 레퍼런스를 만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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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보니 그때 당시 나는 '믿음'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종교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었다. 물론 칙필레는 종교적 믿음을 통해 성장한 브랜드이긴 하지만 말이다. 브랜드가 옳다고 믿는 방향, 창업자가 믿는 철학, 그 철학을 믿는 직원, 모든 걸 믿게 만들어주는 제품과 이 제품이 변치 않을 것이라는 고객의 믿음. 이 모든 게 이어졌을 때 브랜드는 강력한 세계관을 갖게 되고 그 안에서 제품과 서비스뿐만 아니라 만들어진 캐릭터까지 브랜드의 성장을 돕는 톱니바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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