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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Mar 24. 2020

미운 오리 새끼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미운 오리 새끼


  

  우리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매번 다르지만, 어김없이 마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술에 취한 사람들, 바로 주취자들이다.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법적으로 술을 1인당 하루에 한 병만 마실 수 있게 하면 우리 일도 할 만하지 않을까?”

  

  “그전에 대대적인 경찰공무원 구조조정이 있을 걸?”

  

  밤새도록 주취자들과 입씨름, 몸싸움을 하고 나면 업무에 지치고 사람에 질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런 농담이라도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잠시나마 함께 웃을 수 있는 동료들이 늘 곁에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치열한 하루를 이겨낸다. 

  

  장마가 시작되며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다. 아침부터 내리던 장대비는 새벽까지 쉬지 않고 퍼부어댔다. 이른 저녁부터 크고 작은 교통사고 신고들이 접수되다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 다른 유형의 신고가 접수되었다. 순찰차 신고지령 화면에 적힌 신고 내용을 확인했다.

  

  [아는 여성과 술을 마셨는데 감당이 안 된다 / 경찰 도움 요청 / 신고자는 남성]

  

  현장에 도착해보니 건물 입구에 신고자인 남성이 서 있었고, 그 옆에 술을 마셨는데 ‘감당이 안 되는’분으로 추정되는 여성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었다. 예상과 달리 조용히 앉아 있는 여성을 보자 안심이 되었다. 의외로 ‘감당이 될 만한 상태’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별 다른 경계심 없이 여성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선생님. 경찰입니다. 정신 좀 차려보세요. 괜찮으…….”

  

  [짝!]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뺨따귀를 맞아 보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여성의 기습에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 해졌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잔잔한 물가에서 악어가 사냥을 하는 순간, 먹잇감은 자신이 악어에게 물리는 것조차 눈치 채지 못한다. 이를 알고 난 후에는 이미 악어의 입속이다. 당시 나는 악어가 있는 물가에 다가간 겁 없는 한 마리 새끼 오리였다. 자신이 물렸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성가신 미운 오리 새끼들이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헝클어진 긴 생머리를 아래로 축 내리고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도 여성은 정확하게 내 뺨을 가격했다. 현장 경찰관은 근무 중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 덕분에 반사 신경도 남다르다. 당시 나는 언제나처럼 충분한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기습에는 손 쓸 도리가 없었다. 모든 초식 동물들이 육식 동물들의 습격을 피할 수 있다면, 생태계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내가 여성에게 뺨따귀를 맞은 건, 곧 자연의 섭리였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여성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물론 일정한 거리는 유지한 채.

  

  “선생님,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고개 좀 들어보세요.”

  

  부질없는 질문이었다. 비에 젖어 풀어헤쳐진 긴 머리카락, 옷가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토사물, 바닥에 널브러진 가방과 소지품들이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신고자인 남성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죠?”

  

  “고등학교 동창인데 얘가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해서 위로할 겸 한 잔 했어요. 둘 다 올해 스무 살이라 같이 술을 마신 건 처음인데… 이렇게 술이 약한지 몰랐죠. 그리고 제가 말을 걸기만 하면 이유 없이 때리기만 해서 어쩔 수 없이 신고한 거예요. 바쁘신데 정말 죄송합니다.”

  

  여성이 이렇게 취할 때까지 내버려 둔 남성이 한심, 아니 원망스러웠다. 한편으로는 ‘오죽했으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성의 인적사항을 통해 주소를 조회해보니 현재 있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이었다. 남성은 여성이 실제 살고 있는 곳은 이 부근인데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중 갑자기 남성이 방법을 찾은 듯 소리치며 말했다.

  

  “맞다! 얘랑 친한 친구가 있는데 저도 아는 친구거든요? 제가 전화 좀 해볼게요.”

  

  그는 핸드폰을 들고 잠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그 사이 우리는 여성을 상대로 몇 차례 말을 걸며 적절한 타이밍에 기습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 잠깐만요! 어디 가시는 거예요!”

  

  잠시 우리가 여성을 지켜보던 사이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던 남성은 택시를 타고 도망가 버렸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행동은 엄연한 '도주'였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놓고 모든 책임을 전가한 채 도망가 버린 그의 행동이 너무 괘씸하게 느껴졌다. 여성에게 뺨을 맞았을 때도 감정에 동요가 없었지만, 남성의 행동에는 울컥 화가 나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 친구한테 전화한다고 해놓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

  

  “죄송해요. 갑자기 엄마가 전화가 와서 저도 가봐야 해요. 죄송하지만 잘 좀 데려다주세요.”

  

  그렇게 새끼 오리 한 마리는 악어로부터 도망쳐 엄마 오리 품으로 달려갔다. 오리는 원래 뒤뚱거리며 걷는 동물인데 그 순간 부리나케 도망치던 그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는 우리와 같은 오리가 아닌 발 빠른 가젤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바통은 넘겨졌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의 역량으로 눈앞에 닥친 위기를 헤쳐 나아가야 했다. 늦은 밤, 오랜 시간 비를 맞은 여성은 추위에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저체온 증상으로 건강에 이상이 있을 수 있어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대원은 위급상황은 아니지만 혹시 모르니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119구급대원의 현명한 판단에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119구급대원이 여성에게 말했다. 

  

  “선생님, 술에 너무 취하셨어요. 비도 많이 맞았으니 병원에 들러서 잠깐 술 좀 깨고 가시죠.”

  

  우리의 수차례의 대화 시도에도 반응이 없던 여성은 119구급대원의 말에 반응을 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는 현장에 있던 우리 모두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아, 씨발! 시끄러워! 너네 다 뭔데? 좀 꺼져!”

  

  119구급대원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병원 이송을 거절할 경우 어쩔 도리가 없다고 했다. 결국 119도 우리에게 여성을 맡긴 채 현장을 떠났고, 또다시 우리만 남게 되었다. 일단 여성을 지구대로 데리고 가 보호하기 위해 부축하려는 순간, 갑자기 폭주가 시작됐다. 결국 우리가 곤히 잠들어 있던 악어를 깨우고 만 것이다.

  

  “놔! 놓으라고 이 새끼들아! 너희 뭐야! 죽고 싶어? 이거 안 놔?”

  

  그녀의 무차별 폭행에는 이골이 났고, 결국 수갑을 채워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 주변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은 비 오는 여름밤 광란의 버스킹을 감상하고 있었다.

  

  "으아악! 놔! 놓으라고, 이 개새끼들아!"

  

  그녀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내뱉지는 못하고 어김없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다.

  

  ‘어휴, 이럴 힘이 남아 있으면 길에 쓰러져 잠들지 말고 차라리 집에 좀 가지.’

  

  광란의 독주를 이어가던 여성은 클라이맥스에 다다랐다.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 스스로 치마 아래 속옷을 벗어던지더니, 그 누구도 상상조차 못 했던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살려주세요! 경찰이 저를 강간해요! 살려주세요!”

  

  여성의 공연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여성의 돌발행동에 박장대소하며 박수를 쳤다. 현장 분위기에 휩쓸린 탓일까. 간신히 잡고 있던 정신마저 혼미해졌다. 몸도 마음도 충분히 지쳐있었지만, 고작 갓 스무 살의 여성 한 명이 우리의 멘탈마저 무너뜨릴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여성의 게릴라 콘서트가 입소문을 탔는지 우리 주위에는 어느새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비교적 한적한 월요일 밤, 비 오는 거리 위에서 예고 없이 펼쳐진 진귀한 공연. 이를 혼자 즐기기는 아쉬웠던 걸까.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둘씩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들뜬 목소리로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실황 중계를 하거나, 깔깔대고 웃으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갑작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렸다.

  

  두려움. 비에 흠뻑 젖은 채 술에 취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젊은 여성을 보며, 그녀에 대한 걱정은커녕 이를 웃으며 즐기는 사람들의 잔인함. 

  

  외로움. 장대비를 맞으며 곤혹을 치르고 있는 경찰관들을 외면한 채, 핸드폰으로 연신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기 바쁜 사람들로부터 느낀 소외감.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런 우리를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느껴지는 부담감까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서로 완벽하게 분리된 공간에 있었다. 우리는 여성이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 광대였다. 다른 이들은 모두 무대 밖의 관객들이었다. 애당초 공연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여, 무대 위의 배우가 무대 밖의 관객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를 외면한 채, 한시라도 빨리 무대의 막이 내리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물론 커튼콜도 생략하고.

  

  "선생님.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의거하여 본인의 안전을 위해 경찰장구를 사용하겠습니다."

  

  나는 결국 내 뺨을 휘갈기던 ‘가냘픈’ 여성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궁지에 몰리자 용감해진 오리가 악어의 턱에 재갈을 물린 셈이었다. 우리는 여성과 함께 지구대로 돌아왔다. 문득 시간을 보니 어느덧 순찰차 교대 시간이 다 되었다.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린 것이다.

  

  “어이구, 무슨 비가 이렇게 오냐. 다들 비 많이 맞았나 보네?”

  

  부팀장님이 그 날 비는 다 맞은 것 같아 보이는 우리 조를 보며 걱정스레 한 마디를 건네셨다. 상황관리 근무자에게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지 말 것을 경고한 후, 여성의 보호조치를 부탁했다. 교대를 마치자마자 쉬지도 않고 다음 순찰차로 갈아타려는 우리를 보고 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신고 들어온 거 없는데 왜 그리 급해? 머리라도 말리고 가.”

  

  “괜찮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우리는 지구대에 있던 모두에게 열정 가득한 모습을 각인시킨 채, ‘도주’했다. 다행히 이후 신고부터 액땜을 한 마냥 수월하게 처리했다. 다시 2시간의 순찰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여성은 없었다. 상황관리 근무자에게 별 일 없었는지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얌전하던데요? 그냥 자다가 아버지한테 전화 와서 확인하고 택시 타고 귀가했어요. 방금 전에 아버지한테 잘 들어왔다고 전화 왔고요. 왜요? 현장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퇴근 무렵이 되자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따사로운 여름 아침 햇살이 머리 위로 내리쬐었다. 밤새 내린 장대비에 푹 젖어있던 새끼 오리들의 머리털도 어느새 바짝 말라있었다. 털이 다 마르고 나서 혹시나 하여 확인해 봤지만, 우리는 분명 백조는 아니었다. 여전히 오리였다. 다행히 기대가 없었기에 실망도 없었다. 그렇게 미운 오리 새끼 두 마리는 뒤뚱거리며 지친 몸을 이끌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언젠가 백조처럼 저 푸른 하늘을 한 번이라도 우아하게 날 수 있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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