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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May 03. 2020

어른 아이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어른 아이




  다양한 경찰의 보직 중 ‘경찰의 꽃’이라 불리는 보직이 있다. 사실 우리 내부에서는 다들 자신이 근무하는 보직이 경찰의 꽃이라고들 한다. 뭐, 꽃도 워낙 종류가 다양하니까 그냥 인정하고 넘어가자. 이 보직을 굳이 꽃에 비유하자면 무궁화와 같다고 할까? 국화(國華)인 만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서 이들을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그만큼 먼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렇기에 또 그만큼 가까운 존재다. 이들은 바로 대한민국 경찰의 꽃, 형사다.     








   아직 경찰 제복이 어색하게 느껴지던 실습생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6개월간의 중앙경찰학교 교육을 마치고 경찰서 각 부서를 돌며 실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신임경찰관이라면 누구나 고대하는 형사과 실습 날이었다. 형사과 입구는 쇠창살로 된 문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입구부터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다. 나와 동기들은 잔뜩 긴장한 채 벨을 눌렀다.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형사과 실습 배치를 명받은 신임 순경 OOO입니다!”


  처음 서장님께 발령 신고를 할 때에도 이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시 후, 아무런 대답 없이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쇠창살로 된 문이 열렸다. 우리는 긴장한 탓에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흠칫 놀라며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요. 이번에 온 실습생들인가요? 각자 선배들 뒤쪽으로 자리 잡고 앉으세요.”


  처음으로 ‘진짜 형사’를 마주한 순간,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려왔던 형사에 대한 로망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자고로 형사란 어떤 사람들인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는 투박하고 거침없는 송강호 같은 형사, <범죄도시>에서 맨 손으로 흉악범들을 때려잡는 마동석 같은 형사! 이들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형사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내가 만난 진짜 형사는 기대와 달리 너무나도 스윗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형, 곱게 빗어 넘긴 가르마 머리, 하얀 얼굴에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나의 첫 형사님’은 마치 젠틀한 느낌의 의사 선생님 같았다. 형사과 사무실 분위기 역시 반전이었다. 내가 꿈꿔온(?) 형사과 사무실은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덩치들이 인상을 쓰고 앉아 있거나,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며 각종 물건과 서류들이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제 형사과 사무실은 더없이 평온했다. 형사들은 향 좋은 커피를 내려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형사 팀장님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쇠창살 사이로 오후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화분들에 물을 주고 계셨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여기가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인지 분위기 좋은 카페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예상과는 다른 평온한 분위기속에서 나와 동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눈만 껌뻑 거리며 앉아 있었다. 몇몇 형사들은 조사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연신 키보드를 두들기는 모습이 여느 회사원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스윗한 형사님이 다시 나타났다. 


  “곧 야간 근무니 저녁식사 든든히 하고 오세요. 밤에는 만만치 않을 테니까.”


  햇병아리 경찰관들의 심장은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치열한 밤을 기대하며 평소보다 든든히 배를 채웠다. 자정 무렵, 형사 두 분이 겉옷을 챙겨 입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자, 한 팀은 CCTV 보러 가고 다른 한 팀은 잠복근무 나갈 건데 각자 어디갈래?”


  잠복근무! 이 얼마나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인가! 영화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이 순간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잠복근무를 자원했다. 든든한 동기 한 명이 함께했다. 우리는 어두운 색 사복을 입은 채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경찰 마크 하나 없는 낡은 회색 봉고차에 오르며 우리에게 휴대폰 속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CCTV 화면을 찍은 사진인데 한 번 봐봐. 이 근처를 배회하는 연쇄 절도 용의자야.”


  우리는 휴대폰 속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딱히 눈여겨볼 점은 없었다. 흐릿한 CCTV에 찍혀있는 건 국방 무늬 점퍼를 입은 사람의 뒷모습뿐이었다.


  “기억했어? 이 근처에 있다가 나타나면 잡으면 돼. 간단하지?”


  가슴 뛰는 잠복근무였지만 영화처럼 현장에 투입되기 전 사건 브리핑이나 치밀한 검거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나타나면 잡는다. 그게 다였다. 우리는 골목길 구석에 봉고차를 주차하고 시동을 껐다. 그 상황만큼은 정말 영화 같았다. 새벽 시간 주택가 골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나와 동기는 창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용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새벽 시간 인적 드문 주택가 골목길에는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한겨울 시동을 꺼둔 차 안은 바깥보다 춥게 느껴졌다. 시간이 갈수록 몸의 열기와 함께 뜨거웠던 열정마저 점차 식어갔다. 조수석에 앉은 고참 형사님은 베테랑답게 한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다. 운전석에 앉은 젊은 형사님이 뒤를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잠복한 지 벌써 2주째야. 이 근처를 배회한다는 첩보가 있는데 매일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옷을 바꿔 입을 수도 있지. 너희도 그냥 경험만 한다 생각하고 눈 좀 붙여.”


  나의 첫 형사 근무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그 조바심마저도 한 겨울 추위를 비집고 밀려오는 수마(睡魔)의 유혹에 점차 묻혀갔다. 형사의 로망이 바람 앞에 촛불처럼 일렁이며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적막한 골목길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이 수면등처럼 느껴졌다. 렘수면 상태로 연신 유리창에 머리를 찧어댔다. 입김 서린 창문 틈으로 바라보고 있는 풍경이 꿈인지 현실인지 조차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몽사몽 한 상태가 되었다. 숨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고요한 차 안. 인기척 없는 어두운 골목길. 그리고 우리 옆을 지나가는 한 남성…….


  “어? 어어? 저… 저기! 저기 저거! 군인!”


  나타났다! 국방무늬 점퍼를 입은 용의자! 나와 동기는 너무 놀란 나머지 국방무늬 점퍼를 입은 남성을 보고 ‘군인!’이 나타났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차량 내부의 앞과 뒤가 차단막으로 가려진 탓에 형사님들은 우리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곧장 봉고차 문을 열고 뛰어내려 남성을 향해 달려가며 외쳤다.


  “저기요! 이봐요!”


  천천히 골목길을 걸어가던 남성은 놀라는 기색 없이 뒤를 돌아보며 태연하게 물었다.


  “저요……?”


  우리는 긴장한 탓에 몇 걸음 뛰지도 않았는데 숨을 헐떡였다. 그런데 이제 뭐라고 해야 하지? 당신이 절도범이냐고 물어야 하나? 아니면 우리가 경찰이라고 밝혀야 하나? 우리는 남성이 용의자라는 확신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남성 역시 사복을 입고 있는 우리가 경찰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었다. 한 마디로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누구세요? 왜 그러시는데요?”


  그는 새벽 시간 인적 드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젊은 남성 두 명이 자신을 불러 세워놓고는 우물쭈물하고 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재차 물었다. 우리는 어쩔 줄 몰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현듯 잠복근무 전 형사님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타나면 잡는다.’ 


  나타났다. 그리고 잡았다. 그 다음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다음 지시는 없었다. 우리가 망설이는 사이 남성은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뭐라고 하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그 혼잣말은 ‘별 미친놈들 다 보겠네.’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남성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나와 동기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앞으로 뛰어나가 남성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전히 아무런 대책도 없었지만 이대로 그를 보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잠깐만요! 저기… 그게… 음… 그러니까……. 아! 혹시 신분증 있으세요?”


  어차피 이름도 모르는 사람인데 신분증을 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그보다 남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황당할 따름이었다. 우리는 사복을 입고 있었고,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인적 드문 새벽 골목길에 나타난 젊은 남자 둘이 자신을 불러 세우더니 이제는 신분증까지 보여 달라 한다. 반대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황당한 이 상황을 방증하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매서운 새벽 겨울바람을 아랑곳 하지 않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왔다. 몸은 굳어버렸고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눈치 없는 심장은 미친 듯이 쿵쿵거리며 날뛰었다. 


  ‘진정하자. 어떻게 하지? 생각을 해보자. 아니, 일단 쉼 호흡부터. 후우, 후우…….’


  겉으로는 아무 행동도 하고 있지 않았지만 머릿속은 정신없이 바빴다. 남성을 상대하기는커녕 나 자신을 진정시키느라 혼을 빼고 있었다. 스스로를 진정시키라 바쁜 와중에도 남성에게서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남성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어두운 골목길, 가로등 불빛 하나에 의지하다 보니 정확히 본 것은 아니었다. 착각인가 싶어 좀 더 자세히 남성의 표정을 살피기 위해 거리를 좁히며 다가갔다. 그때였다. 남성은 갑자기 등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어어? 뭐… 뭐야! 저, 저기요! 야! 너 거기 멈춰요!”


  당황해서 존댓말과 반말을 섞어 쓰며 그를 쫓기 시작했다. 어느새 우리 뒤로 형사님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확신에 찬 우리는 있는 힘껏 뛰어가 남성을 붙잡았다. 처음에는 혐의를 부인하던 남성은 얼마 못가 연쇄 절도 사실을 자백했고, 그의 양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그렇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형사 실습은 예상 밖의 쾌거를 이루며 마무리되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이미 소식을 들은 다른 형사님들이 박수를 치고 등을 다독이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이후 날이 밝을 때까지의 기억은 없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 버렸다. 햇병아리 경찰관들이 아침 햇살에 눈을 부비며 일어났을 때는, 각자의 몸 위로 형사님들의 두툼한 패딩 점퍼가 하나씩 덮여 있었다.     





  



  가끔 당시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같을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용의자를 잡으려고 밤새 졸린 눈을 비벼가며 잠복근무를 할 수 있을지. CCTV 속 흐릿한 사진 한 장만으로 검거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지. 용의자와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을 향해 물불 안 가리고 달려가 붙잡을 수 있을지.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이 나의 마지막 경험이라고 생각하며 매 순간 전력을 다할 수 있을지.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무언가를 결심하고 행동할 때 늘 조심스럽다. 아는 것이 많아진 만큼 생각이 깊어지고, 생각이 깊어진 만큼 매사에 조심스러워진다. 혹자는 이를 두려움이라고 한다. 당시의 나는 아는 건 없지만 용기 있는 아이였다. 지금의 나는 신중해 보이지만 어쩌면 겁 많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도 아직 늦지 않았기에,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때로는 아이처럼 과감하게, 때로는 어른처럼 신중하게. 그렇게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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