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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Jun 08. 202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긴급신고 112입니다.”


    “경찰이죠? 저 지금 폭행당했거든요? 빨리 오세요.”


    “신고자분 현재 위치가 어디십니까?”


    “여기 맥도널드 앞이요. 빨리 오라고요.”


    “신고자분, 조금만 진정하시고 무슨 동에 있는 맥도널드인지 알려주세요.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습니다.”


    “아, 진짜! 여기 그 찜질방 사거리에 있는 맥도널드요!”


    “신고자분, 어느 찜질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야 이 개새끼들아! 나 죽으면 올 거야? 위치추적을 하든지 해서 빨리 오라고!”


    [뚜. 뚜. 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 내가 112 상황실 접수요원으로 근무할 당시의 이야기다. 경찰관 한 명당 하루 평균 150건의 112 긴급신고 전화를 받는데, 이런 식의 대화는 식상할 정도로 빈번하다. 물론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꾸 위치만 묻는 경찰이 답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112 신고를 하면 자신의 지역에 있는 경찰이 신고 접수를 하는 줄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시·도 단위로 112 신고를 접수한다. 그렇다 보니 맥도널드를 검색하면 수십 개의 맥도널드가 현출 되고, 신고자 동네 사람들은 다 아는 ‘찜질방 사거리’는, 접수 경찰관 입장에서 들어본 적이 없는 비공식 지명의 사거리인 셈이다.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해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못하는 신고자, 신고자가 말한 단서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경찰관, 휴대폰 위치추적만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없는 시스템. 그 누구를, 그 무엇을 탓할 것인가. 현장이 늘 그러하듯,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우리는 늘 답이 없는 문제와 싸우고 있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번 이야기는 위치추적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김없이 바쁜 한 여름밤이었다. 관내 모든 순찰차 근무자들이 신고 사건을 처리하느라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밤을 지새우던 중, 내가 타고 있는 순찰차로 112 신고 출동 지령이 내려왔다.


    [순찰차 OO호 납치의심 신고입니다. 신속히 출동 바랍니다.]


    무전 지령을 듣고 신고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


    < 여자 친구가 여행을 간다고 했는데 납치된 것 같다. >


    우리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사건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신고자인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고출동 중인 경찰관입니다. 지금 위치가 어디…….”


    “경찰이에요? 빨리요! 지금 제 여자 친구가 납치됐다구요!”


    “선생님, 조금만 진정하시고 상황 설명을……"


    “아, 빨리 오라고요 빨리! 미치겠네 진짜! 빨리요!”

  

    신고자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우리는 전화통화로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서둘러 신고자를 만나기 위해 순찰차 엑셀레이터를 더욱 세게 밟았다.

  

    신고자는 2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는 우리를 만나고도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했던 말을 반복하거나, 앞뒤가 안 맞는 설명으로 상황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지체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자 친구가 납치된 상황에서 그 누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흥분한 신고자를 진정시켜가며 핵심 내용들을 파악했다.

  

    “선생님, 이미 여자 친구분의 휴대폰 위치추적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외에 다른 경찰관들이 여자 친구분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남자 친구분이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셔야 저희가 좀 더 빨리 여자 친구분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신고자는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 친구가 오늘 아침에 아는 언니랑 여행을 간다고 했어요. 제가 몇 번 전화를 했는데, 계속 전화를 안 받다가 방금 전에 받았거든요? 근데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전화를 끊었어요. 제가 녹음한 게 있으니 한 번 들어보세요.”

  

    우리는 신고자가 들려주는 녹음 내용을 듣기 위해 휴대폰에 머리를 맞대고 귀를 기울였다.

  

    - 여자 목소리 : 여보세요? 아, 문자 이제 봤어. 지금 여기 어디냐면…….

    - 남자 목소리 : OO아 뭐해? 이쪽으로 좀 와바.

    - 여자 목소리 : 아, 잠깐만! 여보세요? 나 잘 있거든? 지금… 아, 이따가 내가 다시 전화할게!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내용이 전부였다. 우리는 신고자에게 다시 물었다.


    “선생님, 어떤 이유로 여자 친구가 납치되었다고 판단하고 신고를 하신 건가요?”


    “아까 말했잖아요. 여자 친구는 분명 아는 언니랑 둘이 여행 간다고 했다니까요? 근데 남자 목소리가 들리잖아요!”

  

    “OO이가 선생님 여자 친구분 이름이 맞죠?”

  

    “네 맞아요. 근데 그건 납치범이 물어봤을 수도 있는 거잖아요.”


    녹음 내용만으로 납치 상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일은 단 1%의 비상식적인 상황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필요한 질문들을 이어갔다.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는 최선의 방법은 경찰관의 빠른 판단에 앞서 신고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여자 친구를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하는 동안에도 신고자는 몇 번이나 쓸데없는 질문 그만하고 빨리 여자 친구나 찾아달라며 역정을 내곤 했다. 늘 그렇다. 똑같이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실종 신고 상황, 결코 신고자의 애타는 마음을 경찰관이 온히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런 신고자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순간 우리는 자존심과 같은 알량한 감정들은 보이지 않게 꼭꼭 숨겨두곤 한다. 얼마 후, 여자 친구의 위치가 파악되었다는 반가운 무전이 들려왔다.


    [순찰차 OO호, 현재 요구조자 OOO의 위치는 강원도로 확인되었습니다. 관할 경찰서에 공조 요청을 했으니 참고하세요.]

  

    물론 무전 소리는 우리만 들었고, 우리는 조심스레 다시 한번 신고자가 알고 있는 여자 친구의 여행 목적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 여자 친구분이 어디로 놀러 간다고 하셨죠?”


    “전라도 군산이요.”


    그때 마침 신고자의 핸드폰에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모두가 애타게 찾고있는 신고자의 여자 친구였다.


    [너 경찰에 신고했어? 나 아무 일도 없어. 괜찮으니까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신고자는 바로 답장을 보내는가 싶더니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고, 이내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 속에 넣어 버리고는 말했다.


    “다행히 여자 친구가 납치된 건 아닌 것 같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가셔도 돼요.”


    갑작스러운 신고자의 태도 변화에 무언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할 것 같았는데,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다시 한번 무전이 울렸다.   


    [순찰차 OO호, 요구조자의 안전 확인되었습니다. 철수하세요.]


    우리는 PDA에 추가로 입력된 참고사항 내용을 읽어 보았다.


    [요구조자 OOO는 현재 강원도 OO펜션에 지인인 여성 1명 외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아 알게 된 남성 2명과 함께 있는 것으로 확인. 요구조자의 안전여부 확인하였으며 특이사항 없음.]


    우리가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신고자에게 인사를 건네고 철수하려는 찰나, 신고자는 아까보다 오히려 더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저기… 근데 제 여자 친구 지금 전라도에 있는 건 맞죠?”


    개인정보보호법상 신고자가 요구조자의 가족이라 하더라도, 성인인 이상 당사자의 동의 없이 수사기관이 확인한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 우리의 역할은 요구조자의 안전 확보와 신고자를 상대로 한 안전 여부에 대한 통보. 딱 거기까지다. 더 할 수 있는 말이 있어도 아끼고,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우리는 매뉴얼과 같이 마지막으로 해야 하는 말을 건네고 현장에서 철수했다.


    “여자 친구분안전합니다. 다른 긴급상황이 있을 시 112에 신고해주십시오.”










    여자 친구가 걱정되어 늦은 밤 경찰에 신고까지 한 그의 정성과 따뜻한 마음이 부디 상처 받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는 순찰차로 돌아왔다. 그 커플이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잠시 흔들렸던 서로에 대한 믿음이, 한 때의 해프닝으로 더욱 강한 신뢰가 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 비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신고 사건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순찰차에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문득 생각난 말에 갑자기 속상한 기분과 함께 우리 일에 대한 약간의 회의감마저 들었다. '긁어 부스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종종 경찰개입으로 긁어 부스럼이 되는 일이 있다. 우리는 항상 ‘옳은 일’ 지향하지만, 이것이 늘 ‘정답’은 아니다. 긍정적인 결과를 향해 달려가도, 종착지는 결국 부정적인 결말인 경우도 허다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고, 어김없이 최고의 결과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마저 때로는 우리를 비웃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곤 한다.      


    ‘인정하자.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는 없다. 다만, 스스로 부끄럽지 말자. 내 위치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자. 잊지말자.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하자.’     


    매 순간 예상치 못한 일들에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잠시 넘어지더라도, 그렇게 다시 일어나야 한다. 비록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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