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현대인들은 많은 질병을 앓고 있다. 질병은 신체적 질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정신적, 심리적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질병을 장애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공황장애, 불안장애, 분노조절장애, 조울증 등이 그 예이다. 심리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료는 물론이거니와 보다 깊은 사회의 관심과 도움, 그리고 보호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일부 공격적 성향의 심리장애 유형을 부각하여 이를 일반화하고 경계하며 기피하기까지 한다. 여러 직업군 중 경찰은 유독 심리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중에서도 공격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을 빈번하게 대면한다. 그럴 때마다 명심해야 할 것은 그들이 우리의 보호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수호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누군가의 기피 대상으로 폄훼되지 않기 위해. 부정적인 사회 인식의 전환을 위한 한 걸음을 위해.
평화롭고 조용한 평일 오후였다. 한 겨울이었지만 오후의 햇살은 제법 따사로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구대 앞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데 신고가 접수되었다.
[제 딸인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됩니다. 도와주세요.]
신고 장소는 아파트 가정집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려는 찰나, 집 안에서 절규에 가까운 여성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나와 함께 출동한 부팀장님은 곧장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중년의 어머니와 2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딸이 있었다. 어머니와 작은 딸은 주방 쪽에 서 있었고, 큰 딸은 거실 한 가운데에 서 있었다. 큰 딸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긴 생머리를 앞으로 내려뜨려 얼굴을 가린 채, 무언가에 화가 난 듯 씩씩 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거실과 주방 바닥에는 온갖 가재도구들뿐만 아니라 깨진 화분 유리조각과 흙들이 한데 뒤엉켜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 누구의 진술도 청취하지 못했지만 현장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긴박한 상황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긴장감 가득한 정적 속에서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부팀장님 이었다.
“어머니, 일단 잠시 다른 방에서 이야기를 좀… ….”
그때였다. 현장 입구에서 들었던 괴성이 고막을 강타했다.
“꺼지라고! 너희가 뭔데! 여기 우리 집이니까 나가! 어서 나가! 나가아아아!”
한이 서린 듯 앙칼진 고음에 나도 모르게 양 손이 귓가로 올라갔다. 잠깐의 적막이 흐른 뒤, 여성의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큰 딸이에요. 분노조절 장애가 있어요. 평소에는 조용한데 화가 나면 주체를 못해요. 오늘도 별 일 아니었어요. 작은 애가 자기 옷이 없어졌다고 언니 방을 뒤지는데 갑자기… ….”
“아아악! 닥쳐! 닥치라고 제발! 지랄하지 말고 다 꺼져! 꺼지라고 제바아알!”
또 다시 큰 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주변 공기마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넘치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불끈 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녀를 제외한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불같은 분노에 얼어붙었다.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한참 동안을 씩씩 거리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입구에 서 있던 우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앞으로 늘어뜨린 검고 긴 생머리 사이로 그녀의 눈동자가 희번덕거렸다. 그때였다. 그녀는 갑자기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집어 줍더니 우리를 향해 냅다 집어던졌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몸을 피했다.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작은 빨래집게임을 알아 차렸다. 하지만 물체가 날아오는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날 서린 칼인 양 등골이 서늘했다. 분명 경찰관을 향해 위험한 물건(?)을 집어던진 상황이므로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하여 적법한 체포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법적 검토일 뿐이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젊은 여성을 가족들이 다 보고 있는 집 안에서 남성 경찰관 두 명이 달려들어 완력으로 제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일단 큰 딸을 설득해서 집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가까이 오지 마 이 개새끼들아! 한 발짝만 더 오기만 해 봐, 한 발짝만 더 오면… ….”
현장에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 이 경우 나올 수 있는 말은 둘 중 하나다. 첫 번째는 ‘죽여’버리겠다. 두 번째는 ‘죽어’버리겠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말은 후자다. 전자는 현장에서 빈번하게 듣는 말이기도 하고, 적어도 우리 역시 죽지 않기 위해 대비는 가능하니까. 하지만 늘 그렇듯 후자가 문제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깨진 유리조각들부터 그녀가 서 있는 거실 뒤편으로 위치한 고층 아파트 베란다까지. 협박에 가까운 각오를 재현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현장이었다. 여차하면 달려들어 그녀를 넘어뜨려서라도 두 번째 경우는 막아야만 했다.
“아아악! 다 꺼져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작은 딸은 언니의 모습에 질려버렸다는 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세차게 문을 닫았다. ‘쿵’하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에 큰 딸이 시선을 돌린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큰 딸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그녀의 어머니가 양 팔을 벌리며 우리 앞을 막아섰다.
“가지 마세요! 가까이 가면 무슨 행동을 할지 몰라요! 더 이상 자극하지 마세요!”
“하지만 어머니, 이대로 두면 자해 위험이 있습니다. 일단 안전을 확보하고… …”
“그러다가 우리 애 다치면 책임지실 거예요?”
결국 우리는 또 다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여성이 서 있는 거실까지 몇 발자국 거리였지만, 그 거리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이후 그녀는 갑자기 울부짖으며 자신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손으로 잡아당기고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아아… …. 경찰관님 어떻게 해요! 우리 애…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제발!”
실로 난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계속해서 도움을 요청하면서도 막상 우리가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은 만류했다. 이쯤 되자 ‘도대체 저희보고 어쩌라는 겁니까!’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감정의 동요가 시작된 나와 달리 부팀장님은 오히려 침착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의 말보다 그녀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부팀장님이 말했다.
“별 수 없다. 가자.”
순간 나는 그 말이 여성에게 다가가자는 말인지, 지구대로 돌아가자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정도로 사리분별도 못하는 햇병아리 경찰관이었던 셈이다. 부팀장님은 우리 앞을 막아선 그녀의 어머니를 지나쳐 여성을 향해 재빠르게 다가갔다.
“으아악! 오지 마! 이 개새끼들아! 가까이 오면 너네 다 성폭행으로 신고할 거야!”
큰 딸은 입으로 물어뜯던 상의를 훌러덩 벗어젖히고 속옷 차림이 되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불현 듯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남성 경찰관이 여성 민원인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성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는 이야기. 그 생각에 발이 얼어붙고 말았다. ‘만약 저 여성이 우리를 고소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여경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럼 너무 늦어질 텐데? 그냥 다가가도 될까? 제압을 하려면 어쩔 수 없는 신체 접촉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지?’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때 이미 내 생각을 간파한 부팀장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하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들어와!”
부팀장님은 거리낌 없이 순식간에 여성이 벗어던진 티셔츠로 여성의 몸을 감쌌다. 그 사이 나는 여성이 또 다른 돌발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양 손을 붙잡았다. 때를 놓칠세라 부팀장님은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다.
“어머니! 빨리 이쪽으로 오셔서 따님 옷 좀 입혀주세요. 그리고 저희 조치에 협조해주세요.”
“네? 아… 네네!”
부팀장님의 단호한 결단이 믿음을 주었던 것일까.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곁으로 다가와 옷을 입혀주고 꼭 껴안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는 그녀로부터 온갖 욕지거리를 들어가며 그녀의 발길질에 수차례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점차 호흡이 안정되기 시작하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하아… 이제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좀 놔주세요. 죄송합니다… ….”
처음으로 들어보는 그녀의 제 목소리는 꽤나 차분했다. 우리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시선을 보내자 그녀의 어머니도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천천히 그녀의 팔을 놓아주었고, 그녀는 쓰러지듯 자신의 어머니 품에 안겼다. 그리고 이내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또…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근데… 나 진짜 너무 힘들어.”
“괜찮아… 괜찮아, 우리 딸. 울지마, 엄마가 옆에 있잖아.”
나와 부팀장님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모녀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품에 안은 채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넸고, 그렇게 우리는 현장에서 철수했다.
지구대로 복귀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가 싶더니, 이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찬바람이라도 쐐야 머리가 맑아질 것 같았다. 영혼 없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본 부팀장님이 손수 타신 믹스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말했다.
“우리 일이 참 쉽지가 않아. 깊이 생각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몸이 먼저 반응해야 할 때도 있지.”
“네… ….”
일단 대답은 했지만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에 썩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그런 나의 의중을 읽었는지 부팀장님은 말을 덧붙였다.
“지식과 경험, 둘 다 중요하지. 이것들을 채우는 건 기본이고, 때로는 비울 줄도 알아야 해.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돼. 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그럼 천천히 커피 마시고 들어와라.”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지금, 가끔 그때를 떠올려보곤 한다. 지금의 나는 충분히 채우고 적절히 비울 줄 아는가.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원활한 직무수행을 위해 보다 많은 것을 배우며 채우고 있는가. 신속한 판단이 필요한 현장,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앞에서 실무와 동떨어진 이론들을 배제하고 지엽적인 요소들을 차치하며 비우고 있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만큼은 절대적으로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한 순간에 잘못된 선택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하고, 그 결과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가혹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직업적 숙명인 것을.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더 많은 것을 채워야 하고, 때로는 비워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 또한 끝없는 채움과 비움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