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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Oct 18. 2022

정의 부재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정의 부재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이 있다. 이름도 길고 낯선 이 법의 다른 이름은 ‘김영란 법’이다. 새로운 법이 발의되며 우리 내부에서는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라는 내용의 교양이 연일 계속되었다. 그렇다고 딱히 긴장감을 느끼거나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될 뿐이었다. 그런데, 이 법의 발의와 함께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동네 순찰 중 미용실 아주머니가 건네주신 음료수 한 캔. 경로당에서 보이스피싱 피해예방교육 중 어르신이 타주시는 커피 한 잔. 이 모두가 김영란 법에서 말하는 ‘금품 수수’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경각심 어린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부부는 중국인이었다. 수년간 한국을 오가며 남편은 건설 현장에서, 아내는 식당에서 일하여 돈을 모아왔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껴가며 작은 단칸방에서 알뜰살뜰 돈을 모아 온 부부는 중국에 있는 외동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있었다. 성실하게 살아온 부부였지만, 낯선 타지에서 고된 나날들에 서로를 보듬어줄 여유는 없었다. 아내보다 일찍이 타지 생활을 시작했던 남편은 잔뼈가 굵어진 터라 그런대로 잘 버텨왔다. 하지만 고된 식당일을 하며 다른 나라 손님들로부터 험한 꼴도 많이 겪어온 아내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노동뿐인 일상 속에서 부부에게 삶의 여유란 없었다. 늦은 밤 퇴근하는 아내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지쳐가는 심신을 달랬다. 아내가 술에 취해 잠이 들 때쯤 일어나야 하는 남편은 초저녁부터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아내는 지쳐가는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각박한 현실에 대해 하소연 할 곳 하나 없던 아내는 술에 취해 혼잣말로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내의 서글픈 넋두리들은 남편에게는 술주정으로 들릴 뿐이었다. 조금씩 늘어가던 마음의 상처는 점차 곪아가기 시작했고, 이내 약간의 자극에도 피와 진물이 새어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정폭력 신고. 신고자는 아내, 남편이 칼을 들고 있다고 하니 긴급출동 바랍니다.]


  신고 장소인 부부의 집은 내비게이션 없이도 찾아갈 수 있을 만큼 우리게에는 익숙한 장소였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여느 때와 같이 아내는 방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고, 남편은 집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으나 남편이 칼을 들고 있다는 신고내용 또한 거짓은 아니었다. 남편은 분을 풀 곳이 없었는지 애꿎은 자신의 여행 가방을 칼로 난도질해 놓았다. 아내는 다친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오히려 남편의 상태가 엉망이었다. 얼굴과 목 주변에는 손톱에 긁힌 것으로 보이는 생채기들이 나 있었고, 입고 있던 민소매 티셔츠는 목이 늘어나 반쯤은 알몸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집 입구에서 먼저 마주친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무슨 일이세요? 오늘도 두 분 다투신 거예요?”


 “나는 할 말 없소. 저짝한테 물어보시오.”


  부부의 상황은 늘 한결같았다.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아내가 남편을 할퀴거나 밀치면 남편은 집 안에 물건들을 던지거나 부수며 분풀이를 했다. 그걸 본 아내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항상 다툼이 끝난 상태였다. 그때마다 부부는 법적 조치나 기관의 도움은 원치 않는다며 앞으로 다투지 않고 잘 지내겠다는 약속을 하곤 했다. 그날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아내의 눈에 눈물이 마르고 남편의 줄담배가 몇 대 타들어가고 나서야 현장에서 철수할 수 있었다. 부부는 늘 함께 집 앞 까지 나와 순찰차에 오른 우리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가정폭력 신고 현장에서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부부는 국적과 인종을 막론하고 지금까지도 이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가정폭력 사건 현장은 안타깝고 끔찍했다. 사랑스러운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신혼부부의 사진은 벽에서 떨어진 액자가 깨지며 유리 파편들이 거실 사방팔방에 널브러져 있곤 하였다. 식탁에 놓인 화목해 보이는 가족사진에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피가 묻어 있곤 하였다. 그럴 때면 한 때 행복한 모습으로 찍었을 그 사진들이, 마치 드라마 세트장의 연출처럼 느껴지곤 하였다. 그에 비하면 중국인 부부의 다툼은 비록 ‘칼’이라는 위험 요소가 등장할 때도 있지만, 그야말로 ‘칼로 물 베기’같은 가벼운 다툼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중에는 욕심이 난 것도 사실이었다. 술에 취해 혀가 꼬이지 않고 또박또박 이야기하는 아내, 담배를 태우거나 한숨만 푹푹 내쉬지 않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남편. 부부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기 전, 그런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볼 수 있기를 바랐다.


  부부는 빈번한 신고 탓에 가정폭력 재발방지 관리대상 가정이었다. 부부의 전담 경찰관이었던 나는 여러 차례 전화통화도 하고 신고가 없어도 부부의 집에 방문하여 안부를 묻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불행인지 다행인지 부부는 갑작스레 종적을 감추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집도 비어 있었다. 6개월 넘게 소식을 들을 수 없었고 나는 부부가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여 관리대상 가정의 해제 신청을 요청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그들 부부는 내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갔다. 그러던 어느 가을 밤, 상황 근무 중이던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들어와 볼래? 민원인들이 경찰관 이름은 모른다고 하시는데 왠지 널 찾는 것 같아.”


  ‘누구일까?’라는 궁금증보다 ‘무슨 일일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지구대를 찾아와 경찰관을 지목하여 찾는 경우는 대부분이 항의 방문이다. 근래 특별한 사건이 없었기에 무슨 일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별일이 아니길 바라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지구대로 돌아왔다.


  “아이고! 맞네, 맞아. 이 아저씨 맞소. 보시오 아저씨, 우리 기억하오?”


  한 중년 여성이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같이 있던 남성도 나를 향해 눈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중국인 부부였다. 그토록 환한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라 적잖이 당황했다. 오래 전 나의 작은 바람처럼, 여성은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고, 남성은 담배를 태우고 있지 않았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그동안 중국에 계셨었나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중국에 있는 딸 시집까지 보내고 왔지요. 한국 도착하자마자 경찰 아저씨 보러 왔기요.”


  부부의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내용물은 확인해볼 것도 없었다. 진한 후라이드 치킨 냄새가 지구대 안을 가득 메웠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 다들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참이 지난 때라 슬슬 허기가 질 시간이었다. 여기저기서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 역시 때 아닌 야간 근무 중 영접한 ‘치느님’의 진한 향기에 이성의 끈이 느슨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김영란 법으로 한창 예민한 때에, 커피 한잔도 아닌 치킨이라니! 당치도 않을 소리였다. 나는 짐짓 차분하고 어울리지 않게 나름 근엄한 어조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호의는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켜보던 동료들도 내 말에 공감하는 눈치였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망설임 없는 결단에 아쉬운 눈치를 보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일에 총대를 메고 ‘나를 따르라! 그리고 마음껏 먹어라!’라고 외칠만한 용기 따위는 없었다. 또한, 동료들을 공범으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중국인 아내는 재차 자신이 모시고 온 치느님과의 영접을 권유했고 남편까지 거들었다.


  “어찌 그러기요. 우리가 이 시간에 이거 사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드시오. 문제없소.”


  부부는 마치 신의 뜻을 전하는 전도사 같았다. ‘형제여, 두려워말고 치느님을 영접하세요.’ 아내의 청이 거듭될수록 나의 결의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팀장님의 단호한 눈빛이 뒷통수를 찌르고 있었기에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부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돈이나 값비싼 선물도 아니고 고작 치킨 몇 마리였다. 부부의 권유와 나의 거절이 거듭 반복되던 때, 갑자기 중국인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중국인이라 이기요? 한국 경찰은 뭐, 중국인이 사주는 건 먹지도 않는다 이긴가!”


  중국인 아내는 타지의 식당에서 일을 하며 외국인으로서 받아야만 했던 차별과 홀대로 인해 상처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아물어가던 그 상처가 다시금 터져버린 것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절대 아닙니다. 저희가 진짜 받을 수가 없어서 그래요. 이해해 주세요.”


  “아이고, 예예. 됐시오. 한국 경찰은 돈도 잘 버니까네, 이런 건 먹지도 않겠지!”


  나와 중국인 아내가 옥신각신 하던 사이 이를 지켜보던 중국인 남편이 결론을 지어버렸다.


  “그냥 두고 오시오! 더는 말마시고, 먹든지 버리던지 알아서 하시겠지! 가십시다.”


  부부는 양손 가득 들고 있던 치킨을 던지다시피 내려놓은 뒤, 씩씩 거리며 지구대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치킨을 선물하며 화를 내는 꼴이라니. 어쩌면 부부의 반응은 당연했다. 호의에 대한 거절은 무시로, 감사에 대한 화답은 냉대로 느껴졌을 것이다. 우리는 테이블 위를 가득 채운 치킨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때 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다들 뭘 멍하니 서 있어? 어서 다시 갖다 드리고 와! 이미 가셨으면 집이라도 찾아가!”


  우리는 부랴부랴 치킨을 들고 뛰쳐나갔지만 부부는 벌써 택시를 타고 떠난 후였다. 나는 순찰차 키를 챙겨 익히 알고 있던 부부의 집으로 가 굳게 잠겨있는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경찰입니다. 안에 계시죠? 문 좀 열어보세요.”


  “대단합니다. 그거 돌려준다고 이까지 오십니까. 우리도 필요 없으니 알아서들 하세요.”


  쌀쌀한 가을 밤공기 때문인지, 그보다 차가웠던 우리의 냉정한 거절 때문인지, 따끈따끈했던 치킨은 어느 덧 차갑게 식어버렸다. 우리 역시 부부가 그랬던 것처럼 부부의 집 앞에 조심스럽게 치킨을 내려놓고 발길을 돌렸다. 지구대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님께서 말씀하셨다.


  “참 별 일이 다 있구나. 이제는 함부로 정(情)을 나누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시대야. 문득 동네 어르신들이 타 주시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때가 그립네.”


  그날 밤 근무 내내 맘이 뒤숭숭했다. 나는 원칙을 지켰고,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청문감사관실에 이를 이야기하면 청렴 우수 사례로 표창을 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올바른 선택을 했음에도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유독 긴 밤이었다.      








  종종 당시 선배님의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곤 한다. 나는 선배님처럼 지역경찰관으로 일하며 동네 주민들과 소소한 정을 나누어 본 추억이 없다. 앞으로도 그런 추억을 만들기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문득 서글퍼졌다. 그 날 이후 몇 차례 중국인 부부의 집에 찾아가 보았지만 부부는 늘 부재중이었다. 내가 부부에게 느꼈던 소소한 정과 함께. 그 날 이후 다시는 부부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와줘서 고맙다며 치킨을 사오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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