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왕진 Jan 19. 2024

누구에게나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을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을 떠밀어주었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다.


- 드라마 "도깨비" 중 김신 대사. (김은숙 작)


  

  가만히 생각해 보면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여기에서 멈추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 그때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곁엔 어떤 음성들이 함께 했었다. 그 음성들은 힘내라는 토닥임의 모습으로, 듣기 싫은 잔소리의 모습으로, 때로는 스치듯 들려온 노래 가사와 드라마 대사로 존재했다. 토닥임은 포근해서, 잔소리는 뜨거워서, 노랫말은 따뜻했기에 때때로 마음이 녹은 물이 눈가에 차오르기도 했다.


  이제서야 나는 그것이 나를 세상 쪽으로 당겨오려는 여러 누군가들의 애씀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나도 어떤 이들의 등을 토닥일 일이 더 많아지고 듣기 싫어도 잔소리를 해야 할 때가 늘어났다. 그를 잡아당기는 내 마음이 간절했듯이 내가 구렁텅이에 빠져 있던 시절 나를 버티며 붙잡고 있던 그들의 손 역시 얼마나 간절했을지를 이제서야 겨우 가늠해 본다.


  한때 좋아했던 드라마에서 스치듯 대사 하나가 나에게로 왔다.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 나의 인생에서는 아직까지 드라마처럼 극적인 모습은 없었다. 버스 정류장 앞에 있는 복권방에서 지나가는 버스 번호로 로또를 샀더니 1등이 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세상에 돌아다니니 나는 아직 그의 보살핌을 받을 차례가 아닌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렇게 다가오지 않는가 보다. 보통은 그렇다. 따뜻한 말을 해주는 이와 따끔한 말을 해주는 이를 내 곁에 두게 한다. 부족했던 용기를 대신 채워주게 하고 길을 잃은 나를 다시 보게 한다. 보살핌이 시시하고 조언은 기분 나빠 귀를 닫는 이들도 유난히 남의 말이 달리 들리는 그런 날이 있다.


  때로는 나의 목소리로 머릿속에 들리게 한다. 지루하기만 하던 평소와는 다른 생각이 드는 날들이 있다. '한번 일어나 볼까?' '괜찮을 것 같은데 한번 해볼까?' 같은 생각이 번뜩 드는 날. 그런 순간의 번뜩이는 생각이 사실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신이 내린 마지막 기회라는 식으로 생각해볼 수만 있다면, 간절하지 않던 이도 절박해지고 확신 없던 이들의 의심도 깨지는 그러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카페에 걸린 액자 속 문구에서,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의 안부 속에서, 잘 교육된 전문가의 칼럼 속 가르침 속에서, 혹은 오늘처럼 어쩌다가 마주친 인터넷 속 삼류작가의 글 속에서, 길을 잃은 별빛도 이제는 자기가 향해야할 곳을 가리키는 화살표를 만나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누구에게나 그런 이들이 있다. 내가 세상과 더 이상 멀어지지 않게 붙잡고 있느라 애쓰는 이들. 꺼진 줄 알았던 마음 안에 부싯돌의 불티가 튀어 오르듯이 희망찬 생각의 불꽃이 떠오른 순간. 그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2024. 1.17


원문 출처: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오르다



작가의 이전글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우리의 평생은 청춘인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