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독서의 귀족
나는 티비 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은 주말에 거실에 앉아 채널을 돌리며 볼거리를 찾곤 한다. 꾸준히 보는 채널은 없다. 그래도 한 번씩 돌리던 채널을 멈춰 보는 코너가 <세상에 이런 일이>이다. 세상에 별나고 희한한 일들과 범상치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보는 이 코너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어느 독서가의 이야기가 방영되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감천 마을의 신문 배달부 오광봉 할아버지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 신문을 돌린다. 신문을 돌려 월 60만원을 버는데, 40만원은 생활비고 나머지는 책 사는데 쓴다. 그렇게 30년 동안 모은 책이 2,300권이다. 카메라 앵글이 그의 방안을 한 바퀴 돌았다. 사방으로 가득한 책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는 책의 숲에 살며, 책에서 힘을 얻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책을 인생의 동력으로 삼는 독서광이다. 카메라가 비추는 그의 서재에서 굵직굵직한 고전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어떤 독서를 하고 있을지 가늠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을 촬영하는 이에게 월든, 몽테뉴 수상록, 로마제국 쇠망사 등을 읽어보았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읽지 않았다는 답변에 정신이 가난하다는 핀잔을 날린다. 이는 방송사 직원에게 자신의 독서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책을 읽으며 향유한 그윽한 즐거움을 아직 맛보지 못했다는 것에서 나오는 안타까움이었다. 시청하는 내내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행복을 보았는데, 이는 꾸며내거나 지어낸 것이 아니었다. 진정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삶은 고되지만 책이 있어 즐거웠다’라는 문장이 꼭 할아버지의 삶에서 건져 올린 문장 같았다. 오광봉 할아버지는 이야기한다.
"책은 정신을 살찌게 하고 좋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나쁜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절대로."
이 말에서 그의 독서 수준을 생각했다. 그의 수준은 책을 단지 실용과 성공의 도구로만 삼는 독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부와 명예를 추구하기 보단 정신적 즐거움, 내면의 강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탐구로서 읽어 나가는 고차원의 독서다.
이런 독서를 추구하는 사람을 나는 독서의 귀족이라 생각한다. 많이 읽었음에도 읽은 책 하나 설명을 못하거나, 삶에 하나도 못 보태는 사람들이 있다. 한 순간의 유희로만 독서하는 사람도 있다. 오로지 박학을 추구하는 지식 추구형 독서가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독서의 평민이다. 처음에는 차이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를 통해 쌓이는 지혜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
슬로 리딩이 추구하는 것은 귀족의 독서다. 눈앞에 보이는 실용의 강박에 얽매이지 않는다.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기보다 적은 지식이라도 제대로 익혀 참된 지혜로 변용해내는 독서다. 그리하여 우리 삶의 코어 근육이 강화되고, 독서의 참 맛을 느끼게 해주는 미각 훈련이다.
적게 읽어도 괜찮다. 여백은 자신의 생각으로 채우면 된다. 자신의 머리로 직접 생각해보는 것에서 재미가 생긴다. 궁금하면 궁구해보고 스스로 찾는다. 읽을 때마다 지적 호기심을 해소시키며 동시에 자극한다.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내가 궁금해서 찾아가고, 파헤치며, 궁리해본다. 책에서 물고기를 찾기보단,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운다. 자발성은 주체성으로 바뀌고, 주체성은 즐거움으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