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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8. 2024

슬로리딩의 즐거움(3)

3. 맛있는 독서

 독서를 묘사하는 다양한 은유가 있다.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의 저서 <은유가 된 독자>에서 독서는 ‘여행길’이라 말한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독서를 여행에 빗대는 은유도 좋지만, 독서를 ‘식사’에 비유하는 것이 개인적으론 더 마음에 든다. 책을 보면 여행을 하듯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책을 읽으면 음식에서 맛보는 다양한 맛과 향, 그리고 풍미가 느껴진다. 여행은 시각과 청각에 의존하지만, 식사는 미각과 후각, 시각을 자극한다. 내가 느끼는 책은 보는 것보다, 먹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펼칠 때마다 이 책은 무슨 맛일까 상상한다.     

   

 나는 책을 맛있게 먹는 법을 안다. 식자재를 가지고 요리를 만드는 수많은 요리법이 있듯이, 책에 따라서도 읽는 법이 다르다. 갓 잡아 올린 생선 같은 신간은 그 자리에서 바로 먹는다. 시는 자기 전 꿀 한 숟갈 떠먹듯 입안에 놓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먹는다. 삶에 도움이 되는 소설과 비문학은 밥 먹듯이 꼭꼭 씹어 읽는다. 먹기 힘든 고전은 시간이 필요하다. 발효시키고 숙성시켜야 한다. 이때는 좀 다르다. 책이 숙성되는 게 아니라 내가 숙성되어야 한다. 텍스트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깊어지고 발효되면 고전은 자연스레 자신의 속살을 내게 내비친다. 내가 완전히 익었을 때야 비로소, 고전은 단단한 껍질을 벗고 나에게 먹음직스럽게 다가온다.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으며 영양의 균형을 맞추듯, 여러 책을 보며 지식과 정신의 균형을 맞춘다.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씹어 먹는 게 더 중요하다. 허기만 채우려는 식사는 다독과 다르지 않다. 자신이 적게 먹었는지, 많이 먹었는지, 적당히 먹었는지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이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으면 다독이고, 과도기다. 많이 먹고, 많이 읽는 것은 몸과 정신 건강에 안 좋다. 장수하는 사람을 보라. 소량의 음식을 오랫동안 꼭꼭 씹어 먹는다. 장수하고 싶다면, 오래 읽고 싶다면 꼭꼭 씹어라. 꼭꼭 씹을 때 독서의 즐거움이 배어 나온다.     


 하나의 발견이 마치 책에서 책으로, 하얀 날개를 펼친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것처럼 나한테까지 전해져 온다. 나한테는 그것이 기쁘다. 바로 지금도 책을 들고 있다. 그 책을 읽고 있다. 그런 생각이 솟아난다. 기쁠 때는 웬일인지 아득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다.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순간이어도 시간이 한없이 피어오르고 펼쳐지며 충만해지는, 그런 기분에 휩싸인다. 그것이 정말 기쁘다.


 젊었을 적에는 독서를 하면서 그런 감각을 가진 적이 없었다. 더 성급했었다.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어떤 책에 감동한 적은 있었어도 독서 자체에 감동하는 일은 없었다. 시간은 피어오르고 펼쳐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흘러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지금은 확실히 독서의 감각이 달라졌다. 체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언제쯤부터 알았을까, 그것도 알고 있다. 바로 천천히 읽게 되고 나서의 일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야마무라 오사무 작가처럼 나 또한 천천히 읽고 나서야 독서의 즐거움을 알았다. 읽다가 문득 황홀한 기분에 취하기도 하고, 책을 덮은 직후 잠깐의 적막감 후 물밀 듯 밀려오는 감동과 여운에 나는 책상에 앉아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었다. 독서의 즐거움은 이렇듯 때때로 밀려온다. 행복은 양이 아니라, 빈도라 했다. 독서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빈도수를 높일 수 있다면, 그 우리는 그 행복을 응당 추구해야 한다. 조급함은 행복을 가져오지 못한다. 천천히 읽어야 생각과, 문장과, 이야기에 취한다. 행복하고 싶은가. 천천히 읽어라. 빠르게 읽을 때는 미쳐보지 느껴보지 못한 만 배의 즐거움이 나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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