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옥에 갔다 온 작가를 찾아라
책에 재미를 붙여가던 어느 날이었다. 당시 나는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던 중 마음속에 문득 의문 하나가 생겼다. 감옥에 다녀온 사람들의 글은 왜 이리 깊을까. 감옥이라는 압제적이고 고립된 환경 하에서 인간성의 밑바닥을 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절망 자욱한 밑바닥에서도 인간에게 희망을 보아서였을까. 둘 다일 것이다. 그들은 절망과 희망이 수 없이 교차되는 상황을 젖줄 삼아 인간과 삶,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해석과 통찰을 만들어 냈다. 고난을 겪은 작가들의 책을 보며 나는 자연스레 알았던 것 같다. 작가의 고난은 독자에게 축복으로 바뀐다는 것을.
그 후부터 나는 책을 고를 때 작가들을 더욱 살펴보기 시작했다. 작가의 삶이 글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귀중한 내 시간을 내어 읽는 책을, 가치 없는 책에 투자하기 싫었다. 그래서 책을 고르기 전 작가에 대한 정보를 책에 명시된 정보 이상으로 찾았다. 여러 책들과, 나의 개인적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삶이 어렵지 않았던 작가들의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삶의 어려움은 가난, 목표에 대한 좌절, 꿈의 실패, 절망적 상황, 시대적 상황일 수 있다. 사람은 궁할 때 더 궁리하고 깊어지고 단단해진다. 역경을 버티며 책을 낼 정도의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 사람들이 쓴 책이라면 필시 내용도 깊을 것이다. 읽을 가치가 있다.
그들의 글에서는 혈향이 난다. 이 말인 즉, 글을 온몸으로 삶으로 써 내려간 것이다. 먹물이 아니라 피눈물에 찍어 쓴 책이다. 이런 책이야 말로 마음과 삶을 통째로 흔든다. 나를 변화시켜 줄 책이다. 얕은 책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나는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저자에 대한 존경심이 마음속에서 절로 생겨난다. 그들의 삶을 연소하여 써낸 글로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고, 고양시키며, 나아가 담대하게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
나는 오직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낡아빠진 잉크 대신 펜 끝에 그대의 피를 적셔라. 그래야만 사람들은 이 피가 그대의 정신임을 알게 되리라.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니체 역시 알았다. 진실된 글은 오직 삶에서 우러나온다. 그런 글은 쓰지만 끝 맛은 달다. 어려움이 없었던 사람의 글은 맹탕이다. 나 역시도 제대로 된 글을 쓰려면 삶의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야 함을 안다. 좋은 글 안에는 작가의 불행과 고뇌가 짙게 배어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고뇌와 절망을 희망과 용기로 바꾸어 내는 기술이 있다. 비천한 곳에서 거룩한 곳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아간다. 그들은 삶을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저력이 있다.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화려하게 꽃피우는 연꽃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멋지게 삶을 피어낸 작가들의 책을 보라. 진실로 내 정신을 키워줄 빛과 소금이다.
고난을 겪은 대표적으로 작가들 중 내가 읽은 책의 저자 몇 명을 뽑겠다. 긴 시간을 감옥 안에서 공부하고 사색하여 시대의 스승이 된 신영복 교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로고테라피를 만들고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치욕적인 형벌을 받고도 좌절하지 않고 위대한 역사서 <사기>를 편찬한 사마천, 옥고를 겪는 와중에서도 화려한 은유와 희망 가득찬 시를 써내려간 이육사,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죄와 벌>과 같은 대작을 써낸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 귀양살이에서도 수많은 저작을 남겼던 다산 정약용. 이 모두 고난을 자양분 삼아 인생에서 승리한 자들이다. 책을 고르며 작가를 살필 땐 故신영복 교수의 말을 유념하라.
독방은 강한 개인이 창조되는 영토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